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면 온실가스, 끄면 폭염 공포…"마약 같다" 에어컨 딜레마

강찬수 2023. 6.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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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1월 인도 뉴델리의 한 상업 빌딩에서 작업자가 에어컨을 수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후변화로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폭염 건강 피해가 늘고 있다.
피해를 줄이려면 에어컨 등 냉방으로 고온 노출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전력 수요 증가가 문제다.
전력 소비가 늘면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량도 증가하고, 온난화도 가속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에어컨을 꺼야 하나, 아니면 치솟는 기온을 에어컨으로 맞서야 하나.
세계적인 딜레마, 고민거리다. 그런데도 에어컨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3년 극심한 폭염 당시 에어컨이 없어 노인들이 쓰러졌던 유럽에서도 최근 에어컨 사용이 늘고 있다.
인도 등 중저 소득 국가에서도 소득이 증가하면서 에어컨 보급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2030년 이전에 전 세계에서 10억 대의 에어컨이 추가되고, 2040년 이전에 거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21일 2050년 지구 기온이 지금보다 2도 이상 오른다고 했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전망한 논문이 발표됐다.


인도 사람 40%가 에어컨 틀면…


2022년 5월 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사람들이 폭염을 피하기 위해 다리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 포스카리 대학과 미국 보스턴 대학 연구팀은 '사이언티픽 리포츠'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높은 기온 상승을 예측하는 기후변화 시나리오(SSP585)를 적용할 경우 2050년에는 유럽과 인도의 에어컨 보급률이 40%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보다 더 늘어난다면 2050년 에어컨 보급이 유럽은 지금의 2배, 인도는 지금의 4배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연구팀은 유럽연합(EU) 각 회원국과 인도의 각 주(州) 단위로 열 노출 수준(냉방 온도일)과 1인당 소득 증가를 전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에어컨 보급률을 예측했다.
냉방 온도 일(cooling degree days)은 일평균기온이 24도를 초과하는 날의 숫자(CDD24)를 말한다.

연구팀에 따르면, 1인당 소득과 CDD24와는 정확하게 비례하지는 않는 비선형적 관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CDD24가 250일 이상이면서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를 초과하면 에어컨 보급률이 50~70% 수준으로 급증한다.
CDD24가 15일 미만인 서늘한 기후 지역에서는 1인당 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에어컨 보급률이 15~25%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유럽은 지금처럼 기온이 상승하면 현재 19%인 에어컨 보급률이 2050년 41%로 늘어나고, 인도는 기후변화와 소득증가가 겹쳐 10%에서 40%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고온 노출 줄지만, 온실가스 늘어


유럽 대륙에 섭씨 40도를 웃도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진 지난해 7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에펠탑 샤요궁 앞 분수대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스1.
에어컨 보급이 늘면, 유럽과 인도에서는 열 노출 일수(person degree-days, PDD)가 많이 줄어들게 된다.

PDD는 집에 에어컨이 없는 사람 가운데 24도 이상의 일 평균기온에 노출 사람의 수(연간 누적)를 말한다.

연구팀은 유럽에서는 열 노출 인구가 4억 3000만에서 2억 6500만 PDD로 1억6500만 PPD가, 인도에서는 111억에서 73억 PDD로 38억 PDD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에어컨 보급 확대로 전력 수요는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유럽에서는 연간 340억kWh, 인도에서는 1680억kWh가 늘어난다. 이는 현재 두 지역 전력소비의 2%와 15%에 각각 해당한다.

에어컨으로 인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지금의 에너지 믹스(전력 생산 구조) 기준으로 인도 1억2000만톤, 유럽 13000만톤이 될 전망이다.

기후변화로 치솟는 기온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냉방이 필요하지만, 그로 인해 다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셈이다.


사치품 아닌 생명 구하는 도구


중국의 에어컨 조립 공장.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도 2050년경에 유럽인 6000만 명과 인도인 약 6억4000만 명은 여전히 집에 에어컨이 없는 상태에서 극한의 고온에 노출될 것으로 연구팀은 예상했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면서 가난한 지역에 사는 인구 28억 명 가운데 현재 집에 에어컨을 가진 사람은 8%만 집에 에어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지역일수록 기온이 더 오를 미래에는 에어컨이 사치품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필수품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부에서는 "에어컨이 마약과 같다"라거나, "냉방에 대한 신체적 중독은 현대 미국에서 가장 만연해 있지만,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전염병"이라고 하거나, "도시 열섬효과를 부추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일인분의 안락함』, 에릭 딘 윌슨 지음, 서사원).

연구팀은 "(에어컨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전력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발전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를 줄이는 것, 에어컨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 효율적인 냉방을 위한 행동 변화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배출집약도를 줄인다는 것은 분산형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거나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발전을 확대해 전력생산량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행동 변화의 사례로 에어컨 사용을 최소화하거나, 에어컨을 틀 때 선풍기도 함께 활용하는 것 등이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같이 사용하면 실내 전체를 효율적으로 냉방해 전기를 최대 76%까지 절약할 수 있다.

건물의 단열을 강화하고, 도시에 나무를 많이 심으면 극한의 온도 적응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크게 줄일 수도 있다.

서울 중구 한 건물 외벽에 에어컨 실외기가 줄지어 설치돼 있다. 뉴시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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