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傳貰)는 유지돼야 한다 [임상균 칼럼]

임상균 매경이코노미 기자(sky221@mk.co.kr) 2023. 6. 1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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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주간국장
일정 금액을 집주인에게 맡긴 후 계약된 기간 동안 주택을 임차해서 거주하며 해당 집에서 퇴거할 때는 맡긴 돈을 돌려받는 제도. 전 세계에 우리나라만 있는 전세(傳貰)다. 그래서 영어 표현도 한글 그대로 ‘Jeonse’다.

흔히 ‘Charter’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계약에 의해 일정 기간 동안 빌려주고 다른 사람의 사용을 금하는 뜻의 전세(專貰)를 말한다. ‘오로지 전(專)’으로 ‘전할 전(傳)’을 사용하는 부동산 전세와는 다르다.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돈을 내고 살다 집을 나갈 때는 그 돈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외국인이 보면 임차인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는 굉장히 특이한 제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출발은 임대인의 필요성에서 시작됐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고려 때 돈이 없는 토지 주인이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풍습인 ‘전당’에서 시작됐다는 얘기다. 여기서는 땅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돈을 빌려주고 대신 땅을 받는 거래였다. 즉, 토지 소유자가 돈이 필요해 빌리는 개인 사금융이었던 것이다. 현금 소유자가 ‘갑’이었다.

그런 전세 제도가 위기를 맞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명이 다한 전세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일각에서는 ‘전세 소멸론’이 여전히 비등하다.

사실 최근 몇 년간 갭투자를 이용한 투기, 그로 인한 집값 급등, 이후 집값 하락과 전세사기 사태로 이어지는 혼란의 근원에 전세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전에도 집값 하락기마다 깡통전세, 역전세 문제는 빈번했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거액의 보증금을 맡기는 사금융 성격상 불가피한 일이다.

이렇듯 전세 제도가 부작용과 허점을 노출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전세 대신 월세를 찾는 세입자도 꽤 늘어나고 있다. 정부까지 전세 제도 개편 필요성을 거론하자 아예 폐지론도 제기된다.

하지만 전세사기와 사고가 전세 제도 때문인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오히려 세입자를 보호하겠다고 만든 임대차법의 부작용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임대 기간을 4년 동안 유지해야 하고 임대료로 5%밖에 올리지 못하게 되자 집주인들이 앞다퉈 전세 물량을 거둬들였다. 이로 인해 전셋값이 급등했고, 아파트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서민층은 수도권 값싼 빌라 전세로 내몰렸다. 여기에 은행은 무분별하게 전세대출을 퍼부었다. 정부는 전세가의 80%까지 해주던 빌라 전세보증을 100%로 상향 조정하면서 빌라를 대상으로 갭투자를 하기에 용이한 여건을 조성했다.

전세 제도는 장점도 적지 않다. 특히 청년층이 내집마련에 나설 수 있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열심히 벌어 알뜰히 모았거나 부모님 도움으로 마련한 종잣돈을 보증금으로 맡겨놓고 전세로 살면서 추가로 저축을 하고 막판에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게 된다. 반면 월세는 매월 일정 금액을 집주인에게 바쳐야 한다. 대출 이자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다. 소득의 상당분을 월세로 바치고 나면 저축은 엄두도 못 낸다. 집을 소유하기 위해 기초를 다지기란 매우 어렵다.

사회 전반에서도 전세 제도는 유동성을 늘려주는 효과가 있다. 집주인은 무이자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해 활용할 수 있다.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에서 월세로 바뀔 경우 가처분소득이 축소된다.

일부 문제가 불거졌다고 주거 안정성과 자산 축적 기회를 제공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제도를 없애는 일까지는 없어야 한다. 미래를 향한 청년들의 꿈과 노력을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3호 (2023.06.14~2023.06.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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