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영웅 차별하는 '보훈 예산'

세종=송승섭 2023. 6. 2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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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73주년
똑같이 목숨 바쳐도 보훈은 차별적으로
어머니 사망시점 따라 수당 최대 4배 차이
애국·보훈, 예산 핑계 없다더니 해결 요원
6·25 전쟁 유자녀인 김시순씨(79)가 22일 서울 동작구 현충원에 마련된 부친 위패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1950년 8월 6일 경찰이던 김복성씨는 충남 홍성군에서 남침 중이던 북한 인민군에 맞서다 포로로 붙잡혔다. 당시 인민군은 김씨와 함께 붙잡은 군인과 경찰들을 사살하기로 결정했다. 33살의 경찰은 그렇게 인민군의 총탄에 의해 사망했다. 4살 연하의 아내와 슬하에 두 딸을 둔 채로. 김씨처럼 6·25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경찰은 1만7628명으로 당시 경찰 인력의 3분의 1이나 된다.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김씨의 아내는 전쟁에서 사망한 남편을 대신해 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다. 가난과 배고픔이라는 고초가 찾아왔다. 피난을 떠나는 바람에 연고도 직장도 없었던 시골에서 벼 타작을 하고 바닥에 깔려 있던 보리 이삭을 주워 겨우 삶을 이어나갔다. 친척을 통해 조그마한 논을 받았는데 1년을 일해도 쌀은 두가마니가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밥 한 그릇을 가지고 세 식구가 나눠 먹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전쟁이 끝나고 보훈수당이 지급되기 시작했지만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6개월에 한 번씩 지급되는 수만원 남짓한 돈으로는 생활이 가능할 리 없었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치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해야 했다. 결국 삶의 고초가 김씨의 아내를 병들게 했다. 하지만 보훈병원과 의료지원 시스템이 미비한 탓에 막대한 의료비 역시 국가가 아닌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 2009년 김씨의 아내는 눈을 감았다.

똑같이 목숨 바쳐 나라 지켰는데…어머니 사망 따라 수당 4배 차이

6.25 전쟁 전자사 유가족 김시순 씨가 22일 서울 동작구 현충원에서 모친이 안장된곳에 부친 사진을 놓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6·25 전쟁 73주년을 사흘 앞둔 지난 22일 김복성씨의 첫째 딸 김시순씨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6살의 어린이였지만 어느덧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이날 김씨는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위패 앞에 영정사진과 아버지가 출근 때 사용하던 경찰 배지를 올려 두고 참배를 올렸다. 위패 뒤 잔디에는 모친이 화장을 했던 장소의 흙을 가져와서 뿌려뒀다. 김씨는 “여기에 우리 엄마가 산다고 생각해서 혼자 음식을 가져와 술과 함께 먹고 집에 돌아가곤 한다”고 말했다.

부친이 전쟁에서 사망한 여파는 김씨의 삶에도 큰 여파를 끼쳤다. 가족의 생계부담을 덜기 위해 35년간 미싱 공장에서 일하느라 왼쪽 손가락이 크게 휘고 말았다. 김씨는 “옷을 만들다 보니 삐뚤어졌어. 손가락으로 밀다 보니까 바늘에 하도 찍혀서 지금도 아파”라고 설명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부터는 현충원에서 풀을 뽑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보상금 지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사망자의 배우자 혹은 미성년 자녀에게만 보훈보상을 지급한다는 원칙 탓이었다.

이후 법이 개정되면서 2016년부터 김씨에게도 보상금이 지급되기 시작했지만 다른 유가족들보다 10배가량 적은 돈을 받았다. 김씨처럼 모친이 1998년 1월1일 이후에 사망한 ‘신규승계유자녀’들은 11만4000원을, 이전에 사망한 ‘제적·승계유자녀’들은 97만~114만1000원을 받았다. 이런 차이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제적·승계유자녀가 올해 130만7000~161만6000원을 받을 때 신규승계유자녀들은 43만9000원의 수당만을 받고 있다.

6·25 전몰군경 유자녀 수당 추이

신규승계유자녀들은 지금의 차이가 부적절하다고 성토한다. 똑같이 6·25 전쟁에서 부모가 사망한 유자녀이지만 모친의 사망시점으로 보훈혜택이 극명하게 달라져서다. 게다가 1998년이라는 시점도 자의적이라고 지적한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1998년 이후 생계가 곤란한 유자녀에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해 그해를 기준으로 구분했다”고 설명한다. 보훈혜택의 기준일이 별다른 고려 없이 제도가 바뀐 날로 지정된 셈이다.

애국·보훈은 예산 핑계 없다더니…헌재도 "제도 바꾸라"

모친이 오래 살면서 보상금을 많이 받아왔으니 그렇지 못했던 유자녀와 차등을 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누적된 보훈규모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2019년 6월 기준 승계유자녀가 직·간접적으로 받은 보훈급여금은 평균 1억6476만원이다. 신규승계유자녀의 평균 보훈급여금 1억6781만원에 근접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해석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2019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5:4로 합헌 판단을 내리면서도 “지급기준이 계속 유지되면 가까운 시일 내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며 “갈수록 차이가 가속화돼 머지않아 헌법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선 입법을 촉구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2017년 국가유공자 초청 오찬간담회 참석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2023년 윤석열 대통령

정부에서도 해당 제도에 다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지만 해결은 요원한 상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6월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애국과 보훈에서) 예산부족이나 법령미비라는 핑계를 대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9년 예산안에 담긴 신규승계유자녀의 보훈수당은 25만7000원에 그쳤다.

2019년에는 국가보훈처가 2026년까지 신규승계유자녀의 보훈수당을 다른 유자녀 대비 56%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마련했는데 실제 이행이 되지 않았다. 김화룡 신규승계유자녀회장이 지난달 열흘간 단식을 하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만나 면담을 한 뒤에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보훈부의 계획대로 실제 예산반영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가보훈부는 “내년도 인상액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돼야 알 수 있다”면서 “적절한 수당이 지급될 수 있도록 재정당국과 지속해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원의 제약과 우선순위 문제가 있다”면서도 “수당 체계가 지나치게 격차가 있어서 선별을 통해 추가적으로 인상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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