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킬러문항' 겨눈 尹정부…사교육 유발 '진짜 킬러'는 논술
“킬러 문항이 수능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논·구술 고사가 진짜입니다.”
경북의 한 고교 수학 교사는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기로 한 것과 관련, 대입 논·구술 고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수능은 정답을 맞히라고 내는 문제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논술은 몇 개 안 되는 문제로 ‘맞힌 사람만 뽑겠다’는 취지로 문제를 낸다”며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내용을 출제하는 게 공공연한 관행처럼 이어지다 보니 학원 가는 게 필수코스가 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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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재에서 출제…논술 사교육 불가피
대학은 매년 수시모집에서 논·구술 전형을 통해 신입생의 4.2% 정도(2024년 대입 기준 1만1187명·종로학원 분석)를 선발한다. 시험은 국어·영어·수학·과학 등에서 나온 지문을 보고 정답을 약술 혹은 서술하는 방식이다. 수도권 주요 대학과 지역거점국립대가 논·구술 전형을 시행하고, 학생부종합전형 등에 비해 내신 비중이 작아 경쟁률도 높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44개 대학의 논술 전형 경쟁률은 39.6대 1이었고, 소수를 뽑는 의예과 등 일부 인기 학과 논술 전형은 세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수의 논·구술 문제가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된다는 지적에 교육부는 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16년부터 선행학습 영향 평가를 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고교 교육과정 수준과 범위를 벗어났다고 적발된 대학은 19개교다. 지난해엔 건국대, 경찰대, 경희대,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의 수학·영어·과학 8문항이 적발됐다. 구체적인 문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2012년부터 논·구술 문항의 교육과정 준수 여부를 검증해 온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는 “2023학년도 입시에서도 서울 지역 15개 대학 중 14개 대학 수학 논술 문제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가 출제됐다”고 주장했다. 연세대는 올해 수학 논술 고사에서 대학 교재로 쓰는 ‘적분과 측도 이론(An introduction to measure theory·테렌스 타오)’ 등의 원문 일부를 번역해 출제했고, 서울대에선 세 번 합성한 함수를 다룬 문제가 출제됐다. 지난해 경희대 문제에선 고교 교육과정에 없는 기호(함수 아래 첨자)가 출제돼 논란이 됐다.
유명 논술 학원은 여름 방학 전 수강신청 마감
서울의 한 논술학원 관계자는 “최상위권 대학의 수리 논술을 치르려면 학원 수업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심화 문제를 접하기 어려운 지방 학생이라면 더 일찍 학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의 유명 논술 학원은 서울대반·연고대반 등 대학별 학급을 편성해 한 달에 수십만원의 학원비를 받고 있다. 일부 학원 홈페이지에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석사, 물리학과 박사 출신 강사들을 홍보하고 있다. 입시 업계 관계자는 “올해 재수생이 많아지면서 보통 고3 여름방학부터 러시가 시작되는 유명 논술 학원이 수강 신청이 다 마감됐다는 소식이 들린다”고 했다.
엄연히 대입 제도에 포함된 전형이지만, 공교육 안에서 논술 입시를 대비하기는 어렵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전체로 보면 논술 정원이 1만명이 넘지만, 학교별로는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논술을 준비하기 때문에 별도로 학습을 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논술 입시를 매개로 교육계와 사교육업계 사이에 사실상 카르텔에 해당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대학이 2년 연속 교육과정 준수 규정을 어기면 모집정지나 재정 지원 사업 평가 감점 등의 조치를 할 수는 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현행 벌칙 규정이 너무 약하다. 재정지원 사업 자격을 박탈하는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은 지나친 자율권 침해라고 본다. 논술 전형을 운영하는 한 대학 관계자는 “학생을 선발하려면 어려운 문제도 출제할 수 밖에 없다”며 “대학에 자율권을 준다고 하면서 논술 문제까지 규제하는 건 지나치다”고 말했다.
이주호 “교육과정 밖 킬러 문항 공개하겠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논술 시험에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2일에서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을 확실히 했다.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수능부터 킬러 문항은 일절 없을 것”이라며 “어떻게 아이들에게 교육과정에서 전혀 다루지 않은 내용을, 교수도 못 푸는 정도로 배배 꼬아서 낸 문항들이 있는지, 킬러 문항을 접해본 분들은 공분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이제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반드시 제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킬러 문항 판단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지적에 이 장관은 “최근 3년간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추려내고 있다”며 “오는 26일 예시를 공개해 ‘이런 것이 킬러 문항이구나’ 바로 감이 오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장관은 “어려운 문제를 내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교육과정 밖에 있는 것을 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건 결국 학부모, 학생을 불안하게 만들어 사교육으로 내몬다는 거다. 사교육 이권 카르텔의 대상은 우리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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