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처럼 가볍고 무책임한 '벌거숭이 대통령'

오태규 입력 2023. 6. 21. 04:48 수정 2023. 6. 2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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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윤 대통령 수능 발언 파장... 습관성 무책임 발언, 책임 떠넘기기로 국정 혼란

[오태규 기자]

수학능력시험과 관련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일파만파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 중에서 주택 문제와 교육 문제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양대 현안입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다른 건 몰라도 주택과 교육 문제만 잘 풀 수 있다면 그가 누구라도 대통령으로 뽑아주겠다"라는 말이 나오곤 하는 것도, 두 문제가 그만큼 풀기 어렵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지난해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집값 폭등을 잡지 못한 주택 정책의 실패였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주택과 교육 문제가 풀기 어려운 이유는, 두 문제 모두 인간의 욕망과 직결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택이 현재의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라면, 교육은 미래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데 비해 이를 채워줄 수단은 유한하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물욕과 학벌주의가 더해지면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주택과 교육 난제가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육 현장 혼란
  
 지난 2022년 12월 8일 오전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가운데)과 박정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위원장(왼쪽), 문영주 수능본부장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 브리핑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 문제 중에서도 핵심은 대학 입시입니다. 어디에 있는 어느 대학을 나오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이 달라지는 현실에서, 대학 입시는 사회의 가장 뜨겁고 예민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열주의와 학벌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겠지만, 그러하지 못한 현실에서는 예측 가능성으로 문제를 완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이 입시 정책을 바꿀 때는 고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에 따라 3년 전에 예고해야 한다는 '대입 3년 예고제'가 실시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이런 걸 싹 무시하고 수능의 큰 변화를 초래할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것도 수능을 불과 150일 남긴 시점에서 말입니다.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들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폭탄을 맞은 것처럼, 일대 혼란에 빠졌습니다. 대통령이 한 말은 '학교 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을 말한 것이라거나 '물 수능, 불 수능'을 말한 것이 아니라 '공정 수능'을 말한 것이라고, 대통령실이 해명하고 나섰으나, 이미 대통령이 쏟아낸 말 폭탄은 교육 현장을 초토화하고 있습니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남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이 중하다는 뜻입니다. 양성평등을 강조하는 요즘에 이런 말을 그대로 옮기면 시대착오라는 비난을 듣기 십상일 겁니다. 하지만 의역하면, 말 한마디가 매우 중요하므로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일반 사람의 말조차 이렇듯 조심하고 조심해서 해야 마땅한데, 하물며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말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너무도 자명합니다.

일반 회사에서도 사장은 말을 신중하게 하는 게 보통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듯 흘린 말도 부하 직원들이 지시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일반 회사 사장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나라의 주요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수능 발언 이후 여권이 당정 협의를 열어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거나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전격 사임하는 등 난리를 피우는 것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초래한 비극입니다.

반면 한 여당 의원이 윤 대통령을 '입시 비리 수사를 많이 한 입시 전문가'라고 변호한 것은 웃지 못할 희극입니다. 저는, 그 의원이 정말 윤 대통령이 입시 전문가라고 생각해서 그럴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곤경에 처한 대통령의 권위도 지켜주면서 아부로 점수도 따겠다는 계산된 발언이라고 봅니다.

태연하게 무책임 발언 되풀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라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수능 발언의 파장에서 볼 수 있듯이, 대통령의 발언은 극도의 절제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의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 수능 발언 한 번뿐이 아니라 습관성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말에도, 이와 관련된 교육부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향을 신속히 강구하라"라고 지시해 학부모와 교육계의 맹반발을 산 바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교육까지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정책을 아무런 대안도 없이 내놓은 것은, 이번 수능 발언의 예고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지난 3월엔 노동자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주 69시간 노동제'를 추진한다고 하다가 20·30세대가 반발하자 슬그머니 거둬들였습니다. 지난해 9월의 '바이든-날리면' 사태는 습관성 실언의 절정이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실수도 할 수 있고 실언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와 실언 뒤 대응입니다. 소통과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정보통신 시대에는 실언과 실수 뒤 그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오히려 미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마치 자신이 무오류의 신인 것처럼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5살 입학 파동 때는 애먼 교육부 장관이 사퇴했고, 이번에는 담당 국장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제물이 됐습니다. 대통령 주변에 직언하는 충신들은 찾아볼 수 없고, 아부하고 변명하는 간신들만 수두룩합니다.

깃털처럼 가벼운 말과 행동,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돌보지 않는 뻐꾸기처럼 무책임한 자세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가장 피해야 할 행동 원칙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아주 태연하게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마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을 실화로 보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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