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에 1300억 국부 유출이라니…"불복해야" 지적
특정 자본 세력에 유리한 ISDS 제도 문제점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 결과와 관련해 비판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연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더해 약 1300억원을 국민 세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부 유출'이라는 우려도 쏟아진다.
당초 엘리엇이 1조 원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중재에 선방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국민연금공단이 주주로서 적법한 주주권을 행사했다는 법리적 해석도 팽팽하게 맞서며 '부당한 결과로, 우리 정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주장도 법조계를 중심으로 흘러나온다. 세금 낭비를 넘어 기업의 정상 경영을 방해할 수 있는 국제 투기 자본 세력의 놀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23일 법무부는 '엘리엇 국제투자 분쟁(ISDS) 사건 판정 선고'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의 세금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대리 로펌 및 전문가와 함께 판정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엘리엇에 690억 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절차(ISDS) 판정이 나온 지 약 사흘 만이다.
중재판정부가 인용한 금액은 당초 엘리엇이 청구한 전체 배상금 7억 7000만 달러(약 9917억원) 중 약 7%다. 다만 우리 정부가 엘리엇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13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배상금에 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모두 더해야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승인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한 결과 주가 하락 등으로 7억7000만 달러(약 99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중재의 핵심 쟁점은 '정부의 부당 개입 여부'다. ISDS는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에 차별적 조치를 행했을 때 이를 중재하는 제도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주주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당시 실체적 조치를 이행한 것은 국민연금이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정부 조치로 해석하기엔 무리라는 법리적 해석이 나온다.
상법상 특정 주주의 주주권 행사가 다른 주주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발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삼성물산의 주주인 국민연금이 특정 안건에 찬성했다고 해서 다른 주주인 엘리엇이 국민연금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애초에 ISDS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중재 판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또한 실제로 엘리엇의 손실 여부가 뚜렷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사건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던 엘리엇은 당시 합병 비율이 부당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고, 주가가 하락하자 이듬해 지분을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궁극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ISDS 제도의 문제점을 손봐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ISDS는 선진국 투자자가 후진국에 투자했다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구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 그 특성상 투자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실제 전세계 ISDS 현황을 따져보면 선진국 기업 혹은 펀드가 비교적 후진국 정부를 대상으로 중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강자의 횡포'로 인한 '국부 유출'이라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엘리엇 건 외에도 우리 정부는 현재까지 총 10건의 중재 요구가 제기된 상태다. 엘리엇을 포함한 5건은 중재판정부의 판정이 나왔으나 나머지 5건은 여전히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번 엘리엇 중재판정 수용이 자칫하면 향후 수조원대에 달하는 혈세 낭비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한국 정부가 ISDS 판정에 무력하게 당하는 선례를 남기지 말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근거다.
남은 ISDS 사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을 문제 삼은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탈' 사건이다. 메이슨은 2018년 우리 정부를 상대로 2억 달러(한화 약 26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같은 해 10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승강기업체 쉰들러 홀딩 아게도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규모는 1억9000만 달러(약 2400억원)다. 2021년에는 이란계 다국적 기업 엔텍합 그룹을 소유한 다야니 가문이 우리 정부의 배상금 지급 지연에 대해 두 번째 소송을 제기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낸 두 건의 ISDS도 진행 중이다. 2020년에는 중국인 투자자 민모 씨가 국내에서 수천억원의 대출금을 갚지 않아 담보를 상실하자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했으며, 이듬해에는 미국 국적 투자자가 부산광역시 수영구 재개발 사업에 따른 토지 수용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바 있다.
항소, 상고가 가능한 법원과 다르게 국제 중재는 '단심제'로 진행된다. 불복 절차를 진행한다면 취소 소송이 사실상 전부다. 취소 소송은 양측이 합의한 중재국에 제기할 수 있고, 판정이 나온 후 28일 이내에 해야한다. 이에 엘리엇 측은 우리 정부에 승복을 압박하고 있다. 당시 국정농단 재판을 맡은 특검이 현 윤석열 대통령이었다는 점을 에둘러 강조하며 배상 판정의 근거를 합리화하는 모양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론스타에 이어 엘리엇까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승소 판결을 끌어내 수천억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국민 혈세로 내는 것 아니냐"며 "ISDS 제도 자체도 특정 자본세력에게만 유리하다. 아울러 정상적인 기업 경영까지 위축시키는, 자칫 투기 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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