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사랑이 무어냐 물으니 연극이 되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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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고 썼다가, 그 다음은 쓰지 못했다'는 문장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사양'에 등장한다.
이 소설은 몰락한 귀족 가즈코가 절망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사랑으로 길을 잃고 방황하던 그를 치유한 이 연극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서는 안 된다고 매번 아로새겨도 그저 번민만 남을 뿐, '사랑이라는 불꽃에 금기라는 기름을 부으면' 더욱 불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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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홉편으로 본 사랑의 의미
'사랑이라고 썼다가, 그 다음은 쓰지 못했다'는 문장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사양’에 등장한다. 이 소설은 몰락한 귀족 가즈코가 절망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럴 때, 연극’을 쓴 최여정 작가는 사랑에 대해 책을 쓰며 이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지만, 누구도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일까. 사랑이라고 쓰고 나서도 당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게 됐을 때, 작가가 글을 이어가기 위해 기댄 것은 아홉 편의 연극이다. 사랑으로 길을 잃고 방황하던 그를 치유한 이 연극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꺼낸 것은 금지된 사랑이다. 장 라신의 ‘페드르’는 양아들을 사랑하는 내용이다. 사랑은 공교롭게도, 가로막으면 더 뜨거워진다. 해서는 안 된다고 매번 아로새겨도 그저 번민만 남을 뿐, ‘사랑이라는 불꽃에 금기라는 기름을 부으면’ 더욱 불타오른다. 이 사랑은 끝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끔찍한 고통도 결국 사랑의 모습이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육체와 정신 중 당신을 사랑으로 이끄는 건 무엇인가. 이 질문이 오래 반복돼 왔다는 것은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가 여기서 찾은 것은 본디 사랑은 불완전하다는 것. 그래 이것을 발견하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라고 썼다.
피터 섀퍼의 ‘아마데우스’는 영화로 익히 알려져 있듯이 질투에 대한 이야기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 대한 신의 사랑을 질투한다. 이 희곡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인 범인이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질투는 이렇듯 파멸을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범인(凡人)’들 사이에서 질투는 이별의 동기가 되기 십상이다. 난 질투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다짐해도 소용없다. 사랑이 덮쳐오는 것만큼이나 질투라는 감정도 삽시간에 우리를 감싼다. 초연하려 노력해도 질투를 느끼는 그 순간의 열등감은 초라하다. 작가는 질투로 헤어지게 됐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질투로 관계를 무너뜨렸던 우리를 위무한다.
다시 ‘사양’의 얘기로 돌아와서, 다자이 오사무는 이 작품을 쓰기 전 일본판 ‘벚꽃 동산’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벚꽃 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을 소개하며 작가는 ‘벚꽃 동산’의 라네프스카야 부인이나 ‘사양’의 가즈코 만큼이나 아름답고 용기 있고 생을 산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덧놓는다.
사랑은 그랬다. 때로는 고통이었고 질투였다가 기억이기도 했다. 그리고 늘 흔들렸다. 확신에 찬 사랑은 그저 놀랍지만, 동시에 불안하다. 이 책에서 전하는 아홉 편의 연극은 이보다 더 많은 인생과 사랑의 모습을 함축한다. 사랑은 저마다 다를진대 여기에 담긴 것보다 더 다양한 사람과, 사랑과 우리는 맞닥뜨린다.
돌이켜보건대 사랑 앞에서 얼마나 서툴렀던가. 또 길을 잃었고, 지금도 그 어디인가를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사랑에 혼란스러웠던 작가는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책을 마친다. 사랑이라고 쓰고 나서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던 가즈코도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며, 낡은 도덕과 끝까지 싸우기로 한다. 이것은 가즈코의 답, 우리는 각자의 답을 찾아야 한다. 삶이 계속되는 한 사랑은 저물지 않으니까. 이 책은 그 여정에 보내는 응원이다.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최여정 지음/틈새책방/1만5000원)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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