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전랑외교의 승자

전웅빈 2023. 6. 14.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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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위기에서 유럽 국가들이 한 일은 미국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한 것이었다. 식량 가격은 치솟았고, 인플레이션은 10%를 넘어섰다. 유럽이 미국 전략을 수행하다가 치른 값이다."

그러자 우켄 독일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 4월 중·독 경제계 춘계 리셉션에서 "유럽 일부가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고 디리스킹을 추진한다"며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위해 무역 문제를 정치화하고 무기화하는 것은 중·독 관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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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유럽 국가들이 한 일은 미국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한 것이었다. 식량 가격은 치솟았고, 인플레이션은 10%를 넘어섰다. 유럽이 미국 전략을 수행하다가 치른 값이다.”

루사예 프랑스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달 31일 현지 매체 ‘리걸 퍼스펙티브’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선택을 이렇게 폄훼했다. 그는 “내가 염려하는 건 유럽 일부 사람들이 ‘대서양’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친미적이고 유럽 핵심 이익은 모른다는 것”이라며 “유럽 이익을 위한다고 여기지만 실제론 미국을 보호하며 스스로를 해치고 있다”는 말도 했다. 기자는 발언이 불쾌하다고 항의했는데 루사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루사예의 인터뷰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미국 승리와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반드시 후회한다”고 윽박을 한 것과 오버랩된다. 미국 백악관은 이를 압박 전술이라 평했다. 중국 정부 차원의 의도되고 계산된 강압외교가 펼쳐지고 있다는 의미다.

요즘 중국 외교관들은 기회만 되면 공개석상에서 녹음기를 튼 듯 똑같은 논리로 서방의 디리스킹(deriskig·탈위험화) 전략을 비난하고 있다. 디리스킹은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보다는 유연한 개념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중국과의 관계 설정 전략으로 처음 꺼내 들었고, 미국과 협의를 거쳐 이제 서방 주요국이 공유하는 전략이 됐다.

그러자 우켄 독일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 4월 중·독 경제계 춘계 리셉션에서 “유럽 일부가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고 디리스킹을 추진한다”며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위해 무역 문제를 정치화하고 무기화하는 것은 중·독 관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말했다. 또 “유럽이 현명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면 역사가 보여준 무거운 기억을 되새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프랑스 중국대사관은 지난 6일 홈페이지에 “디리스킹은 디커플링에서 퇴색한 것 같지만 본질은 ‘설탕 발린 독(糖衣毒藥)’”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고, 비교적 온건파로 평가받는 셰펑 주미 중국대사도 지난 7일 미·중 무역전국위원회(USCBC) 행사에서 “디리스킹은 약탕기만 바꾸고 약은 바꾸지 않은 것”이라고 반발했다. 정쩌광 영국 주재 중국대사 역시 디리스킹은 중국의 과학 발전과 경제 성장을 차단하고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디커플링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고 같은 주장을 폈다. 중국 외교관들의 일사불란한 여론전은 최고 지도부 차원의 지시가 하달됐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식의 강압외교가 중국에 득이 되는지는 회의적이다. 영국 가디언 국제담당 칼럼니스트 사이먼 티스달은 전랑외교가 유럽과 인도·태평양 국가들을 미국 품에 안기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책임은 중국 몫이다. 어떤 말이 나올지 예상 가능한 싱 대사와의 회동에서 반박 없이 면박당한 일은 다른 문제다. 이 대표는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동안 “정부 당국의 추가 노력이 필요하다”며 싱 대사 발언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외교의 장을 정부 비판의 도구로 활용하려다 중국에 판만 깔아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찾았다는 이번 만남은 양국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넣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거꾸로 이번 사태를 역이용해 반중 감정만 키우는 게 한국에 득이 되는지도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티스달의 분석처럼 전랑외교는 한국을 미국 품만 의지하는 국가로 밀어 넣고 있다. 이번 논란의 진정한 승자가 누군지 지켜볼 일이다.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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