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못준다고? '사라진 저금' 4100억, 日우체국 황당 규정

김현예 2023. 6. 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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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 되고 약 20년 지나면 안 돌려줍니다.’

오랜 시간 우체국에 맡긴 저축이 일본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유초은행(우편저축은행)에 돈을 맡기고 만기 후 20년 이상 지난 일부 저금의 경우 국고로 넘어간다는 법 규정 때문이다.

23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사라진 저금’은 지난 2021년 기준 457억엔. 우리 돈 약 41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는 만기가 지나도 찾아가지 않고 오랜 시간 은행에 남아있는 저축 잔액은 4000억엔(약 3조6400억원)이 넘고, 오는 2037년까지 이 돈이 모두 사라지게 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23일 일본 도쿄 시내에 있는 우체국 은행에서 손님들이 은행 업무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내 돈을 못 준다고?” 우편저금법이 뭐길래


우체국에 돈을 맡겼는데 돈을 찾지 못하게 된 황당한 이유는 일본의 옛 우편저금법 때문이다. 유초가 지난 2007년 민영화되기 전까지 이 법에 근거에 운영을 해왔는데, 이 법에 따르면 만기로부터 20년 2개월이 지나면 저축한 사람의 권리가 사라지도록 돼 있다.

아사히에 따르면 아오모리(青森)현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한 여성(55)은 지난 2021년 가을 유초에 들렀다가 예금을 인출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여성은 20세 때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용돈, 야근하며 번 돈 약 50만엔을 지난 1990년 유초에 들고 갔다. 가입한 건 10년 만기 정액우편저금. 금리가 높았던 시기라 이자가 꽤 붙을 거란 기대감도 컸다고 했다.

결혼하고 한참을 잊고 있다 새 차를 살 일이 생겨 은행을 찾은 여성은 “법에 따라 인출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 가입했던 저금이 10년이 지난 2000년에 만기가 됐고, 그로부터 20년 2개월이 지나 권리가 소멸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여성은 “왜 국가가 저금을 빼앗느냐, 원금이라도 돌려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23일 일본 도쿄 시내에 있는 한 유초은행 풍경. 유초은행은 민영화 이전 거래된 저금에 대해 만기 후 20년 2개월이 지난 경우 예금 반환을 하지 않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우편으로 '권리 상실' 통보


유초는 예치한 예금 만기 후에도 20년이 지난 예금주들을 대상으로 안내서를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2021년에 유초가 발송한 15만여 통의 ‘우편엽서’ 등 가운데 80%에 달하는 11만5000여 통이 되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를 해서 주소가 바뀐 경우가 많아 제대로 예금 소유주에게 연락이 닿질 않았다는 얘기다.

만기 후 20년 2개월이 지난 경우에도 '반환 신청(권리 소멸 취소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유초 심사를 거쳐야 해 벽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아사히는 반환 신청 건수가 지난해 1566건으로 전년 대비 1.8배 증가했다고 전했다. 이 중 지난 3월까지 유초 심사가 완료된 건은 958건. 이 중 돈을 주인에게 돌려준 사례는 고작 24.9%(239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돌려주지 않는 저금이 문제가 되면서 국회에서까지 지적되기도 했다.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총무상은 “주의 깊은 대응이 필요하다”면서도 예금 등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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