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가격 또 올라 1ℓ짜리가 3000원…'밀크플레이션' 우려

구은모 2023. 6. 23.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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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감소·원유값 상승에 유업체 실적↓
원유 ℓ당 69~104원 범위 내 인상 전망
제조사에 대한 세제지원 등 필요 목소리

매년 우유 소비가 감소하며 국내 유업체들의 실적 부진이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원유(原乳)가격이 역대 최대 폭으로 인상될 전망이다. 실제 소비량과 괴리된 원유 가격 결정 제도로 인해 원유가격이 인상하고, 이로 인해 우유 및 관련 제품의 가격도 연쇄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가격 상승 부담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3일 낙농진흥회의 유통소비통계에 따르면 국내 1인당 백색 시유(흰우유) 소비량은 2012년 28.10㎏에서 2022년 26.20㎏으로 줄었다. 반면 ℓ당 원유 가격은 2018년 4원, 2021년 21원, 지난해 49원 오르는 등 인상 폭을 점점 키우며 우윳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소비는 꾸준히 축소되고 있지만 가격은 매년 인상을 거듭하면서 유업체들의 실적도 망가지고 있다. 매일유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9% 감소하며 607억원에 그쳤다. 올해도 1분기 영업이익이 126억원으로 25.6% 감소했다. 서울우유도 2021년 582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18.7% 감소하며 473억원으로 축소됐고, 같은 기간 남양유업은 영업손실 868억원으로 적자 상태를 이어갔다.

원유가격, 역대 최대 수준으로 오른다

최근 유업체들의 실적 부진 기저에는 소비량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원유가격 결정 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낙농업계와 유업계 관계자 등으로 이뤄진 낙농진흥회는 지난 9일부터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올해 원유가격을 정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원유기본가격은 통계청이 발표하는 전년도 ‘축산물생산비조사 결과’를 토대로 결정됐다. 하지만 올해는 새로운 낙농 제도가 시행되며 해당 생산비조사 결과와 함께 우유 사용량 변화를 고려해 협상 범위가 정해진다.

지난해까지 원유가격은 ‘생산비 연동제’에 따라 결정됐다. 생산비 연동제는 원유의 가격을 낙농가의 생산비 증감에 따라서만 결정하는 방식인데, 우유 수요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원유 가격을 끌어올리기만 한다는 지적이 일면서 작년 9월 ‘용도별 차등가격제’로 우유 가격 결정 제도가 개편됐다. 올해부터 도입된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원유를 마시는 우유인 ‘음용유’와 요거트·아이스크림 등에 사용되는 ‘가공유’로 나누고 음용유 가격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가공유 가격은 더 낮게 책정하는 방식이다. 유업계에서 가공유를 더 싼값에 사들여 국산 유가공 제품의 가격도 낮아지고, 값싼 수입산과의 경쟁에서 버틸 수 있다는 이유로 도입됐다. 장기적으로는 우유 자급률도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올해 원유가격은 ℓ당 69∼104원 범위에서 가격 인상이 이뤄질 예정이며, 이 경우 원유 가격은 ℓ당 1065∼1100원이 된다. 최저선에서 협상이 이뤄진다고 해도 69원은 원유 생산비 연동제가 시행된 2013년 106원이 오른 이후 인상 금액 기준으로 최대 인상 폭이다.

다만 정부는 현재 협상 범위의 최대치로 결정되더라도 과거보다 인상 폭이 낮은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과거 생산비 연동제 기준 인상 범위 기준 ℓ당 104~127원(생산비 증감분의 90~110%)보다 낮은 69~104원(60~90%) 범위에서 결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음용유 사용량은 175만3000t에서 172만5000t으로 1.6% 감소했다. 음용유 변화폭이 1.7% 이내면 ‘적정’ 수준으로 분류해 생산비 증감액의 60∼90%가 가격 협상 범위로 결정된다.

밀크플레이션 우려…소비침체 악순환도

원유가격이 1000원을 넘어 1100원까지 인상된다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문제는 단연 우유 가격 인상과 빵·커피 등 관련 제품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이다. 지난해 원유가격이 ℓ당 49원(5.1%) 인상되자 서울우유(6.6%)를 시작으로 매일유업(9.6%)과 남양유업(8.6%) 등 주요 유업체들도 원유가격 인상분 이상 가격을 올렸다. 올해 원유가격 인상 폭이 6.9~10.4%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제조사들 역시 원유가격 인상분 이상 우윳값을 올려 1ℓ 우유 한 팩은 3000원을 넘을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유업계는 급격한 원유가격 인상은 소비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원유 생산비 증가분을 가격에 반영하는 현 가격 결정 제도의 특성상 원유가격의 지속적인 인상은 불가피하고, 인상된 원재료 가격은 결국 소비자에게 일정 부분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격 인상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한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음용유의 비중이 약 95%에 달하는 상황에서 5% 수준에 불과한 가공유의 가격을 소폭 낮게 유지한다고 해도 유가공 제품의 의미 있는 가격 하락을 이끌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물론 낙농업계도 할 말은 있다. 생산비 상승 폭이 가파른 상황에서 비슷한 수준의 원유가격 인상은 생산기반 붕괴를 막기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유 생산비는 ℓ당 959원으로 전년 대비 13.7%(116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생산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료비가 kg당 641원으로 전년 대비 20.7% 상승했고, 같은 기간 자가노동비 역시 시간당 2만1609원으로 6.4% 증가했다.

유업계에선 매년 원유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현 제도하에서는 제조사에 대한 지원이나 시장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유업계 관계자는 "인상된 원유가격을 기업이 오롯이 떠안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유업체들이 제품 가격 인상을 한다고는 하지만 묶음 상품 등 사실상 연중 할인을 진행하고 있어 가격 인상 효과를 온전히 누리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원유 매입에 대한 지원금이나 회사에 대한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며 "가능하다면 우유 소비 확대를 위한 국가적 캠페인 등 시장 확대를 위한 노력도 더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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