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최대국 과테말라 대선 D-3, 美·中·대만 관심 쏠린 이유는

박형수 2023. 6. 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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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벨리즈·과테말라·엘살바도르·온두라스·니카라과·코스타리카·파나마 등) 지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1800만명) 과테말라에서 오는 25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다. 외신은 “이번 대선에 정작 과테말라 유권자들의 관심은 이례적으로 낮은 편이나, 미국과 중국·대만 등 국제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22일(현지시간)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유세. AFP=연합뉴스


22일 미국의 악시오스·프로그레시브와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과테말라 대선에 출마한 22명의 후보(부통령 후보 포함 44명)들이 막판 유세에 집중하고 있다. 과테말라 최고선거법원(TSE)은 마지막 선거 유세일(23일)을 하루 앞두고 유권자 이동 편의와 투표용지 배분 등 선거를 위한 점검을 마무리했다. 과테말라 대통령 임기는 4년 단임제로, 2020년 취임한 알레한드로 히아마테 현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다.


전 영부인, 외교관, 독재자 딸 1·2·3위


가디언은 대선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권자들의 분위기는 유례없이 가라앉아있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달 과테말라 헌법재판소가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유력 대선후보인 카를로스 피네다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면서 대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한 원주민 운동가 텔마 카브레라와 알바로 아르수 전 대통령의 아들인 로베르토 아르수도 각종 절차 상의 문제로 후보 등록이 금지됐다. 지난 15일엔 정부 비판에 앞장서 온 언론인이 구속됐다.
지난달 대통령 후보 자격을 박탈당한 카를로스 피네다. AP=연합뉴스

과테말라의 헌법학자인 에드가 오티즈는 “선거를 앞두고 법의 적용이 예측불가능하고 자의적”이라며 ‘민주주의 퇴보’를 우려했다. 한 인권운동가는 “이번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정치 마피아의 득세, 다음 세대에 대한 위기가 계속될 것”이라며 “(선거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 됐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유지 중인 후보 3명은 모두 야당 소속이다. 가디언은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가 전 영부인인 산드라 토레스(국민희망연대·UNE)라고 전했다.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그는 대통령 가족의 차기 대선 출마를 금지하는 과테말라 법에 따라, 알바로 콜롬 전 대통령(2008~2012년 재임)과 이혼하고 2011년(선거법 위반으로 탈락)과 2019년(2차 투표에서 낙선) 대선에 출마했었다. 이번이 세번째 대권에 도전이다. 콜롬 전 대통령은 2018년 불법 선거자금 조달로 부패 혐의를 받아 수감됐다 6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바 있다.

과테말라 산타카타리나 피눌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 참석한 지지율 1위 후보인 산드라 토레스. AP=연합뉴스


추격 중인 후보는 외교관 출신인 에드몬드 물레트다. 중도 우파 성향인 그는 과테말라 내전 시기에 부적절한 해외 입양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이를 부인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절, 유엔의 아이티 안정화 지원 단장을 역임했다. 3위인 수리 리오스는 과테말라의 독재자 에프레인 리오스 몬트(1926~2018)의 딸이다. 군인 출신인 몬트 전 대통령은 과테말라 내전 당시 공산주의를 근절한다는 이유로 1771명의 마야인 대량 학살을 주도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현지 매체는 여론조사 지지율 흐름으로 볼 때 25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1, 2위 득표자가 오는 8월20일 결선 투표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3위권 후보인 수리 리오스가 유세에 나와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외신 "중국 택한 온두라스와는 다를 것"


과테말라의 새 행정부가 중국과 대만 중 어느 쪽과 손잡을지도 관건이다. 지난 3월 중미 국가인 온두라스는 대만과 단교, 중국 수교를 택했다. 4월 대선을 치른 파라과이에선 친(親) 대만파와 친중파가 맞붙었는데, 대만파가 승리를 거뒀다.

과테말라는 대만의 수교국으로, 지난 4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중미 순방 때 첫번째 방문한 나라다. 당시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독립은 중화민족의 의지와 이익에 반하고 역사의 흐름에도 어긋난다”면서 “과테말라가 대세를 빨리 읽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며 대만과의 단교를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지난 4월 타이완에서 열린 과테말라 커피 판촉행사에 참여한 알레한드로 히아마테 과테말라 대통령(왼쪽)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현재로선 “어떤 후보가 당선되던, 대만과의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프로그레시브)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과테말라에겐 미국 정부의 환심을 사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7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수도를 예루살렘이라 선언하자, 과테말라가 곧바로 텔아비브에 있는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적도 있다. 프로그레시브는 “과테말라는 민주주의 후퇴, 반부패에 대한 서방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대만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정치 혼란-불법이민 급증' 우려


한편 미국은 과테말라 대선 이후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질 경우 미국행 불법 이주자가 급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대선 출마가 좌절된 후보들은 지지자들과 함께 무효표 운동을 비롯한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멕시코와 과테말라 사이의 국경을 향해 가고 있는 중남미의 불법 이주민 행렬. EPA=연합뉴스

과테말라는 인구 절반 이상이 빈곤에 처해 있으며, 어린이의 절반은 만성 영양 실조에 시달리는 빈국이다. 인권 단체들은 배고픔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는 과테말라 국민이 매년 증가 중이며, 2050년까지 이들의 미국행 불법이주가 약 400만 명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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