지리산 정상부에 골프장 추진… 축구장 29개 소나무 잘렸다

최경호 2023. 6.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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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2일 오후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중턱. 7년 전 인근 사포마을로 귀촌한 전경숙(60·여)씨는 황당한 상황을 목격했다. 지리산 자락을 빽빽이 채우고 있던 소나무숲이 흔적조차 사라져서다.

전씨는 “우연히 산에 올랐는데 숲속에 있던 아름드리 소나무가 전부 베어져 있었다”며 “구례군에 확인해보니 일대 21만㎡(약 6만3500평)의 소나무 벌채가 허가된 상태였다”고 했다.


주민들 “환경훼손·산사태 우려 커”


전남 구례군이 지난 2월부터 소나무 1만600여그루의 벌채를 허가한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벌목 현장과 위치도. 사진 ‘지리산골프장 개발을 반대하는 구례 사람들’, 프리랜서 장정필
지리산골프장 조성을 놓고 구례군과 주민·환경단체 사이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사업 지역이 지리산국립공원·자연부락과 인접한 산 정상부여서다. 주민들은 골프장 예정지 아래쪽에 사포마을·산수유마을·다랭이논 등이 있어 환경훼손과 산사태 등을 우려하고 있다.

전씨는 “마을 위쪽에 골프장이 생기면 잔디용 농약 유출 등으로 농사를 짓지 못할 것”이라며 “지리산국립공원과 170m 거리인 산 정상부에 골프장을 짓겠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라고 말했다.


축구장 29개 면적 소나무 ‘수확 벌채’


전남 구례군이 지난 2월부터 소나무 1만600여그루의 벌채를 허가한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벌목 현장. 사진 ‘지리산골프장 개발을 반대하는 구례 사람들’
지리산골프장 조성 논란은 올해 사업 예정지 안에서 대규모 벌채가 이뤄지면서 불거졌다. 23일 구례군에 따르면 군은 지난 2월 8일부터 산동면 좌사리 일원 산 16개 필지(21만㎡)의 소나무 1만600여그루 벌채를 허가했다. 구간별로는 1차 5만㎡(약 1만5000평), 2차 16만㎡(약 4만8000평) 등 축구장(7140㎡) 29.4개 면적이다.

주민들은 산 주인이 시행사 이사라는 점을 들어 “골프장 허가를 쉽게 받기 위해 벌채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해당 지역은 2004년에도 골프장 예정 부지에 포함됐다가 개발이 무산됐다.


주민들 “농약 등 환경오염·산사태 우려”


전남 구례군 사포마을 주민인 전경숙(60·여)씨가 21만㎡(약 6만3500평)의 소나무 벌채가 이뤄진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들은 “나무를 벌채한 곳은 마을 바로 윗부분 산자락인 데다 지리산국립공원과 맞물린 곳”이라며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의 생태계 보전가치나 산사태 위험에 대한 제대로된 평가 없이 허가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3년 전 곡성 산사태 같은 사고 안된다”


2020년 8월 8일 총 5명의 사망자가 확인된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성덕마을 산사태 사고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주민들은 ‘사포마을 골프장 건설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박현무(57) 비상대책위원장은 “구례와 인접한 곡성에서도 3년 전 산 정상부 도로가 무너져 5명이 숨졌다”며 “국립공원인 지리산에서까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곡성 산사태는 2020년 8월 7일 폭우 때 구례와 인접한 곡성군 오산면 마을 뒷산이 무너져 주민 5명이 숨지고 주택 5채가 매몰된 사고다.


구례군 “경사 완만하고 지반 안정적”


전남 구례군이 지난 2월부터 소나무 1만600여그루의 벌채를 허가한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벌목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구례군은 산림자원법상 산림보호구역이 아니어서 ‘수확 벌채’를 허가했다고 한다. 수확 벌채란 조림을 통해 얻어진 나무를 베어서 목재를 생산하는 사업이다. 산사태 위험성에 대해서는 “군청 자체조사 결과 경사가 완만하고 지반이 안정적이어서 산사태 위험지역이 아닌 것으로 판단됐다”고 말했다.

구례군 관계자는 “벌채 허가지역 외 무단 벌목 여부를 조사하고 수확 후 추가 조림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산 주인 4명은 벌채 허가를 받으면서 소나무 벌채 후 편백나무로 바꿔 심겠다는 조림 계획서를 제출했다.


환경단체 “특혜·유착 의혹 감사해달라”


전남 구례군이 지난 2월부터 소나무 1만600여그루의 벌채를 허가한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벌목 현장 위치도. 프리랜서 장정필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감사원과 전남도에 감사를 촉구하고 있다. 산 주인이 이사로 있는 시행사와 골프장을 추진 중인 구례군 사이에 특혜·유착 등이 없었는지를 확인해달라는 취지다. 이들은 지난 21일 오후에도 벌목 현장에서 ‘생명평화기도회’를 열고 골프장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골프장은 필수 사업”…구례군 3월 조성 협약


지난 21일 오후 전남 구례군 산동면 벌목 현장을 찾은 주민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골프장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평화기도회’를 열고 있다. 사진 ‘지리산골프장 개발을 반대하는 구례 사람들’
구례군은 “골프장 조성은 침체한 산동온천지구를 살리기 위한 필수 사업”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3월 23일에는 시행사·시공사와 구례온천CC(가칭) 조성 업무협약을 맺고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도 나섰다. 산동면 관산리 일대 150만㎡ 부지에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하는 게 골자다.

김순호 구례군수는 “지리산온천 관광지는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됐지만 문을 닫는 상가가 늘고 있어 많은 군민이 골프장 사업을 촉구하고 있다”며 “벌채 허가와 골프장은 별개 업무이며, 환경영향평가 등 행정 처리 절차를 준수하겠다”고 말했다.

구례=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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