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 삼탕 ‘경제정책방향’… 국민들은 관심 뚝!

이의재 2023. 6. 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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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하반기 성장률 전망 조정에 눈길
재활용·백화점식 나열 관행도 여전
年 2회 발표 탓 중복 피하기 어려워
“경제 어려울수록 국민에 잘 알려야”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가 임박했지만 세간의 이목은 구체적인 정책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 조정 여부에 쏠리는 분위기다. 반년마다 수백개씩 정책을 쏟아내다 보니 정책의 상당수가 기존 정책 재활용에 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디지털경제 시대를 맞아 각 부처의 특색없는 정책들을 모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1970년대식 관행도 개선되야 한다는 지적이다.

14일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7월 초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매년 12월과 6~7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상·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는 세제개편안과 함께 경제 부처의 연내 최대 중요 행사다. 발표되는 굵직한 정책만 수십개에 달하고 전체 정책 수는 200개를 넘나든다. 정부의 공식적인 경제동향 분석과 전망도 이때 공개된다.


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상반기 내내 이어진 경기 침체 여파로 정책보다는 성장률 전망 수정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상저하고’를 외치던 정부가 국내외 다른 기관들처럼 한국 경제성장률을 추가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구체적인 정책 내용에 대해서는 같은 달 공개되는 세제개편안에 비해 확연히 관심도가 떨어지는 분위기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발표되는 정책 상당수가 이미 본 적이 있는 ‘재탕’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유턴기업이 기존 사업장 유휴공간을 활용해 증설해도 세액을 감면해준다는 정책은 지난해 12월 발표된 2023년 경제정책방향, 같은 해 6월 나온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KDB산업은행 현물 출자는 경제정책방향 발표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정책’이다. 유류세 인하 조치·소상공인 국유재산 임대료 감면 등 기존 조치 연장도 신선함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도 정권 초기라 자연스럽게 전 정권과의 차별화가 이뤄져서 이 정도다. 2019년 행정논총에 실린 ‘아이디어와 정책선택에 관한 경험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경제정책방향의 평균 연간 차이도는 22.9%에 그쳤다. 차이도가 낮다는 것은 전년도 발표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정책이 적었다는 의미다. 해당 기간 중 정권 교체 직후인 2008년, 2013년과 글로벌 경제위기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던 2009년만 차이도가 30%를 넘겼다. 반대로 이명박정부 마지막해인 2012년에는 정책 소재 고갈로 차이도가 12.7%까지 추락했다. 사실상 기존 대책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던 셈이다.

상·하반기 6개월의 시간 차를 두고 발표하다 보니 중복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적으로 봐도 한국처럼 1년에 두 차례씩 경제정책을 쏟아내는 국가는 드물다. 일본은 한국의 경제정책방향과 거의 성격이 유사한 ‘골태방침’을 매년 6월 발표한다. 범부처 차원에서 중점 추진 정책을 발표한다는 점은 같지만 횟수는 연 1회다. 내용도 단순 나열보다는 ‘핵심 방향 제시’에 집중한다는 평가다. 미국은 연초마다 행정부가 예산안과 함께 기본적인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다. 역시 구체적인 정책 나열은 없고, 정책 내용은 추후 의회에서 수시로 논의를 거쳐 발표하는 형태다.

기재부는 그러나 현재 정부 업무 구조에서는 연 2회 발표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경제정책을 발표하는 시기는 전년도 12월인데, 막상 세제개편과 예산안 편성이 전부 하반기에 이뤄지다 보니 연중에 추가 발표를 진행해 경제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 상황이 늘 변하는데 연말연초에 전제한 정책 방향을 계속 가져가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는 상반기 세수 부진과 예산 선집행으로 정책 여력이 부족해 뚜렷한 정책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경제방향을 충실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초 예상에 비해 경제 상황이 많이 달라진 만큼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민간에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경제정책방향 제도의 역사는 한국 경제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그 뿌리는 박정희정부가 1962년부터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정부는 제2차 5개년 계획에 착수한 1967년부터 ‘총자원예산’이라는 이름의 연례 프리젠테이션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총자원예산은 이미 수립된 5개년 계획에 투입되는 자원 배분을 연단위로 구체화하는 수준의 역할이었다. 한국 경제가 양적·질적으로 팽창하고 연단위의 정책 수립이 필요해진 1978년부터 총자원예산은 ‘경제운용계획’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기능도 자원 배분보다는 정책 제시에 집중됐다.

연 2회씩 정책을 발표하는 현 제도는 1990년대 중반 정착됐다. 이전부터 경제기획원(기재부의 전신)은 특이 동향이 있을 때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발표했지만 그 빈도는 노태우정부 들어 급격히 높아졌다. ‘세계화’가 화두로 떠오른 문민정부 들어서는 연 2회 발표가 사실상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에 명칭에도 변화가 있었다. 노태우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는 ‘운용’이 주로 활용됐다. 정부가 정책의 전권을 쥔다는 인식의 반영이다. 문민정부는 정부 주도권을 일부 내려놓는다는 의미로 톤을 낮춘 ‘운영’을 꺼내 들었다. 현재의 명칭인 ‘경제정책방향’은 최초에 김대중정부에서, 2010년 이후 이명박정부에서 채택한 명칭이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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