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생각할 일 없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 윌리엄 맥어스킬의 『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2023)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쩌면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수가 많을 사람들, 우리가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권리를 가지게 될 사람들, 바로 미래의 사람들 이야기다. 미래에 형태를 갖추고 숨 쉬게 될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늦게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꼼짝없이 우리에게 삶을 일부분 저당잡히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같은 이유로 우리에게 따질 수도, 항의할 수도 없다.
처음에는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그러나 인간의 윤리적 책임이 공간적으로 떨어진 사람에게 있다면, 마찬가지로 시간적으로 떨어진 사람에게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맥어스킬은 ‘장기주의’라고 부른다. 장기주의는 그 이름과는 다르게 지금 당장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기후위기와 전쟁 위기, 인공지능의 발달과 같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찍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문제가 현재 살고 있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너선 샤프란은 『우리가 날씨다』(2020)에서 할머니의 일화를 소개한다. 저자의 할머니는 나치가 폴란드를 향하고 있었을 당시 유대인의 학살을 피해 고향 마을을 떠났다. 샤프란은 상상한다. 할머니의 고향 마을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아직 떠나지 않은 이들에게 소리 지르는 자신을. “뭔가 해야 해요!” 저자가 이런 상상을 하게 된 것은 기후위기 문제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미래의 누군가들이 우리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문을 쾅쾅 두드리는 상상을 하는 모습을. “지금 당장 뭔가 해야 해요! 왜 충분히 움직이지 않았어요?”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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