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규제, EU 먼저 나섰다…"규제해달라" 외치던 챗GPT 속내
유럽이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 챗GPT 돌풍 이후 인공지능(AI) 기술과 서비스를 규제하자는 주장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의 입법기구가 ‘AI법’(AI Act) 초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의 AI 시장을 두드리려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행보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14일(현지시간) 유럽의회는 본회의에서 AI법 초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해 압도적인 찬성(찬성 499표, 반대 28표, 기권 93표)으로 통과시켰다. 이 초안에 따르면, AI 개발 업체들은 AI 모델 훈련에 쓰인 데이터의 출처를 공개해야 하고, AI가 생성한 콘텐트의 창작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시해야 한다. 데이터 출처를 공개할 경우, 데이터 저작권을 가진 이들이 AI 개발 기업에 수익 공유나 데이터 사용료를 요구할 수 있다.
초안은 또 AI 개발사가 상업적 목적으로 AI 상품을 출시하기 전에 EU의 규제 기구 측에 AI 시스템을 제출하도록 했다. EU의 통제 하에 AI로 수익 활동을 하라는 의미다. 이외에, 공공장소에서 안면 등 생체정보 인식을 금지하는 내용도 초안에 포함됐다. 유럽 의회‧집행위원회‧이사회 간 3자 협상이 무난히 타결될 경우, 2026년엔 EU 내에 해당 규제가 적용될 전망이다.
EU가 2년간 준비한 AI 규제 법제화가 가까워짐에 따라, 유럽은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주도하는 AI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미국 기술 기업들은 AI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선제적으로 펼쳐왔다. 챗GPT의 개발사인 오픈AI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국제 기구를 만들어 AI를 규제하자”고 주장해왔고, 오픈AI의 핵심 투자자인 MS 역시 “정부 주도의 AI 가드레일이 필요하다”(브래드 스미스 MS 부회장)는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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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유럽 AI 시장 진출 차질 빚나
이번 법안이 최종 확정될 경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유럽 AI 시장 진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당장 구글의 생성 AI 챗봇인 ‘바드’의 유럽 출시가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연기됐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아일랜드 데이터보호위원회(IDPC)가 구글에 개인정보보호 방안이 미흡하다며 시정을 요구하면서 바드 출시가 늦춰진 상태다.
이번 규제는 미국 기업뿐 아니라 유럽 기업들의 AI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데이터의 출처를 공개하게 되면 원 저작권자들이 데이터에 대한 보상을 해달라는 등의 논란이 커질 것”이라며 “미국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기업들에도 적용되는 만큼 유럽의 AI 산업이 성장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픈AI를 중심으로 한 미국 AI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기업 친화적인 영국 시장을 대안으로 택할 가능성도 있다. 샘 올트먼 CEO는 이달초 영국을 방문해 리시 수낵 영국 총리를 만나 AI 규제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의 IT 매체 테크크런치는 “영국 정부는 AI 규제를 위한 새로운 법안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를 (오픈AI에) 보내고 있다”며 “(오픈AI 측이) AI 규제와 관련하여 영국과 EU 사이에 더 큰 쐐기를 박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난달 보도했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국내 AI 기업들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EU의 개인정보보호법(GDPR) 사례를 보면, 처음엔 난관이 있었지만 결국 그 법에 맞춰 세계 기업들도 서비스를 수정했다”며 “유럽의 AI 규제가 벤치마크가 돼 다른 나라에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지난 2월 인공지능법 제정안이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상태다. AI 기술 발전 대원칙으로 ‘선(先)허용, 후(後)규제’를 명문화했다. 정부는 3년마다 AI 기본 계획을 세우고, 국무총리 산하 AI 위원회를 두는 내용이다.
김남영 기자 kim.namyoung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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