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함' 설치한 연대 학생들, 이유는 이렇습니다

양지우 2023. 6. 2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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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사랑과 위로를 전하고 싶었어요"... 설치 한 달여 만에 일어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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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우 기자]

"세상에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도 있어요.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거죠. <연애편지>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2023년 5월, 연세대학교에 특별한 우체통이 설치되었다. '연애편지함'이라는 우체통에는 이름처럼 연애편지만 들어 있지 않았다.

연세대학교 고등교육혁신원 토닥토닥 팀이 23-1학기부터 <연애편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토닥토닥 팀은 연세대학교 공동체 삶의 질 저하 문제를 해결하고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고자 한다.
 
 연애편지함
ⓒ 양지우
 
이를 위해 실행된 <연애편지> 프로젝트는 교내와 온라인 편지함을 통해 수집한 익명의 고민 편지들에 봉사자 '토닥이'들이 답장을 써주는 활동이다. 학우들에게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를 담은 손편지로 대가 없는 사랑을 전하는 것. 연애편지의 '연애'는 연애(戀愛)가 아닌 연(Yon)애(愛)였다.

학우들의 건강한 삶을 고민하다 생각한 '편지'

지난 6월 1일 오후에 만난 연애편지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토닥토닥의 팀장, 행정학과 19학번 김범서씨는 프로젝트 이름과 관련한 일화를 밝혔다.

"오픈 카톡 형식으로 운영되는 연애편지 문의방에 '가격대가 얼마인가요?'라는 질문이 올라왔어요. 저희는 돈을 받고 무언가를 파는 단체가 아니거든요. 그분께 이 문의방에 들어온 경위를 여쭈었더니 '연애편지'라는 이름만 보고 연애 대필 편지를 써주는 곳으로 착각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일 이후로는 QR 코드 링크를 통해서만 문의방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설정을 바꿨어요."
 
 연애편지 프로젝트 홍보 현수막
ⓒ 양지우
 
- 연애편지 프로젝트는 비영리단체 '온기우편함'을 벤치마킹했다고요?
"네. 제가 온기우편함 봉사자거든요. 처음에는 온기우편함 대표님께 연세대에도 우편함을 설치하면 좋겠다고 건의를 드렸어요. 하지만 연세대에는 설치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듣고 직접 연애편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 연세대학교에 연애편지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요?
"'에브리타임'이라는 커뮤니티에서 학우분들이 우울감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는 걸 봤어요. 의견을 나누는 행위가 싸움으로 변하는 경우도 목격했고요. 학교 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우울과 갈등을 건강하게 해소할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손 편지 답장 프로젝트를 떠올렸어요. 사람들을 위로하고 포용할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특별한 추억이 있나요?
"모르는 사람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답장을 써서 보내준 적이 있어요. 학교 후배 한 명이 군대에 가게 됐는데, 그 친구에게 제가 쓴 편지를 훈련소 동기분들도 같이 보게 된 거예요. 보낸 편지는 하나였는데 다섯 통의 답장을 받았어요. 그중 교사가 꿈이었던 분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편지는 처음 봤다며, 자신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위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내용을 써주셨어요.

그분께서 제가 쓴 편지를 읽고 감동하신 것처럼 저도 그분께서 주신 답장을 받고 굉장히 감동했거든요.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편지 하나로도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편지의 힘을 믿게 됐고 편지 쓰는 것도 좋아졌어요. 어떻게 보면 이때가 연애편지 프로젝트의 시초였는지도 몰라요."

진성성을 갖고 보내주는 답장

토닥토닥 팀의 운영진은 김범서 팀장을 포함해 7명이다. 7명이 각 반의 리더를 맡고 있다. 한 반에 3~4명의 조원으로 구성되어 총 25명의 토닥이들이 프로젝트를 함께한다.

김범서 팀장이 토닥이를 뽑을 때 가장 중시한 것은 '진정성'이었다. 글솜씨는 투박할지라도 학우들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처럼 함께 생각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자질을 중요시한 것이다.

우체통에 들어있는 고민 편지는 매주 월요일에 수거한다. 토닥이들이 2주 안에 답장을 마무리하면, 금요일에 답장 편지들을 모아 발송한다. 편지를 보낸 고민자들은 2~4주 안에 답장을 받아볼 수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는 1통밖에 들어있지 않던 편지가 차츰 늘더니, 약 한 달이 지난 지금에는 10통의 편지가 모였다. 김범서 팀장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로 첫 번째 편지를 꼽았다.

"우체통을 설치하고 편지가 들어있는지 매일 확인했어요. 며칠 동안은 텅 비어있기만 하던 우체통에 편지 한 통이 들어있는 걸 봤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고요. 한 통이지만 편지의 존재가 저 자신에게도 위로가 됐어요. 편지로 사람들과 연결되고 감정을 교류하는 경험은 언제 겪어도 충만함을 가져다주어요."
 
 김범서 팀장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로 첫 번째 편지를 꼽았다.
ⓒ 양지우
 
연애편지 프로젝트 첫 번째 편지는 당뇨병을 앓고 계신 아버지와 감정적 갈등이 생긴 것을 고민하는 편지였다. 이 편지에 다섯 명의 토닥이들이 답장을 보냈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으며 서운함만이 고민자와 아버지 사이에 있는 감정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위로를 전한 답장, 공감과 위로에서 그치지 않고 관계 개선을 위해 진솔한 대화와 안마기 구매를 제안한 답장, 사춘기 시절 이후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을'의 입장에서 부모님을 대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공유한 답장 등.

이처럼 연애편지 프로젝트는 형식적인 위로만을 전하지 않는다. 봉사자들은 진심으로 고민에 공감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때로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이야기를 위로와 함께 동봉한다. 고민자는 다양한 관점과 생각이 적힌 답장을 여러 개 받아볼 수 있다. 편지로 이어진 고민자와 봉사자는 생면부지의 남이 아니다. 편지를 주고받은 순간부터 각자의 비밀과 위로를 공유하는 은밀한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 연애편지 프로젝트가 연세대학교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길 바라나요?
"사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답장을 받는 분들이 잠깐이라도 좋으니 위로받고 삶을 계속 이어갈 힘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애편지함이 연세대 안에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찾아와서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연애편지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나요?
"편지처럼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간직되었으면 좋겠어요. 힘들 때마다 계속 떠올릴 수 있고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억이요. 말은 입 밖에 뱉으면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만, 편지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잖아요. 저희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건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는 고민이 있다는 뜻일 텐데, 고민으로 힘들어했던 시간을 연애편지 프로젝트를 통해 힘들게만 기억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앞으로 우편함을 이용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언제든지 편하게 찾아오시면 변함없이 따뜻한 편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중앙도서관 앞에 설치되었던 연애편지함은 현재 학생회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서관 정문에 구조물들이 많아 눈에 띄지 않은 탓이다. 편지는 항시 모집 중이다. 연세대 학생이라면,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보낼 수 있다. 연애편지함과 토닥이들이 언제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기쁜 마음으로 답장을 보낼 준비를 하면서.
 
 연애편지 프로젝트 홍보 포스터
ⓒ 김범서
 

*연애편지 프로젝트의 더 많은 답장은 인스타 @yonsei_lovelette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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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현재 연애편지 프로젝트의 토닥이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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