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가 부른 전·현직 경찰 악연, 5년째 소송전[서초동 법썰]

김대현 2023. 6.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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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14일 낮 충북 충주시의 한 도로.

인근 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관 A씨와 교통사고 피해차량 운전자의 남편 B씨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재판부는 "'순사'는 B씨를 불쾌하게 할 무례한 표현이다. 하지만 A씨도 30년가량 경찰에 재직 중이었고, 교통사고 처리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한 말이었다"며 "'엎어까기' 표현도 행위 주체가 경찰공무원이지 B씨를 지칭해 비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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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경위 추가조사 요청한 전직 경찰
현직 경찰 "순사 35년했다는 분이 그것도 모르냐"
전직 경찰 '배치기' 이후 5년째 민·형사 소송전

"순사 생활을 35년 하셨다는 분이 그런 것도 몰라요?" "혹시 엎어까기라도 할까 봐 그러세요?"(경사 A씨)

2018년 7월14일 낮 충북 충주시의 한 도로. 인근 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관 A씨와 교통사고 피해차량 운전자의 남편 B씨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A씨는 가해차량인 트럭이 '앞바퀴 펑크' 때문에 B씨 측 승용차를 들이받은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려 했다. 반면 B씨는 "트럭이 급히 차로를 바꾸다 사고가 났고, 펑크는 충격 이후 경계석에 부딪혀 생겼을 수 있다"며 도로의 타이어 흔적을 측정해달라고 요청했다. B씨는 "사고 경위를 단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자신도 과거 35년간 경찰로 일한 점을 강조했다.

A씨는 "조사는 우리가 한다"며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B씨에게 일제강점기 말단 경찰인 '순사', 가해자와 피해자를 부당하게 뒤바꾼다는 속어인 '엎어까기' 등 표현을 쓰기도 했다. 격분한 B씨가 항의하며 배를 들이밀자, A씨는 "왜, 자꾸 옛날 생각이 나세요? 이상하게 배우셨구나. 알기는 아는데 어설프게 약간 알지"라고 조롱하듯이 말하기도 했다.

B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형사 재판에 넘겨졌지만, 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법원은 "배를 들이민 행동은 (순사 등) 모욕적 언행에 대한 항의였을 뿐, 공무집행을 방해한 정도까진 아니었다"고 판시했다.

B씨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청원글을 올리거나 언론제보를 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다만 A씨에 대해 경찰에 2차례 낸 민원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B씨는 무죄를 확정받은 뒤 A씨를 무고와 모욕, 명예훼손, 직무유기 등 10개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A씨에게 혐의가 없다"며 기소하지 않았다.

결국 B씨는 2021년 "A씨의 불법행위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B씨 측은 법정에서 "1차 민원으로 감사 조사를 받게 된 A씨가 앙심을 품고 초등학교에서 일하던 B씨에게 연락해 '모가지를 자를 거야' '조심해 죽일 거야'라고 협박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2단독 박용근 판사는 지난 15일 B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A씨가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통화 과정에서 B씨에게 한 발언들이 인정된다"며 A씨의 협박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무고와 직무유기 등 B씨가 주장한 A씨의 다른 불법행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순사'는 B씨를 불쾌하게 할 무례한 표현이다. 하지만 A씨도 30년가량 경찰에 재직 중이었고, 교통사고 처리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한 말이었다"며 "'엎어까기' 표현도 행위 주체가 경찰공무원이지 B씨를 지칭해 비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통사고 당시 가해차량 운전자는 본인의 과실을 모두 인정하고 보험처리로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타이어 흔적의 측정이 필요했던 사안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말다툼 과정에서 B씨의 배치기 때문에 허리가 좋지 않던 A씨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며 "(무죄가 선고된 B씨의 형사 사건과 관련해) A씨가 주장한 내용이 다소 과장된 것일 수는 있어도, 이를 일컬어 무고죄의 처벌 대상인 허위사실을 신고한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A씨가 B씨를 상대로 맞소송을 내 1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부분은 전부 기각됐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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