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순간까지 아프지 않으려면, 노쇠 관리 시작해야…” [헬스조선 명의]

오상훈 기자 2023. 6.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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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 명의 톡톡' 명의 인터뷰
'노쇠 명의'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광일 교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안락사를 원하는 비율이 높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긴 투병 기간과 그로 인한 가족들의 간병 부담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안락사 허용은 얽혀있는 쟁점이 워낙 많아서 설사 도입되더라도 먼 미래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선 임종 순간까지 아프지 않는 게 최선이다. 노쇠를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노쇠는 신체의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우리 몸의 능력이 현저하게 줄어든 상태를 의미한다. 사망률은 물론 유병 기간 등과도 관계가 깊다. 노쇠의 원인 진단 치료에 대해서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광일 교수에게 물었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광일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임종 직전까지 팔팔하게 사는 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 장수인들을 보면 대부분 삶의 마지막까지 불편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잘 수행하다가 사망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거나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유병 기간이 굉장히 짧다. 학술적으로는 ‘컴프레션 오브 모비디티(compression of morbidity)’라고 하는데 질병으로 이환되기까지의 기간이 길면 길수록 유병 기간은 짧아진다는 학설이 있다. 노쇠를 연구하는 의사들은 고령에서의 기능 저하와 고통을 노쇠 때문이라고 본다. 이는 곧 노쇠를 잘 예방하고 관리하면 삶의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쇠와 노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노화는 나이가 듦에 따라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생리적인 변화 과정이다. 반면 노쇠는 노화나 질병 등으로 인한 손상이 누적되면서 나타나는 결과다. 장기의 기능 저하와 같은 손상은 사람마다 생길 수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노화와 달리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건 아니다.

-노쇠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노쇠가 노인 환자의 나쁜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노쇠한 환자들은 입원을 하거나 침습적인 시술 및 수술을 받을 때 예후가 굉장히 나쁜 걸로 보고된다. 또 똑같은 약물을 복용했다 하더라도 노쇠한 환자는 약의 부작용, 합병증의 발생 위험이 높다. 노쇠 자체가 고위험군의 요인이 되는 것이다. 노쇠를 잘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중재해야 하는 까닭이다.

노쇠는 장기의 기능 저하처럼 노화나 질병 등으로 인한 손상이 누적되면서 나타나는 결과다./사진=신지호 기자

-노쇠의 증상은 무엇인가? 환자가 방문하면 어떻게 진단하나?

체중감소, 극도의 피로감, 근육 허약, 보행속도 감소, 신체활동 감소 5가지 항목에서 세 가지 이상 문제가 있다고 평가되면 노쇠라고 볼 수 있다. 노쇠 증상으로 외래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체중이 많이 빠진다든가, 활력이 이전만 못하며 굉장히 피곤하다고 호소한다. 먼저 노쇠를 측정할 수 있는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또 노쇠 정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표인 악력이나 보행 속도, 체중 또는 골격근의 양을 측정한 뒤 진단한다.

-노쇠의 원인은 무엇인가?

노쇠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일차성 노쇠와 다른 원인이 있는 이차성 노쇠로 나눈다. 이차성 노쇠는 여러 가지 질환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심부전, 만성콩팥병, 우울증, 갑상선 기능 저하, 또 일부 약물의 부작용 등이 노쇠 증상으로 나타난다. 원인 질환을 치료하게 되면 노쇠라고 생각했던 증상들이 좋아지기 때문에 이차성 노쇠를 적극적으로 진단하려고 한다.

-애초에 질환을 의심하면 되는 것 아닌가?

노인들은 어떤 질병이 있다 하더라도 그 질병과 관련된 증상이 잘 안 나타난다. 심부전이라고 하면 호흡 곤란이나 흉부 압박감과 같은 순환기계 증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런 증상이 비교적 잘 나타나는 젊은 사람은 곧바로 심장내과나 순환기내과를 찾아갈 수 있다. 그런데 노인 환자들은 질병과 관련된 증상이 아니라 노쇠 증상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앉았다 일어날 때 조금 핑 도는 어지럼증을 느낀다든가 이전보다 체중이 조금 줄었다는 게 전부다. 경험 많은 의사라면 다른 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나이 때문에 나타나는 비특이적인 증상이라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 진단을 놓치는 것이다. 노쇠한 환자는 원인 질환을 찾는 게 중요하고 또 쉽지 않은 과정이라 생각한다.

-주변인이나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은데?

늦게 온 환자들에게 왜 지금 왔냐 물으면 나이 들어서 나타나는 당연한 증상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환자들에게 노화와 질병의 차이를 설명할 때 노화는 점진적으로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나타나지만, 노쇠는 아니라고 말한다. 한두 달 전까지는 밖에 외출하고 일상적인 생활을 수행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가 갑작스럽게 외출하기가 힘들어지는 등 상황이 변했다면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이는 노화에 의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인은 물론 주변인과 보호자들이 잘 살펴봐야 한다.

-약물의 부작용이 왜 노쇠의 원인인가?

노인은 병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 만큼 복용하는 약의 종류도 많다. 다섯 가지 이상의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경우 ‘다약제 복용’, 10가지 이상은 ‘중증 다약제 복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보통 5개 이상의 약을 복용하고 10개 이상도 드물진 않다.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증상 조절을 위해 복용하기 시작했던 약을 문제가 해결됐음에도 계속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약을 많이 복용하다 보면 약물 상호작용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 위험이 굉장히 높아진다. 또 특정 약의 부작용 위험이 어떤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에게 높아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를 들면 관절 통증으로 많이 복용하는 진통소염제는 고혈압이 있거나 심장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의 혈압을 올리고 심장의 허혈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두 질환이 노인들에서는 굉장히 흔하다 보니까 약이 병을 악화시키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노쇠환 환자는 복용하고 있는 약을 전부 파악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치료 과정이다.

-일차성 노쇠는 별다른 해법이 없나?

일차성 노쇠는 노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일 거라 추정되고 있다. 현재 명확한 치료 방침이 있는 건 아니다. 노쇠한 환자를 더 나쁘게 만들 요인들을 찾아서 예방하고 중재하는 것을 치료의 목표 삼고 있다.

노화가 어떻게 노쇠를 일으키는 지에 대해서는 현재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염증이 항진돼 있다든지 호르몬계나 혈액 응고 시스템에 이상이 있으면 노쇠 위험이 높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긴 했지만 아직까진 연구 단계다. 반드시 노쇠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는 검증되지 않았다. 10년, 20년 후에는 노화에 의한 노쇠도 원인을 찾을 거라고 생각한다.

-유전적인 요인은 없나?

노쇠는 사실 삶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니까 다른 질환보다는 유전적인 영향이 적다고 볼 수 있다. 질환 관련된 유전자나 질환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방어 능력에 관한 유전자가 고려될 순 있지만 아직까지 노쇠와 관련된 유전자가 특정되진 않았다. 환경적인 요인과 그 외 질환 관리가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일차성 노쇠는 어떻게 예방하나?

다소 교과서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굉장히 중요하다. 적절한 영양 섭취, 운동, 사회적인 관계, 만성질환 관리, 수면 시간 등 생활 습관을 어떻게 가지느냐가 결국 노쇠를 예방하는 데 있어 핵심이다. 실제 관련 연구 결과들은 매우 많다.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는 건 어렵다.

-음식은 어떻게 먹어야 하나?

노인들은 양은 부족하지만 영양소는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게 좋다. 젊을 때와 차이가 있다면 단백질 섭취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면 몸 안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의 양은 줄고 빠져나가는 양은 는다. 근육이 감소하는 걸 막기 위해 단백질 섭취를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은 노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단백질을 섭취하라고 하면 아침, 점심은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고 저녁때만 단백질을 섭취한다. 적은 양이라 하더라도 식물성, 동물성 따지지 말고 매 끼니마다 먹어야 한다.

김광일 교수는 “노인들은 특히 매 끼니마다 단백질을 섭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사진=신지호 기자

-건강기능식품은 어떤가?

노인들이 복용하는 약을 조사하다 보면 건기식에 대해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뭔가 먹어서 건강해지려는 노력은 해야겠지만 그게 약은 아니었으면 하는 심리가 반영된 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똑같은 식사를 하더라도 체내 흡수가 덜 되거나 음식의 양 자체가 줄어 필수 영양소가 부족할 순 있다. 이 경우 종합비타민 하나 정도는 권장할 만하다. 그 이외에 여러 가지 뭐에 좋다는 것들은 아직까지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과도하게 복용하는 건 피하는 게 좋다.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나?

보통 유산소 운동의 중요성만 강조되곤 한다. 그런데 건강한 노년 생활과 노쇠 예방을 위해선 근력 운동과 균형 운동도 병행해야 한다. 유산소 운동과는 별개로 일주일에 2~3번은 근력 운동과 균형 운동을 번갈아가면서 하는 게 좋다.

-사회적인 관계는?

코로나가 노인들의 사회적인 관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연구를 해보면 실제로 팬데믹 기간에 노쇠 정도가 굉장히 심해졌다. 다른 사람과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SNS나 전화 등을 이용해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잔병치레가 많으면 오래 산다는 말은 사실인가?

잔병을 많이 치름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회복하는 회복탄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수인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특별한 질환 없이 진짜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여러 질환이 굉장히 늦게 나타나는 부류다. 가장 흥미로운 게 세 번째 유형인데 만성 질환이라든가 암, 심장 질환 등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이겨내면서 결국에는 100세까지 사는 사람들이다.

회복 탄력성은 곧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얼마나 잘 견딜 수 있는지와도 관련돼 있다. 많은 연구가 수행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요인이 밝혀지진 않았다. 만약 밝혀진다면 노인에게 이겨내기 쉬운 질환이나 특히 조심해야 하는 질환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 미리 대비하도록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광일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김광일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이며 노인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고혈압학회, 노인병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원래는 순환기내과를 전공했지만 2003년 분당서울대병원이 개원하며 노인의료센터가 설립되자, 과감히 ‘노인병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20년간 노인 환자를 진료하면서 노인병학을 개척해나갔다. 수술 후 예후를 예측하는 ‘노인포괄평가’를 국내 최초로 개발, 그 효과를 입증해 의료 현장에 도입했다. 또 노인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노쇠 평가 및 협진 모델을 개발하고 혈관 노화와 노인성질환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등 노인 의학의 미래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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