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변별력 약화 땐 내신 등 다른 사교육 ‘풍선효과’ 우려
5개월 남기고 ‘기조 흔들’ 불안감에 되레 사교육 매달릴 수도
정부와 여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킬러 문항’을 사교육의 근본 원인으로 보고 앞으로 출제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수능 출제 경향에 변화를 줘 사교육비를 억제하겠다는 계획인데 본질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 ‘킬러 문항’은 시험 변별도를 높이는 쉬운 방법이나,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라며 “앞으로 공정 수능이 되도록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에서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비문학 국어 문제’와 ‘과목 융합형 문제’를 콕 집어 지적한 만큼 올해 수능에서는 타 교과 내용이 포함된 지문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국어 비문학 문항에 과학·철학·금융 등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어려운 지문이 나와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그러나 교육부와 통계청이 2007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수능 체제 변화가 뚜렷한 사교육비 경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부는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11학년도 수능부터 EBS 직접 연계율을 70%로 올렸다. 그러자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2년까지 1% 내외의 감소율을 보이다가 2014년 증가세로 돌아섰다.
‘사교육비 억제’ ‘경쟁 해소’를 목적으로 2018학년도 이후 영어 영역을 절대평가로 전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2018년과 2019년 사교육비 증가율이 각각 7.0%, 10.3%로 더 높아졌다.
고등학생 1인당 월평균 영어 과목 사교육비는 2015년(7만2000원)부터 지난해(12만4000원)까지 2017년(전년 대비 0%)을 제외하고 매년 증가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킬러 문항 없는 수능이 변별력을 갖추지 못하면 내신 등 다른 대입 요건이 더 중요해져 또 다른 사교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도 “높은 정시 비율과 최저학력 기준, 상대평가 등이 여전한 구조에서 학생들은 문제가 쉽든 어렵든 사교육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능을 150일 앞둔 시점에 수능 기조가 바뀌면서 수험생들의 사교육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수험생들이 수시모집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입시 판도가 흔들리면서 수험생들의 불안감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킬러 문항 축소로 사교육비 감소 효과가 있겠지만, 대통령이 일으킨 불안으로 사교육비 증가 효과도 있을 것”이라며 “충분히 여유를 두고 메시지를 보냈다면 사교육비 감소 효과가 온전했겠지만, 이번에는 타이밍도 문제”라고 했다.
사교육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학교 서열’과 ‘입시 경쟁’에 대한 논의는 간과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구 소장은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킬러 문항은 없애겠다면서 자사고·국제고·외고를 존치하겠다는 당정 협의 내용은 불협화음”이라며 “사교육으로 내모는 종합적 요인이 누락됐다”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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