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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원 2023. 6. 2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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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판박이 교육정책

[서부원 기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교육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3.6.19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부르대던 교육 개혁이 결국 'Anything but Moon(ABM,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으로 귀착될 듯하다. 문재인 정권 때 추진하고 결정된 정책들을 뒤집는 것이 교육 개혁인 양 언론을 통해 발표되고 있다. 며칠 전 고3 수험생들을 혼돈에 빠뜨린 대통령의 돌출 발언 직후여서 언뜻 급조된 느낌마저 있다.

지난 19일 교육부는 수능에서 '킬러 문항' 출제를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를 확보하기 위해 출제 시스템을 점검하기로 했다. 아울러 지난 정부가 2025학년도 일괄 폐지 후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했던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존치하는 것으로 당정 협의를 마쳤다. 기존의 결정을 뒤집기로 한 것이다.

또,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예방하고 국가가 기초 학력을 책임지고 보장하도록 '학력 진단'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른바 '일제 고사'를 부활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학력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기초 학력 미달 학생들에게 맞춤형 학습 지원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자기 주도적 학습을 돕기 위해 EBS를 활용하고, 돌봄 지원 및 방과 후 수업에 대한 바우처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등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제외하면 모두 'ABM'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업 환경 개선과 교권 보호 대책 등은 해마다 나오는 교육부의 '립 서비스'니 따로 얹을 말이 없다.

진통 끝에 폐기된 정책 재탕

고등학교에서 26년 동안 근무한 교사로서 단언하건대, 이번 교육부의 대책은 완벽한 이명박 정부로의 퇴행이다. '구관이 명관'일 수는 있으나,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교육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나 성찰 없이 과거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재탕'하는 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하나같이 만만찮은 부작용 때문에 오랜 진통 끝에 폐기됐던 것들이다.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 등을 존치하는 건 서열화한 현행 고등학교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그들이 명문대 입시에 특화된 학교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전국 단위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어느 자사고는 입학 때부터 대놓고 의·치대 진학을 목표로 교육한다는 걸 자랑처럼 내세운다. 수도권의 한 국제고의 경우에는 명문대 진학자 수가 광역자치단체 내 모든 고등학교의 진학자 수의 합보다 많은 실정이다. 일반고에 견줘 명문대 진학률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도연 울산대총장, 이 대통령, 이주호 교과부장관, 유영숙 과학기술연구원 본부장. 2010.11.19
ⓒ 연합뉴스
'구관'인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이 현 정부에 다시 발탁됐을 때부터 예견된 바다. 이주호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다. 사교육비 절감을 목표로 내걸고 자사고, 자공고, 마이스터고, 일반고, 특성화고 등으로 고등학교를 세분화했다.

취지와는 달리 고교 다양화는 서열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목표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게도 구럭도 다 잃은 채 어정쩡하게 수습됐지만, 우리 공교육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일부 자사고는 일반고 전환 정책에 법적 소송으로 맞서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 신청을 하는 난맥상이 한동안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대학을 넘어 고등학교까지 한 줄 세우기식 '서열화'가 고정상수처럼 여겨지게 됐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뇌리엔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이 마치 인간의 본성인 양 각인되었고, 학교가 '우승열패의 전쟁터'로 전락했다. 공생과 연대 등의 가치는 교육과정 속에서나 등장하는 형해화한 용어가 됐다.

아이들과 학부모의 고교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건, 지역에선 학군을 가르고 학교에선 우열반을 나누는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고등학교 교육이 대입에 철저히 종속된 현실에서 '학교 내 교육과정의 다양화'는 서열화를 위한 그럴듯한 명분일 뿐이다. 고교 선택의 기준이 의치대와 명문대 진학률인 마당에 교육과정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학력 진단'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은 더욱 큰 파장을 몰고 올 듯하다. 기존의 표집 평가 방식이 '일제 고사'라는 이름의 전수 조사로 전환된 건,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 때다. 당시 이주호 장관은 청와대 초대 교육과학문화 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현 정부의 교육 개혁 내용이 15년 전 이명박 정부와 데칼코마니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당정은 지난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이른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2023.6.20
ⓒ 연합뉴스
 
2010년부터는 학교별로 평가 결과를 공시하도록 했고, 이듬해인 2011년부터는 전년 대비 향상도까지 포함했다. 학교별로 공시된 성적은 '명문'과 '똥통'을 가르는 기준이 됐고, 학교 성적을 높이기 위한 온갖 편법이 난무했다. 일제 고사를 대비하기 위한 수업이 별도로 꾸려졌고, 심지어 최하위권 아이들의 시험 응시를 막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내 아이들 사이에 우열이 매겨졌고, 학교 간 성적 경쟁이 불붙었다. 경쟁의 과열은 관련 사교육의 창궐로 이어졌다. 이즈음 대학별로 '일제 고사'와 수능 성적을 기준으로 전국 고등학교의 순위를 매겨 해마다 대입 전형에 반영하고 있다는 소문이 횡행하기도 했다. '일제 고사'는 반드시 서열화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깨달았다.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의 학습 결손을 위한 자료를 확보한다는 취지를 내걸었지만,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몰라서 학교가 지도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학교마다 표준화된 판별 자료가 있을뿐더러 중간, 기말고사만으로도 학생 개개인의 학업 성취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되레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이라는 '낙인'이 학습 지도를 방해하는 형국이다.

애꿎은 '낙인 효과'만 양산하는 판별보다 기초 학력 미달 학생에 대한 실효적인 학습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는 그들의 학습 결손 보충이 단위 학교에 오롯이 맡겨져 있다. 정규수업 외에 별도의 시간을 할애해 보충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공부 못한다고 조롱받는 아이들도, 가외 업무로 여기는 교사도 모두 내키지 않는 일이 되어 버렸다.

국민 모독하는 짓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온갖 부작용만 양산하며 2017년 공식 폐지된 일제 고사를 다시 관 속에서 끄집어내려는 의도를 당최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과 교육부는 수능의 킬러 문항을 사교육비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현직 교사 대다수는 서열화한 학벌 구조를 첫손에 꼽는다. 끊임없는 불안과 경쟁심을 부추겨 사교육에 의존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쓰다가 용도 폐기된 정책들을 마치 새것인 양 가져와 재활용하는 건 국민을 모독하는 짓이다. 'ABM'이라도 좋으니, 부디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으로 기록될 '신상품'을 보여달라. 지금의 모습이라면, 백년지대계 교육을 15년 전으로 퇴행시켰다는 역사적 평가를 면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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