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 “뮤지컬은 친정… 이르면 내년 신작 선보일 것”

장지영 2023. 6. 24.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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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날들’의 10주년 기념공연을 준비 중인 장유정 영화감독 겸 뮤지컬 연출가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유정은 빠르면 내년에 유일한 박사를 다룬 신작 뮤지컬로 관객을 찾아올 예정이다. 이한형 기자


주크박스 뮤지컬은 인기 대중가요를 활용해 이야기를 엮어낸 뮤지컬을 지칭한다. 세계적인 팝 그룹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가 대표적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친숙한 멜로디로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자칫하면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져 억지스럽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때문에 수많은 주크박스 뮤지컬 가운데 오래도록 살아남은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의 주크박스 뮤지컬도 예외는 아니다. ‘맘마미아!’ 이후 한국에서도 인기 가요를 활용한 뮤지컬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스테디셀러는 몇 안된다. 고(故) 김광석이 불렀던 명곡들로 만든 ‘그날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2013년 장유정의 대본과 연출로 초연한 ‘그날들!’은 1992년 한·중 수교와 그 20년 후의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의문에 싸인 실종 사건의 비밀을 다룬다. 2013년 초연 이후 2020년까지 시즌을 거듭하며 관객 55만명을 돌파했다.

‘그날들’이 올해 10주년을 맞아 돌아온다. 7월 12일~9월 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그날들’에는 유준상 오만석 지창욱 오종혁 서현철 이정열 등 초연 멤버들을 비롯해 김건우와 영재 등 새로운 멤버들까지 가세했다. 10주년 기념 공연에 걸맞은 역대급 초호화 캐스팅 덕분에 다시 한번 거센 돌풍이 불 전망이다. 장유정을 만나 ‘그날들’의 준비과정과 함께 차기작에 대한 계획을 들었다.

초호화 캐스팅 “작품 좋아해준 덕분”
올해 10주년 기념공연을 앞둔 뮤지컬 ‘그날들’의 한 장면. 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날들’이 10주년이 된 만큼 저를 비롯해 초연부터 참여한 배우들 모두 나이를 먹었어요. 하지만 배우들의 경우 나이를 먹었어도 무대 위 연기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배우들이 워낙 열심히 해서 연습 3주 차부터 런쓰루(실제 공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극 전체를 맞춰 보는 연습)를 하고 있어요.”

장유정은 ‘그날들’에 여러 차례 출연한 배우들에 대해선 별도의 지시를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합류한 배우들에 대해선 이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극중 인물이 누구를 롤모델로 했는지 설명하는 시간을 꼭 가진다. 그는 “배우들과 그들의 극중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이해도와 애정이 확 커진다. 주·조연은 물론이고 앙상블도 마찬가지”라면서 “‘그날들’의 캐스팅이 좋은 것은 제작사의 노력도 있지만, 배우들이 이 작품을 좋아해서 꾸준히 참여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유정은 최근 영화감독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뮤지컬계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 시절 만든 뮤지컬 ‘김종욱 찾기’가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2006년 대학로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첫사랑을 찾아주는 주식회사에서 김종욱을 찾는 여주인공의 좌충우돌을 사랑스럽게 그렸다. 초연 당시 3개월간 객석 점유율 92%를 기록하는 등 신드롬을 일으키며 소극장 창작뮤지컬 제작 붐의 출발점이 됐다.

영화·메가 이벤트서도 연출력 뽐내

2007년부터 상설 공연으로 전환된 ‘김종욱 찾기’는 아직도 매일 공연 중이다. 또한, 한국 뮤지컬로는 처음 중국에서 라이선스 공연되는가 하면 대만과 일본에도 수출돼 여러 차례 공연됐다. 장유정은 “‘김종욱 찾기’는 20대의 내가 들어있는 작품이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출발점이다. 이 작품은 이제 내게 공기처럼 느껴진다”고 밝혔다.
장유정이 대본과 연출을 맡아 히트시킨 창작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의 한 장면. PMC프로덕션 제공


장유정은 ‘김종욱 찾기’에 앞서 대학로 무대에 올린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비롯해 ‘키스 미 타이거’ ‘형제는 용감했다’와 연극 ‘멜로드라마’ 등 쓰고 연출하는 작품마다 히트시켰다. 그리고 2010년엔 자신의 동명 뮤지컬을 영화화한 ‘김종욱 찾기’를 시작으로 ‘부라더’(‘형제는 용감했다’) ‘정직한 후보’ 1~2를 선보여 흥행 감독의 반열에도 올랐다. 그런데, 창작뮤지컬 붐의 주역인 그가 영화계에선 뮤지컬영화를 1편도 만들지 않았다. ‘김종욱 찾기’와 ‘형제는 용감했다’는 원작 뮤지컬이 있지만 일반 극영화로 선보였다.

“뮤지컬영화는 일반 극영화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요. 제작사 입장에서는 안전한 선택이 아닌 거죠. ‘김종욱 찾기’를 예로 들자면 인도 여행이나 첫사랑을 찾아다닌다는 점에서 일종의 로드무비인데, 뮤지컬영화로 만들면 촬영이 만만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뮤지컬영화를 만들 경우 그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서인 선뜻 도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 ‘그날들’ 뮤지컬영화로”

사실 한국 영화계에서 뮤지컬영화는 오랫동안 불모지였다. 할리우드와 같은 뮤지컬영화의 전통이 없는 데다 공연장에서도 뮤지컬이 인기를 얻은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이마저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며, 영화화 할 수 있는 고유의 창작뮤지컬은 여전히 부족하다. 여기에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 등 창작자들이 뮤지컬영화 문법에 익숙지 않은 상황이다. 다행히 한국 창작뮤지컬의 층위가 빠르게 두터워지는 데다 최근 뮤지컬영화 ‘영웅’과 ‘인생은 아름다워’가 등장해 가능성을 보여줬다.

“뮤지컬영화에 대해 한국 관객이 느끼는 불편함은 뮤지컬 특유의 ‘판타지’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하잖아요. 관객 입장에서 외국 작품은 ‘거리두기’가 되지만 한국 작품은 그렇지 않거든요. 할리우드 뮤지컬영화 속 캐릭터의 감정에 동화되지만, 현실로 보진 않잖아요. 이에 비해 한국 뮤지컬영화에 대해서는 어색하거나 오글거리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래도 한국 관객들이 뮤지컬영화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언젠가 뮤지컬영화를 만든다면 ‘그날들’이 적합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인 ‘그날들’은 노래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뮤지컬영화로서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가기가 수월하다”는 그는 “한국에서 뮤지컬영화가 좀 더 확장되면 앞으로 영화화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고 피력했다.

유일한 박사 다룬 신작 대본 탈고

그는 영화 외에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연출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공연계에서는 한국 창작뮤지컬의 불꽃을 쏘아 올린 그가 신작 뮤지컬을 만들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는 지난 10년간 ‘그날들’의 재연과 2020년 송승환 주연 연극 ‘더 드레서’ 연출로만 무대에 돌아왔다. 그는 “영화는 준비과정부터 제작까지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되고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뮤지컬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뮤지컬계에서 내 작품을 기다려주고 물어봐 주는 게 너무 감사하다”면서 “뮤지컬은 내게 친정이다. 편하고 애틋한 감정이 들면서도 부담도 점점 커진다. 좋은 작품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다고 생각하니까 신작을 준비하는 게 더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오랜 기다림 끝에 그의 신작 뮤지컬이 머지않은 시기에 관객을 찾아올 예정이다.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를 다룬 작품(가제 ‘자작나무 숲’)으로 사후에 드러난 독립운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실존 인물 소재의 대극장 뮤지컬이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대본 작업은 마친 상태다. 대관 등의 문제로 시기를 확정해서 말하기 어렵지만, 이르면 내년 하반기가 될 것 같다”면서 “‘김종욱 찾기’는 학생 시절에 멋모르고 3일 만에 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을 쓰기가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한 자 한 자 쓰는 게 천근만근”이라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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