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 반토막 났다…준다는 모래 마다한 송정해수욕장 사연 [르포]
지난 19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 해운대해수욕장과 함께 지난 1일 임시개장한 송정해수욕장에는 평일인데도 피서객이 적지 않았다.
백사장 한쪽에서는 구덩이를 파내 주변에 야산처럼 쌓여 있던 모래를 중장비가 평탄화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원래 이 구덩이 등에는 지난달 2일부터 오는 30일까지 낙동강 어선 통항로 준설 사업 때 나온 모래 6만9574㎥를 채워 넣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송정지역 일부 주민이 “낙동강 모래가 색깔이 어두워 미관에 나쁘고 입자가 지나치게 가늘고 고와 바람에 날려 피서객 피해가 우려된다”고 반발했다. 이 바람에 유실된 백사장에 모래를 채워 넣는 이른바 양빈(養濱) 작업이 무산됐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송정해수욕장은 부산 9개 해수욕장 중 백사장 모래 유실 규모가 커 다음 달 1일 전면 개장 전에 강서구에서 모래를 받아 채울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0년 단위로 추진하는 해양수산부 연안정비 기본계획에 반영되면 30만㎥ 정도의 모래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아직 반영되지 않아 올해는 추가 모래 투입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67)씨는 “30년 전과 비교하면 백사장 폭을 기준으로 절반이 사라졌다”며 “태풍이 오면 바닷물이 도로까지 넘어오는데 그때마다 포크레인이 퍼간 듯 모래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피서철을 앞두고 전국 상당수 해수욕장이 백사장 유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제 해수부가 실시한 ‘2022년 연안침식 실태조사’ 등에 따르면 송정해수욕장은 2018년 10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4년 동안 백사장 폭이 작게는 1.4m에서 심한 곳은 14.4m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폭이 70~80m였지만 현재는 24~56m가 됐다.
실태는 현지 주민과 조사자 인지도, 해안 쪽 모래질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양호·보통·우려·심각 등으로 분류하는데 송정해수욕장은 최악인 ‘심각’ 판정을 받았다. ‘심각’은 지속적인 침식으로 재해 발생 위험이 높다는 의미다. ‘우려’는 해안 주변 인명과 재산 피해는 없지만, 침식이 진행되는 곳이다. 이 두 가지를 합쳐 ‘우심 지역’이라 부르는데 대책이 필요한 곳이다.
피서객이 많이 찾는 해운대해수욕장도 지난해 ‘우려' 등급을 받았다. 해운대해수욕장은 2012년부터 5년간 315억원을 들여 연안 정비 사업을 했다. 그 결과 백사장 평균 면적이 2013년 6만387㎡에서 2015년 13만5745㎡로 2배 이상 늘었다가 지난해 다시 9만3114㎡로 줄었다. 부산은 지난해 해수욕장 9곳 중 8곳이 ‘우려’ 또는 ‘심각’ 등급을 받았다.
부산 해수욕장뿐만이 아니다. 경북 포항시 송도해수욕장은 백사장 유실로 2007년 폐장했다가 16년 만인 올해 재개장을 준비했으나 시설 미비로 내년으로 연기했다. 송도에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국비 304억원을 들여 모래 15만㎥를 넣고, 수중 방파제 3기를 설치했다. 그 결과 10m에 불과했던 백사장 폭이 최대 50m까지 늘어났다. 올해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은 3억원을 들여 모래 2370㎥, 전북 부안군 변산해수욕장은 4억원을 들여 모래 7000㎥를 보충한다.
제주도는 백사장 면적이 줄어든 곳도 있지만 늘어난 곳도 있다. 제주시에 따르면 제주시 삼양해수욕장 백사장(1만3821㎡) 길이는 240m, 폭은 64m이다. 2018년(면적 2만44㎡) 길이 286m, 폭 79.6m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반면 이호해수욕장 백사장은 길이는 2018년 636m에서 2022년 610m로 26m(4.1%) 줄었지만, 폭은 51.5m에서 71.4m로 19.9m(38.6%) 늘었고, 면적도 3만1364㎡에서 3만4713㎡로 3349m(10.7%)가 늘었다.
월정·함덕·협재해수욕장도 면적이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시는 백사장 모래 양은 해양 기상과 방파제 등 인공구조물에 따라 시기별로 달라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인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022년 연안침식 실태 조사를 보면 전국적으로 해수욕장 등 360개 조사대상 지역 중 양호와 보통 등급은 199곳(55.3%), 우려·심각 등급은 161곳(44.7%)였다. 지역별로 보면 동해안(강원도·경북·울산)은 147곳 중 78곳, 남해안(부산·경남·제주·전남 일부)은 102곳 중 45곳, 서해안(경기·인천·충남·전북·전남 일부)은 111곳 중 38곳이 우려·심각 지역이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이상 기후로 인한 태풍, 연안지역 개발 등이 연안 침식을 가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일주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교수는 “연안, 특히 해수욕장 백사장 모래양은 단기적으로 태풍 같은 큰 기상 현상 때문에 변화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인근 기후변화와 방파제 건설 등 해양환경 변화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 있어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부산·제주=위성욱·최충일 기자 we.su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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