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문턱 낮추려면 취업제한법 개정해야”

김은빈 2023. 6. 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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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차별 여전… 27개 자격·직업 제한
“정신질환자 사회복귀 원천봉쇄하는 법안 개정해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정신질환자 취업제한,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김은빈 기자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직업의 자격과 면허 취득에 제한을 두는 현행법령이 무려 27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인 데다 정신과 방문을 꺼리게 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신질환자, ‘말 조련·운전면허’ 자격도 제한

13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신질환자 취업제한,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개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자격·면허 취득 제한 조항 때문에 충분히 사회인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정신질환자의 사회복귀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가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2018년 4월 기준, 국가가 관리하는 자격면허 취득에 있어서 중증 정신질환을 자격·취득 결격사유로 포함하고 있는 현행법은 27개다. 

이에 따라 정신질환자는 △산후조리원 설치·운영 △수상구조사 △수렵면허 △어린이집 설치·운영 △아이돌보미 △주류제조관리사 관련 자격·면허 취득이 일률적으로 제한된다.

원칙적으론 제한하나, 의사의 진단으로 업무수행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이미용사, 위생사 △영양사 △요양보호사 △말조련사, 장제사, 재활승마지도사 △수산질병관리사 △수의사 △조리사 △동물실험시설 운영·관리, 실험동물 공급 △약사 △응급구조사 △의료인 △장례지도사 △의료보조기기사, 언어재활사, 장애인재활상담사 △장애인 활동지원인력 △가축수정사 △화장품 제조판매업 △의료기사 등 17개 직업·자격 취득 기회가 주어진다. 

원칙적으론 허용하나 예외적인 경우 △건설기계조종사면허 △운전면허 △수상레저조종면허 △철도차량 운전면허 등 6개 자격 취득이 제한된다. 

이를 두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8년 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정신질환에 대한 업무상 무능력과 잠재적 위험성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소명이나 청문 절차 등 구제절차도 명시돼 있지 않아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사회적 편견에 편승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복귀 및 통합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증가시킨다”면서 “유엔(UN) ‘장애인권리협약’ 등 국제인권규범과도 상충되므로 다수 법률에서의 정신장애인 자격제한 제도는 폐지 또는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소명 기회도 없어… 사회복귀 기회 원천 차단

인권위 권고 이후 5년이 지났음에도 법안 개정은 제자리걸음이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당장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애 인식을 바꾸고 정신과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개정이 이뤄져야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신질환자의 직업의 자유를 제한할 경우 사회적으로 막심한 손해라고 설명했다.

이인영 인권위 장애차별조사2과 조사관은 “사회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정신장애인 자격·면허취득제한조항은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면서 “해당 법안으로 치료기피 현상이 발생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화연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 교수는 “정신질환에 대한 취업제한 및 보험에 대한 차별은 실제 해당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신과 전반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높인다. 이는 해당 정신질환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과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 뿐만 아니라 일부 직업군에서 취업 결격조항에 정신질환이 포함돼 있는 것과 같은 법·제도상에 실재하는 차별을 폐지시키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명숙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과장도 “‘약을 먹는다고 일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만 지낼 수 있는데 왜 먹어야 하냐’며 약 복용을 거부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신질환자들의 사회복귀가 막히면 정부 차원에서도 손해”라며 “생산성 있는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일할 수 있는 분들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은 “정신질환이나 장애로 인한 법적 차별인 자격 제한이나 직업 제한 규정은 일괄적으로 삭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자격, 면허, 직업에 있어서 그 수행이 어려운 질병이나 장애에 대해선 본인의 희망과 여건을 고려해 부담이 적은 직장으로 옮겨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합리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없애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만우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선임연구관은 “말 조련사, 장제사, 재활승마지도사 등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불분명한 결격조항은 폐지하는 방식으로 개정돼야 한다. 또한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회복할 경우 자격이나 면허를 이어갈 수 있는 절차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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