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독재자’ 바이든, 인도 총리엔 "위대한 국가, 위대한 친구" 환대(종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국빈 방문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향후 첨단기술, 국방 등 전방위 분야에서 양국 협력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독재자'라고 비판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인권 탄압 지적을 받는 모디 총리에게는 사실상 '처칠급'의 극진한 예우를 보였다. 중국, 러시아와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놓고 인도에 '구애'하고 나선 것이라는 평가가 쏟아진다.
모디 환대한 바이든 "양국,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긴밀"
바이든 대통령과 모디 총리는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식 환영행사에 이어 정상회담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직후 기자회견에서 양국 관계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십 중 하나"라고 평가하며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긴밀하며 역동적"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인도는 통신, 반도체,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첨단드론, 전투기 엔진 등을 공동생산하고 핵심기술 협력에도 나서기로 했다. 인도는 미국 주도의 유인달 착륙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협정에도 가입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와 협력해 2024년 국제 우주정거장에 대한 공동 임무도 진행할 예정이다.
모디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의 논의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며 "우리는 신뢰하는 파트너로서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하며 회복력 있는 글로벌 공급망과 가치망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이 인도에서 전투기 엔진을 생산하기로 한 합의를 언급하면서 "양국 간 긴밀한 방산 협력은 상호 신뢰와 전략적 우선순위의 공유를 상징한다"고도 강조했다. 양국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첨단기술, 국방 분야에서 양자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은 물론, 미국·인도·일본·호주의 대(對)중국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의 활동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된다.
2014년 총리에 취임한 모디 총리는 그간 미국을 다섯차례 찾았지만, 국빈으로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대적인 환영에서도 이전과 온도차가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모디 총리를 환영하며 "21세기의 방향을 정의할 수 있는 두 개의 위대한 국가, 두 명의 위대한 친구, 두 개의 위대한 힘"이라고 양국 관계를 정의했다. 또한 전날 비공개 만찬에 이어 이날 밤에는 국빈만찬까지 개최하며 이틀 연속 저녁시간을 모디 총리에게 할애하고 있다.
여기에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날 모디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 연설도 진행됐다. 상·하원 합동 연설을 두 번 이상 한 해외 정상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등에 불과하다. 한때 미국의 기피인물이나 다름없던 모디 총리에게 '사실상 처칠급 예우로 레드카펫을 깔았다'는 외신들의 분석이 쏟아지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처칠급' 환대, 美 구애 배경엔 중국, 러시아 견제
사실상 구애로까지 평가되는 바이든 행정부의 환대는 중국에 대한 견제 차원으로 해석된다. 우선 경제적으로 모디 총리의 이번 국빈 방미는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경제어젠더 중 하나인 '프렌드 쇼링(friend-shoring)'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중 하나인 인도를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주 한 서밋에서 "우리의 목표는 우리의 중요한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다양한 국가와 무역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인도는 우리의 신뢰할 수 있는 무역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또한 인도는 안보측면에서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상 핵심 국가다. 미국 주도의 대중국 포위망의 한 요소인 쿼드 참여국이기도 하다. 인도 역시 급성장하는 중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미국의 구애에 조금씩 화답하는 모습이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앞서 전화 브리핑에서 최근 몇 년간 미국·인도의 관계가 가까워지게 된 이유로 "인도·태평양의 도전(중국의 위협)에서 직면하고 있는 전략적 환경이 인도를 움직였다"고 답하기도 했다. 최근 중국은 쿼드 참여국인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인도의 앙숙인 파키스탄과 군사협력에 나서기도 했다.
이밖에 미국으로선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늘려온 인도를 회유할 필요도 있다.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차례 미국의 제재 요청 참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러시아와 군사 및 경제관계를 유지 중이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한 유엔 결의안도 지지하지 않았다. 이날 모디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러시아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UN의 주권 원칙을 존중할 것을 촉구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직전 기자회견에서는 대화와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모디의 미국 방문은 바이든 대통령이 경제파트너를 확보할 기회"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무역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모디 총리의 방미는 중국에는 큰 시그널"이라고 전했다. 폴리티코는 "인도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가 됐고, 급성장하는 경제는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다"며 "미국은 지구 반대편에서 인도에 계속 구애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의 가장 큰 역할은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시진핑에겐 독재자라더니...인도 인권문제는 외면 비판도
다만 일각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모디 총리를 처칠급으로 환대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쏟아진다.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바이든 행정부가 모디 총리의 집권 후 인도 내에서 명백히 확인된 소수 무슬림에 대한 박해 증가, 인권 탄압, 언론 자유 제한 등을 눈감아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무부 관리 출신인 다니엘 마키 미국평화연구소 선임고문은 WP에 "미국이 인도와 더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모디 총리를 개인적으로 추켜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은 외국 정상들과의 만남에서 늘 인권과 민주주의를 거론해왔다"면서 "민주주의가 외교 정책을 만드는 방식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이든 행정부와는 훨씬 더 큰 불협화음"이라고 꼬집었다. 집권 민주당 소속 상하원의원 70여명은 앞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러한 지적을 담은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일부 의원은 이날 모디 총리의 의회 연설을 보이콧했다.
반면 모디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지적을 의식한 듯 "민주주의는 우리 DNA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도와 미국의 사회와 제도는 민주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양국 모두 다양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둘 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 모두의 복지를 위해'라는 기본 원칙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현지 언론들은 모디 총리가 기자회견에 나선 것은 취임 후 9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며 이날 기자들의 질문도 통상적인 절차보다 더 축소돼 미국 기자, 인도 기자 한명씩만 가능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시진핑 주석을 독재자라고 언급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공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이 독재자라는 언급이 미 정부가 이룬 미중 관계 진전을 약화하거나 복잡하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No)"라고 칠축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실제로 어떠한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나는 가까운 시일 내에 시 주석과 만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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