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韓경제, 서희의 외교술 필요할 때

2023. 6. 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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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일본 경제가 미국을 넘어서겠다." 1980년대 초 수출 중심의 일본 경제 위상은 하늘로 치솟았고 유례없던 쌍둥이 적자를 경험하게 된 미국의 위기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브레턴 우즈 체제와 마셜정책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큰 형님 역할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고, 자국의 경제 이익 앞에선 동맹 같은 사치스러운 개념은 보이지 않았다.

과거 일본엔 미국민들의 반감이 컸던 것과 달리 지금 한국엔 동정적인 여론이 있음을 바이든에게 질문한 기자의 예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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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일본 경제가 미국을 넘어서겠다." 1980년대 초 수출 중심의 일본 경제 위상은 하늘로 치솟았고 유례없던 쌍둥이 적자를 경험하게 된 미국의 위기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브레턴 우즈 체제와 마셜정책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큰 형님 역할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고, 자국의 경제 이익 앞에선 동맹 같은 사치스러운 개념은 보이지 않았다. 1985년 미국은 일본 등 주요 서방국가 재무장관들을 뉴욕의 플라자호텔로 불러들인 후 각국의 환율 절상을 요구했다. 목표는 물론 일본이었고 엔화의 가치가 가장 크게 절상되었다. 순종적인 일본의 태도에 미국은 1986년 최대 반도체 생산 국가였던 일본을 다시 불러들여 반도체 협정을 맺었다. 반도체 덤핑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정부에 자신들의 재무 정보를 낱낱이 보고해야 하는 말이 안 되는 일이 진행되었다. 이후 일본의 경제 위상은 최근까지 수십년간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했다.

1980년대 중반 일본의 상황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에 엄청난 투자금액으로 생산공장을 지어놓았더니 보조금을 받으려면 중국에는 투자하지 말라, 중국의 원자재를 사용하지 말라는 식의 반도체와 전기차 규제 얘기다. 심지어 보조금 신청 기업이 미국 정부에 기업의 재무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는 요구도 재현되고 있다. 중국이 미국 마이크론의 반도체 구입을 안 한다면 삼성, 하이닉스도 중국에 반도체를 팔지 말라는 귀를 의심케 하는 요구도 있었다. 동맹이라 외치면서 대놓고 한국을 제물로 삼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한미 정상회담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님은 국내 정치에 도움을 얻기 위해 핵심 동맹국인 한국 기업들에 손해를 입히고 있는 건가요?"라며 미국 기자가 한 마디도 못 하고 있는 한국을 대변하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는 모습에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다른 나라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외교정치를 문제 삼으며 중국의 경제제재가 심해지고 있다. 환경 문제를 명분으로 유럽은 RE100을 내세워 재생에너지 비중이 10%에도 못 미치는 한국에 치명적인 무역규제를 행하려 한다. 과거와 반대로 이번엔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이 한국의 후퇴를 기회로 삼고 있다. 남북관계 단절을 틈타 희토류 등의 자원보유국 북한과 대화하려 하고 있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를 틈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한 반도체 산업 회생을 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 화장품 매출 감소세를 일본의 시세이도가 메꾸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긴 세월이 우리의 현실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다. 다만 당시 일본의 상황을 철저히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희망이다. 먼저 일본이 낙관적인 태도로 순종하기만 하다가 더 호되게 당했던 사실을 우리는 주지해야 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미국의 요구에 합리적인 이의를 강하게 제기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 여론이 오히려 우리 편이 되어줄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펼칠 필요가 있다. 과거 일본엔 미국민들의 반감이 컸던 것과 달리 지금 한국엔 동정적인 여론이 있음을 바이든에게 질문한 기자의 예에서 알 수 있다.

1980년대 미국은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절대적인 존재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점도 주지해야 한다. 미·중 패권 경쟁은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재앙도 축복도 될 수 있다.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 거란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간파했기에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면서 강동6주를 확보한 서희의 외교술을 우리는 이미 공부하지 않았던가.

서준식 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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