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농구계 퇴출' 허재, 사과가 우선이다

이준목 2023. 6. 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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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허재에 법적 책임 묻기 애매한 상황... KBL 징계도 실효성 의문

[이준목 기자]

'한국농구계의 거물'로 불리우던 허재가 프로농구계에서 사실상 퇴출 처분을 받았다. KBL(한국농구연맹)은 최근 프로농구 리그에서 제명된 데이원 구단의 대표였던 허재에게 '구성원 등록 불허'라는 징계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허재는 앞으로 프로농구계에서 지도자를 비롯하여 구단 대표나 프런트, 협회 임원 등 어떤 형태로든 프로농구과 관련된 역할을 전혀 맡을 수 없게 된다.  

KBL은 지난 6월 16일 이사회를 잇달아 열고 그동안 재정난으로 가입비 미납-임금 체불 등 온갖 문제를 일으켰던 데이원을 제명하는 조치를 내렸다. 1997년 출범한 프로농구에서 구단이 제명된 건 사상 최초다.

김희옥 KBL 총재는 "거짓과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해 리그의 신뢰와 안정성을 크게 훼손했다"며 제명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아울러 일련의 사태에 대해 데이원의 공식적인 대표로 활동해 온 허재(고양 데이원 스포츠총괄대표)와 박노하(고양 데이원 재무총괄대표) 두 사람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허재 데이원 스포츠총괄 대표
ⓒ 연합뉴스
 
'농구대통령' 허재의 몰락

한때 '농구대통령'으로까지 불리던 허재의 몰락은 한국농구사의 큰 비극이자 업보라고 할 수 있다. 선수로서의 허재는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기술과 스타성을 겸비한 '전설'이었다. 농구대잔치 7회 우승-MVP 3회 수상, KBL 2회 우승-프로농구 사상 유일무이한 준우승팀 출신 챔프전 MVP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또한 지도자로서도 KBL에서 2회 우승을 일궈내며 사상 최초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한 농구인에 이름을 올리며 '스타 출신 감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남겼다.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무려 세 번이나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또한 50대를 넘긴 나이에 방송계로 진출하여 여러 인기 예능에 출연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의 두 아들인 허웅(KCC)과 허훈(KT, 상무)도 대를 이어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활동중이다. 

하지만 동시에 허재는 전성기에도 수많은 사건사고로 사회적 구설수에 올랐다. 다수의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중이던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대회기간에도 음주를 하다가 적발되어 국가대표 퇴출과 선수 자격정지를 받은 전력도 있다.

2018년 국가대표팀 감독직 사임 이후 농구계에서 한동안 멀어졌던 허재는 이후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이미지 회복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2022년에는 신생구단 고양 데이원에서 '스포츠 총괄 대표'라는 직함을 달고 농구계로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다.

부실구단이었던 데이원이 충분한 검증과정 없이 농구계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KBL이 데이원의 회원 가입을 손쉽게 허가해준 것도 모두 허재라는 인물의 '상징성'  때문이다. 허재는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데이원이 KBL로부터 회원사로 승인받은데 앞장섰고, 자신의 인맥과 가까운 인사들을 데이원 농구단 곳곳에 포진시키는 데도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디어와 농구계의 일부 비판적인 시선과 우려에도 "지켜봐달라, 좋은 구단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직장 잃은 직원과 선수들
 

하지만 결과적으로 데이원은 허재와 농구계 모두에게 최악의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데이원의 제명으로 리그 파행이 불가피해졌으며, 데이원 직원과 선수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됐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이 과정에서 허재라는 인물이 보여준 무책임이었다. 허재는 대표라는 직함이 무색하게 데이원 사태가 끝내 파국을 맞이할 때까지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심지어 데이원 선수단이 국회까지 가서 도움을 호소할때나, KBL 센터에서 데이원의 제명조치가 내려지던 중요한 순간에도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허재가 데이원의 제명조치 이후 모 언론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도 피해자"라고 한 발언은 팬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구단의 대표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구성원들을 대표하고 보호하며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허재는 임금체불 등 데이원 사태가 한창 악화되던 상황에서도 버젓이 방송 활동을 이어가면서 여전히 자신을 데이원의 대표로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데이원의 등기 대표이사는 경영총괄 대표인 박노하 1인이었고 허재의 이름은 없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이렇게 되면 허재에게 데이원 사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는 애매해진다.

KBL이 이제서야 뒤늦게야 '구성원 등록 불허'라는 철퇴를 내린 것 같지만, 겉보기와 달리 정작 징계로서의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영구제명이나 5년-10년 등 구체적인 기한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더욱 의미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허재는 이번 사태와 관련, 데이원 구성원들과 농구계, 농구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상습 음주운전' 사건 때도, 2018년 국가대표 감독 시절 '아들 특혜 논란' 때도, 그리고 이번 데이원 사태에 이르기까지, 허재는 상황이 불리해지면 침묵하고 자취를 감췄다. 단 한번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데이원이라는 구단은 사라졌지만 억울한 피해를 입은 선수단-직원들의 미래와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KBL과 농구계가 떠안아야 할 빚으로 남겨졌다.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자숙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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