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외모는 귀공자, 목소리는 노동자인 베컴

김식 2023. 6. 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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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축구사에 데이비드 베컴만큼 인상적인 족적을 남긴 인사는 드물다. 뛰어난 축구 실력에 조각 같은 외모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은 베컴은 세계적인 팝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빅토리아 아담스와 결혼해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베컴은 축구와 패션을 넘나드는 최초의 크로스오버 스타였다. 축구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도 베컴은 알 정도로 그의 대중적 인지도는 특별했다. 사진= 베컴 SNS 


영국의 BBC는 2014년 ‘목소리 여론조사(Voices Poll)’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5000명 넘게 참여한 조사에는 유명인들의 목소리를 평가하는 항목도 있었다.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 상위 10명에 정치인, 연예인, 방송인 등이 포함됐다. 스포츠 스타로는 유일하게 한 명이 이 리스트에 올라갔다. 바로 7위를 차지한 베컴이었다. 

베컴의 조금은 특이한 목소리는 국내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확실히 그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은 가늘고 톤이 높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 영국의 많은 여성들도 "베컴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멋지다(Beckham is gorgeous until he opens his mouth)”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곤 한다. 

베컴의 목소리는 국내에서나 영국에서 인기가 없다. 하지만 하이톤이라는 이유로 선호도가 떨어지는 국내와는 달리 영국인들은 그의 목소리에 담긴 엑센트(accent, 출신 지역이나 계층을 보여 주는 억양)에 더 주목한다. 베컴은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의 엑센트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엑센트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를 ‘엑센티즘(Accentism)’이라고 부른다. 영국인들은 상대방의 엑센트를 듣고 그의 사회 계층을 쉽게 추론하곤 한다. 노동자 계급의 억양을 구사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말하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엑센티즘은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베컴은 런던 동쪽에 위치한 레이턴스톤(Leytonstone)에서 출생했다.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의 동네인 이곳은 집세가 싸다. 런던의 동쪽 지역은 이스트 엔드(East End)라고 불린다. 산업혁명 후 이스트 엔드에는 공업과 항만지대가 조성됐고,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 잉글랜드 여러 지역의 농촌 빈민들이 몰려들었다. 이주민은 해외에서도 유입됐다. 프랑스의 신교도 탄압을 피해 건너온 위그노 난민, 아일랜드의 직조공, 중동〮부 유럽에서 건너온 유대인, 인도와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민이 대표적이다.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커플인 베컴과 빅토리아도 엑센티즘에 따른 차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사진=베컴 SNS


1980년 런던 이스트 엔드의 마지막 부두가 문을 닫으면서, 이 지역의 일부는 새롭게 변모한다. 도클랜드에는 신도시인 카나리 워프(Canary Wharf)가 건설되어 런던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런던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초고층 건물의 대부분이 이곳에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스트랫포드(Stratford)에는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이 조성된다.

이스트 엔드의 일부 지역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지만, 아직도 이 곳은 영국 최고의 빈곤 지역 중 하나로 남아있다. 외부인들은 아직도 이곳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런던 동쪽에 사는 ‘이스트엔더스(EastEnders)’는 자신들의 코크니(Cockney)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코크니라는 용어는 지리적, 언어적 의미를 둘 다 갖고 있다.

베컴은 배관공인 아버지와 미용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가 유대인인 관계로 자신을 ‘반 유대인’이라고 칭하는 베컴은 코크니 억양을 구사한다. 영국에서 오랫동안 노동자 계급의 지표였던 코크니 억양의 대표적인 특징 몇 가지를 알아보자. 

코크니는 두 모음 사이의 T사운드를 ‘성문 폐쇄음(glottal stop)’으로 대체한다. 성문 폐쇄음은 입 앞에서 나오는 T가 아닌 목에서 나는 소리다. 예를 들어, 표준 영어 발음인 워터(water)는 T 발음이 생략되어 웟어(wa'er)로 발음된다. 마찬가지로 버터(butter)는 벗어(bu'er)라고 말한다. 또한 H로 시작하는 단어의 H 발음은 생략된다. 따라서 헤드(head)는 에드로 발음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무성음 ‘Th’는 ‘F’ 발음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이에 ‘Thanks’, ‘Thursday’ 같은 단어는 ‘Fanks’와 ‘Fursday’로 발음한다. 유성음 ‘Th’가 단어 중간에 들어가면 ‘V’발음으로 변한다. 

코크니 영어는 발음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속어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The pretty girl I met is very rich(내가 만난 예쁜 소녀는 매우 부자다)”를 코크니로 표현하면 “The fit(pretty) bird(girl) I met is well(very) minted(rich)”가 된다. 영국 드라마를 보면 “She is fit”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여기서 의미하는 뜻은 그녀는 건강하다가 아니라 예쁘다 혹은 매력적이다는 얘기다. 게다가 코크니 영어는 라임(Rhyme, 압운)을 활용해 단어의 원래 뜻을 변형시키도 한다. 

이스트엔더스가 이러한 암호 같은 표현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경찰이나 외부인들이 자신들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컴을 포함해 해리 케인 등 많은 축구 선수와 유명인들이 코크니 영어를 쓴다. 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얘기는 다음 칼럼에서 알아보자.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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