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남녀 옭아맨 남성중심경제…탈출하라 아빠만의 자본주의

서믿음 2023. 6. 2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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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출발 남녀 비슷하지만
출산·육아로 女 경력 내리막길
결국 남성에게 가장 먼저 악영향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1980년대 말 서구 사회의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더 오래 교육받았고, 남성 전유 직업으로의 진출도 용이했다. 의사나 법관의 길을 선택하는 여성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1990년대 들어 힘을 잃었다. 많은 여성이 고용불안정의 위협에 노출됐다.

불평등의 문화적 기원에 천착해온 저자는 이런 성별 간 경제적 불평등이 생물학적 요인보다 문화적 요소와 결부된 문제라고 주장하며 이를 경제학적 데이터를 토대로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은 ‘전쟁’을 계기로 대거 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 남성들의 징집으로 노동력 공급에 공백이 생기자 기존 남성 노동력을 대체하도록 강요받았다. 어찌 보면 기회라 생각될 수 있지만 당시 여성은 ‘남성 한 사람만큼 일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고, 여러 여성이 남성 한 명이 수행하던 노동을 분할해서 책임졌다. 저자는 이 점을 일터에 나간 여성이 가치화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축적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 이유로 지목한다.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임시 대체재로 간주 됐다는 것이다. 다만 여성의 노동이 ‘정상적인’ 사회 규범으로 간주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저자는 이후 여성의 노동 인식 변화를 아우르면서 성별 임금 격차에 초점을 맞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80년대까지 성별 임금 격차는 꾸준히 감소했다. 오늘날 유럽연합(EU)의 성별 임금 격차는 15% 수준에 이르렀다. 성별 임금 격차는 시대 변화에 따라 나름의 ‘진보’를 이뤘지만 어느 때부턴가 정체 상태에 빠졌다. 저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토대로 1995년 프랑스 내 성별 임금 격차가 14.57%를 기록한 이후 현재까지 별다른 변화가 엿보이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사실 출발선상에서의 성별 간 임금 수준은 상대적으로 같다. 여성과 남성이 거의 비슷한 임금에서 시작하고 승진하지만 결정적 계기를 기점으로 갈라지게 되는데 그건 바로 ‘출산과 양육’이다. 일반적으로 남성 소득이 완만한 상승세를 그리는 반면 여성은 감소 또는 중단을 경험한다. 경구피임약 보급으로 여성이 임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엄마 역할’에 따른 대가를 피해 가긴 어려웠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첫 자녀를 낳은 여성이 그 전 해보다 약 60% 적은 돈을, 출산 1년 뒤에는 80% 적은 돈을 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를 바로잡으려는 제도적 노력이 있었다. 1963년 미국에서는 임금평등법이 시행되면서 동일한 직능에서 성별 간 차등을 금지했다. 여성이란 이유로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상징적으로 의미가 있었으나 이런 규율은 직장 내 남성 선호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고, 실제로 고소득 직군에서부터 여성 비율이 줄면서 평균 임금 격차는 변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어렵사리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 육아휴직 제도를 이용한다고 해도 완전한 형태의 고용 평등을 이루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존재한다. 경제 활동이 중단된 여성은 직장에서 승진과 교육 기회를 놓치고, 집에서는 육아 지식이 여성에게 편중되면서 일터와 가정 모두에서 불균등한 부담을 피해 가기 어렵다. 저자는 "비록 여성 대부분이 자녀를 낳고 일터로 돌아가지만 노동 시간을 줄이고 더욱 유연한 근무 환경을 선택하며 공공 영역이나 더욱 가족 친화적이고 보상이 적은 기업 쪽으로 이직한다"며 "여성의 노동 시간이 꼭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선택 때문에 이들의 직업 숙련도는 변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런 환경이 남성에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가부장 자본주의’를 근거로 남성성 규범에 가장 먼저 부정적 영향을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남성이라고 강조한다. 과잉 경쟁에 따른 극단적 선택, 초과 사망률과 관련한 결과가 남성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 저자는 "남성들은 여성적이라 인식되는 일자리를 갖기보다 실직 상태로 있거나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한다"며 "2000년대 말 미국의 대침체 이후 모르핀 계통의 약물 소비와 자살률이 증가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극소수의 남성만이 이득을 얻을 뿐 모두가 피해자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일부 남성에게 특혜가 집중되며, 강력한 젠더 규범하에서 많은 남성이 폭력과 높은 자살률에 위협받는다는 주장이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가부장 자본주의를 해체하려면 이런 이데올로기의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지지자 모두를 가정과 기업과 정부에서 몰아내야 한다. 남성과 딸과 아들을 위해 남성도 함께해야 한다"며 "여성과 남성 모두 현실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를 해방하자"고 강권한다.

가부장 자본주의 | 폴린 그로장 지음 | 배세진 옮김 | 민음사 | 276쪽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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