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중국 전랑외교의 배경

세계 곳곳에서 중국의 ‘전랑(戰狼) 외교’가 목격된다. 중국 외교관들의 거친 말이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전랑 외교의 형성 배경은 무엇일까.
1840년 아편전쟁은 터졌고, 중화제국은 서방 함포에 깨졌다. 심지어 일본에도 패했다. 지식인들은 반성했다. “우리도 봉건의 틀을 벗고 ‘덕선생(德先生, democracy)’ ‘새선생(賽先生, science)’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에서도 이성과 과학,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계몽주의가 싹트는 듯했다.

오래가지 못했다. 계몽 흐름은 “서구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은 치욕을 갚아야 한다”는 정치 운동에 쉽게 매몰됐다. 중국의 유명 철학자 리쩌호우(李澤厚)는 “망해가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구망(救亡) 인식이 계몽 사조를 압도한 것”이라고 당시 지식계 흐름을 해석한다.
쑨원(孫文)·장제스(蔣介石)·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 그들의 정치 철학은 달랐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 ‘구망’이었다. 쑨원의 삼민주의, 마오의 마르크스주의, 덩샤오핑의 시장경제 등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마오의 서재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아닌 중국 역사서 『자치통감』이 꽂혀 있었던 이유다. 1989년 덩샤오핑이 천안문 학생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한 것 역시 구망이 계몽을 압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진핑(習近平) 시대 들어 구망은 ‘중국몽(中國夢)’이라는 정치 언어로 표출된다. ‘이제 그 시기가 도래했다. 중화의 영광을 회복하자!’ 시 주석이 내건 중국몽은 결국 ‘민족 부흥의 꿈’이었다. 아편전쟁 때 서구 함포에 당한 수모를 갚아줄 시기가 됐다는 선언이다. 그간 이룬 경제 성과가 힘이다.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이 그들 내부에 잠재해 있던 구망 인식을 흔들어 깨웠다.
‘부흥의 열망’은 중국을 관통한다. 시 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에는 고대 실크로드를 되살려 한(漢)·당(唐)시기의 강성함을 회복하겠다는 열망이 담겼다. 학생들은 애국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고, 시장에서는 애국 소비가 대세다. 사회 곳곳에 민족주의, 애국주의가 팽배하다. 그 열망이 외교 일선으로 확장돼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전랑 외교다.
중국 외교관들 역시 지난 150여년 지식계에 면면히 이어온 구망 인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부흥의 열망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거칠게 반응한다. 그러기에 전랑 외교는 계몽을 압도한 구망의 변주곡처럼 들린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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