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개인회생 신청 역대급…어쩌다 여기까지 몰렸나

정진호 2023. 6. 2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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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1번출구 앞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엔 20대 청년이 30분에 1명꼴로 들어왔다. 흰색 티셔츠에 가방을 뒤로 멘 한 20대 남성은 상담실에 들어가 1시간 동안 나오지 않았다.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20대는 모두 이 센터의 ‘청년재무길잡이’ 과정을 이수해야 해서다. 서울에서만 하루에 20명이 넘는 20대 청년이 개인회생을 신청한다는 뜻이다.

배달 라이더로 일하고 있는 A씨(29)도 이곳을 찾았다. 그는 2021년 아이가 태어나면서 지출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아내가 육아를 전담하다 보니 맞벌이는 불가능해졌다. 건강이 나빠져 오토바이를 탈 수 없는 날도 종종 생겼다. 그는 가계지출이 월 250만원에 달하자 카드론으로 소액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신용카드는 5개까지 늘었고, 사채까지 쓰다가 빚이 5000만원까지 불어난 이후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20대만 꾸준히 늘어난 개인회생


20~30대 청년의 부채가 가파르게 늘면서 채무 변제를 위한 개인회생 건수도 사상 최대치에 이르렀다. 22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이 법원행정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20대 개인회생 접수 건수는 6993건이다. 지난해 20대는 1만3868건의 개인회생을 신청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는 6월이 되기도 전에 지난해의 절반 수준을 넘어섰다. 30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1~5월 30대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1만3846건으로 지난해(2만6626건)의 52% 수준이다.
박경민 기자
양정숙 의원실이 서민금융진흥원 등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올해 3월까지 근로자햇살론‧햇살론유스 등 7개 주요 서민금융 대출 신청자 291만5555명 중 30세 미만 신청자가 102만9234명(35.3%)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 해당 대출은 주로 소득이 적고,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을 대상으로 지원한다. 30대(26.9%), 40대(20.4%)가 뒤를 이었다. 빌린 돈을 갚지 못 하는 비율도 20대에서 가장 높았다. 근로자햇살론의 연령별 대위변제율을 보면 30세 미만에서 11%에 달했다. 은행 보증비율만큼 정부가 대신 갚아주는 게 대위변제다.

부채 많은 청년…고금리에 터져


청년층이 '최후의 보루'인 개인회생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거리두기 장기화로 청년층의 경제활동 범위엔 제약이 생기며 돈벌이가 막혔다. 그새 자산 가격은 폭등했다. 모은 자산이 없는 청년의 경제적 특성상 전‧월세 등 주거비 지출이 늘었다. 일부는 자산가격 폭등에 편승해 무리한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높아진 금리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 전세사기와 역전세 여파로 개인회생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젊은층이 다른 연령층과 비교해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이 상황에서 금리가 올라가자 이자비용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청년이 많이 나온 것”이라며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불법 사채와 같은 고금리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기지 않게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19~39세의 평균 부채액은 8455만원으로, 2012년(3405만원)보다 5050만원 늘었다. 수입의 30% 이상을 원리금을 갚는 데 쓰는 청년 비율은 2012년 15.74%에서 2021년 25.78%로 증가했다.


코인 투자보단 “생활비 때문” 대출


박경민 기자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가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31세 이하 청년 17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채무 발생 최초 원인이 ‘생활비 마련’이었던 사람이 719명(42%)으로 가장 많았다. 과지출(162명‧9%), 사기피해(153명‧9%), 투자(127명‧7%) 등이 다음이었다. 고용이 불안정한 이들이 많다 보니 조사대상 중엔 근속연수가 6개월 미만인 사람이 630명(37%)으로 가장 많았다.

오병주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상담관은 “개인회생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며 “센터에 오는 대부분이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이다. 소득 자체가 일정하지 않다 보니 소득이 줄거나 중단되면 대출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정 형편이나 환경이 좋지 않아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다는 것도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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