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규의한·미동맹사] 6·25전쟁 발발과 트루먼 美 대통령의 참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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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미 극동사령관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9년 6월 미군이 철수함에 따라 미국은 한국을 방어할 법률적 책무는 없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의 침략 3일째인 6월27일 제2차 NSC를 열고 미 해·공군의 한국군 지원과 제7함대의 대만해협 봉쇄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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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9년 6월 미군이 철수함에 따라 미국은 한국을 방어할 법률적 책무는 없었다. 미 극동사령부 역시 북한 움직임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 6월25일 전쟁이 일어나자 사태가 심각해졌다. 고향 미주리에서 주말을 보내고 있다 전쟁 소식을 들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급히 돌아와 첫 긴급 국가안보회의(NSC)를 열었다.
그 이튿날부터 주일 미 제5공군 소속 B-26 폭격기가 출격해 북한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북한군이 남진을 계속해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자 29일 맥아더 극동사령관은 한강 전선을 직접 시찰한 뒤 북한군이 한국군을 압도한다고 판단해 지상군 투입을 건의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30일 제4차 NSC에서 지상군 파병도 결정했다.
7월1일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24사단 21연대 1대대가 부산에 도착했다. 나흘 후 경기도 오산 북쪽 죽미령에서 북한군 제4사단과 최초로 교전했다.
최완규 육사 외래교수·경제사회연구원 국방센터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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