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시각각] 싱 대사가 놓친 ‘상호 존중과 배려’

서경호 2023. 6. 13.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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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논설위원

“의원님, 대만에 가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중국에도 오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2004년 주한 중국대사관이 전·현직 여야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의 재선 취임식 참석을 만류했다. ‘나중에 중국엔 안 오느냐’는 말은 앞으로 협조를 기대하지 말라는 은근한 협박이었다. 천수이볜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출신의 첫 총통이었다.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중국엔 눈엣가시였다. 이 사실을 인터넷에 공개한 당시 장성민 전 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에 대한 주권침해이자 내정간섭 행위”라고 비판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바로 그때 중국대사관 정무참사관이었다.

「 거친 비외교적 돌출 발언 반복해
한국인 마음 얻는 공공외교 무시
정부 ‘사이다 외교’ 대신 냉철해야

싱 대사는 북한 사리원농대에서 유학했고 주한 대사를 하기 전에 북한대사관에서 두 차례, 한국대사관에서 세 차례 근무했다. 거친 입 때문에 이미 여러 번 입길에 올랐다. 2010년 참사관으로 세 번째 서울 근무 때 당시 주한 중국대사에게 “중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 현인택 통일부 장관에게 한국말로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라고 거친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지난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도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 “(한·중 외교관계 악화의)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는 싱 대사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외교관답지 않은 그의 거친 언사를 민주당은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안 그래도 2016년 중국의 사드(THAAD) 보복과 ‘한한령(限韓令)’으로 최악인 국민 감정에 불을 질렀다. 외교관의 기본 책무가 국익 수호라지만 대사에겐 주재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책임도 있다. 그의 언행을 보면 주재국 국민의 마음을 열어 외교의 지평을 넓히려는 공공외교 노력은 아예 포기한 것 같다. 자국 정부를 향한 그의 과잉 충성만 느껴질 뿐이다.

“일본이 백 년의 적이면 중국은 천 년의 적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소 측근들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이라고 지난해 출간된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이 소개했다. 저자 한청훤은 ‘중국은 천 년의 적’이라는 말이 우리 한국인들에게 점점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올 만큼 ‘반중은 시대정신’이 됐다고 썼다.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자란 우리 젊은 세대는 1인 독재와 대중문화 규제로 상징되는 중국 공산당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외교부는 싱 대사를 초치했고 대통령실도 직접 비판에 나섰다. 중국 외교부는 주중 한국대사를 불러 자국 대사 초치에 항의했다. 싱 대사의 비외교적 언사는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당당하게 할 말은 하되,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대중 관계를 냉철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반중 정서에 기댄 ‘사이다 외교’로 흐르게 되면 잠깐 통쾌할지는 모르지만 불필요한 마찰을 부를 수 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리주의 외교가 원칙이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강화라는 우리 정부의 전략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면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챙겨야 한다. 서로 필요한 협력을 실질적으로 이어가고 물밑 접촉을 계속하면서 접점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정부서울청사에서 싱 대사와 면담했다. 한국은 연내 한·중 경제장관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기 위해 실무협의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고, 중국은 자국의 핵심가치를 존중하고 배려해 달라는 말을 했다. ‘거친 말’은 없었고 웃으면서 서로 필요한 얘기를 좋게 나누고 헤어졌다. 양국은 다양한 채널에서 협력할 게 많다. 이를테면 한국 반도체 중국 공장에 좋은 일은 중국에도 좋은 일이다. 구체적인 협력 경험을 하나씩 쌓아 갔으면 한다. 싱 대사가 추 부총리에게 요청했다는 ‘존중과 배려’는 호혜적인 것이어야 한다. 상대국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내팽개치는 ‘늑대 전사’의 모습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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