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못준다고? '사라진 저금' 4100억, 日우체국 황당 규정
‘만기 되고 약 20년 지나면 안 돌려줍니다.’
오랜 시간 우체국에 맡긴 저축이 일본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유초은행(우편저축은행)에 돈을 맡기고 만기 후 20년 이상 지난 일부 저금의 경우 국고로 넘어간다는 법 규정 때문이다.
23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사라진 저금’은 지난 2021년 기준 457억엔. 우리 돈 약 41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는 만기가 지나도 찾아가지 않고 오랜 시간 은행에 남아있는 저축 잔액은 4000억엔(약 3조6400억원)이 넘고, 오는 2037년까지 이 돈이 모두 사라지게 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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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을 못 준다고?” 우편저금법이 뭐길래
우체국에 돈을 맡겼는데 돈을 찾지 못하게 된 황당한 이유는 일본의 옛 우편저금법 때문이다. 유초가 지난 2007년 민영화되기 전까지 이 법에 근거에 운영을 해왔는데, 이 법에 따르면 만기로부터 20년 2개월이 지나면 저축한 사람의 권리가 사라지도록 돼 있다.
아사히에 따르면 아오모리(青森)현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한 여성(55)은 지난 2021년 가을 유초에 들렀다가 예금을 인출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여성은 20세 때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용돈, 야근하며 번 돈 약 50만엔을 지난 1990년 유초에 들고 갔다. 가입한 건 10년 만기 정액우편저금. 금리가 높았던 시기라 이자가 꽤 붙을 거란 기대감도 컸다고 했다.
결혼하고 한참을 잊고 있다 새 차를 살 일이 생겨 은행을 찾은 여성은 “법에 따라 인출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 가입했던 저금이 10년이 지난 2000년에 만기가 됐고, 그로부터 20년 2개월이 지나 권리가 소멸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여성은 “왜 국가가 저금을 빼앗느냐, 원금이라도 돌려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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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으로 '권리 상실' 통보
유초는 예치한 예금 만기 후에도 20년이 지난 예금주들을 대상으로 안내서를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2021년에 유초가 발송한 15만여 통의 ‘우편엽서’ 등 가운데 80%에 달하는 11만5000여 통이 되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를 해서 주소가 바뀐 경우가 많아 제대로 예금 소유주에게 연락이 닿질 않았다는 얘기다.
만기 후 20년 2개월이 지난 경우에도 '반환 신청(권리 소멸 취소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유초 심사를 거쳐야 해 벽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아사히는 반환 신청 건수가 지난해 1566건으로 전년 대비 1.8배 증가했다고 전했다. 이 중 지난 3월까지 유초 심사가 완료된 건은 958건. 이 중 돈을 주인에게 돌려준 사례는 고작 24.9%(239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돌려주지 않는 저금이 문제가 되면서 국회에서까지 지적되기도 했다.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총무상은 “주의 깊은 대응이 필요하다”면서도 예금 등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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