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고 터진 날, 학교에 떠돈 7행시

김동휘 2023. 6. 2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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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통한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오류... 시험 다시 내야할 판, 교육부에 분통

[김동휘 기자]

 23일, 한 시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보낸 긴급 공문.
ⓒ 윤근혁
  
오늘(23일)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며칠전 전환된 제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에서 프린트를 하면 다른 문서가 출력되거나 다른 곳에서 출력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그러자 교육부는 시험 문제를 순서 변경, 필요한 경우 문항 순서 변경 등 학교에서 적절한 조치를 하라는 명령(또는 지시)을 내렸다(관련기사: 다른 학교 '기말고사 정답' 유출... 교육행정시스템 초유의 대형사고 https://omn.kr/24hy7).

물론 지금까지의 공문 형태로 볼 때 '업무 요청'이라든가 '학교 간 협의를 통해'라는 자율권을 보장하는 듯한 문구는 붙어 있었으나 그것이 협의를 통해 고치지 않기로 했다가 터지는 일에 대해서는 학교 측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가 깔려 있음을 모르는 학교는 없을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출력했던 시험지는 모두 폐기 처분하고, 재편집하여 다시 인쇄하고 분철(시험지를 각반마다 나누는 것)하기로 했다.

우리 학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학교는 시험이 불과 다음 주 수요일인데 그러하다. 인근의 어떤 학교는 당장 월요일부터 시험이 시작되는데 딱 하고 오늘 조처가 내려온 것이다. 적어도 경기도에 있는 많은 학교가, 많은 선생님들이 혼란스럽고 괴로운 날이다.

시험지를 손대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출제에만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출제한 후에는 내용과 편집을 전공 교과 교사들이 교차 검토한 후 특정 부서에서 확인하고 점검하는데 그 수정 과정만 세 번이 넘을 때도 있다. 점검 교사들은 일주일 정도 야근하며 시험지를 검토하고 수정 사항을 협의한다. 그렇게 고친  시험지는 주무관의 인쇄를 통하여 전체 편집하고, 교사가 인쇄 점검, 분철, 문제 점검을 다시 하게 된다.

이러한 교사와 주무관들의 노고가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요구하지 않았던 제4세대 나이스 전환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교육부, 책임감 있는 태도 보여야
 
 제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 첫 화면. 2023.6.23
ⓒ 나이스
 
분통이 터지는 학교 현장에서는 오늘 이러한 7행시가 나돌기도 했다.

제 – 제가 하자고 했나요?
4 – 4세대 나이스로 굳이 지금 바꾸자고?
세 – 세상 바쁜 이 때에 뭐하는 짓입니까?
대 – 대안은 없고 할 일은 많은데
나 – 나랏일 하는 사람들은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신경 안 씁니까?
이 – 이런 문제가 일어나니 그냥 다시 하라구요? 공문 보내면 다입니까?
스 – 스X, 욕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기실, 교사들은 왜 4세대 나이스 전환을 지금 이 때에 꼭 해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를 모른다. 학생부 조작 방지, 대기업 참여 막기 등 몇 가지 명목만 일방적으로 안내받았을 뿐이다.

6월에 학교는 1학기 성적 처리와 관련된 일(수행평가 입력, 지필평가 고사 자료 입력,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 입력 등)로 나이스를 과도할 정도로 사용해야 한다. 7월 말이면 방학인데 나이스 사용이 좀 적은 그때 전환하면 안 될 정도로 4세대 나이스 전환이 그렇게 시급한 일이었는지 의문이다.

오늘 드러난 심각한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나이스 전환으로 마비된 동안 많은 교직원들은 엄청난 불편을 겪어야 했다. 교직원의 불편은 그저 일하는 자의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생의 불편, 학부모의 불편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많은 문제 앞에서 그저 지시라니 이것이 과연 교육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교육청이 교육지원청으로 바뀐 지 꽤 되었다. 그 의미인즉슨 상위 기관이 아니라 교육 현장을 지원하는 지원 기관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니까 학생, 학부모, 교사라는 교육 주체가 만드는 교육 현장에 초점을 맞춘 교육 행정을 하겠다는 의지가 녹아 있는 이름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4세대 나이스 전환과 시험 재편집 지시에서 보이는 모양새에서는 그러한 의지가 과연 진심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다.

- 교육 주체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동의를 얻지 않았다.
- 시기와 전체 절차에 대한 협의 없이 진행했다.
- 일이 벌어지자 사과나 해명 없이 일방적인 지시가 내려왔다.

어떤 집단이든 사기라는 것이 있다. 교육부는 교사의 사기를 과연 신경 쓰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사기란 '1. 의욕이나 자신감 따위로 충만하여 굽힐 줄 모르는 기세 2. 선비의 꿋꿋한 기개'로 나와 있다.

교권의 힘겨움이 날로 토로되는 이 시대에 교사가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정말 꿋꿋한 기개 또는 기세를 가지고 학생의 성장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교사에게 책임 있는 태도를 권하고 묻기 위해서는 적어도 교사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교육부부터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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