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써서 과격하다? 막상 해보면 반전이랍니다"
[은평시민신문 류혜림]
▲ 터틀웍스 김지은 작가 (사진 : 정민구 기자) |
ⓒ 은평시민신문 |
우리는 가끔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가' 과정보다 '끝냈는가, 아닌가'의 결과에 맞춘 채 살아가곤 한다. 마치 내 모든 순간들은 그 골인지점을 위해 달려가고, 맞춰가는 것처럼. 하지만 행위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잃어버리기 전에 찾아야 하는 본연의 행위이다.
터틀웍스는 서울 은평구 응암역과 새절역 사이, 작은 공간에 마련된 터프팅 스튜디오다. 2021년에 새롭게 론칭해 작가 개인의 작업실 겸 1:1 클래스 등을 진행하고 있다. 터프팅은 천 위에 털을 심는 기법의 직조 공예를 말한다.
터틀웍스는 만드는 행위 자체의 포커싱을 맞추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운영한다. 제한된 시간에서 벗어나 마치 거북이처럼 천천히 가도 좋으니 나만의 속도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 작품의 역할과 의미는 충분하니 말이다. 귀여운 거북이가 반기는 터프팅 스튜디오, 그리고 그 거북이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에서 주인장 김지은을 만났다.
빠른 결과보다는 느린 과정
- 터프팅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고 들었어요.
"시각 디자이너로 일했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매번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기한과 결과 여부에 대한 압박감이 조여 왔어요. 퀄리티보다 시간,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되는 일의 반복으로 성취감도 현저히 떨어지더라고요. 디자이너 일도 점차 회사의 입장에서는 기술로 대체될 수 있는 상황이 오면서 앞으로의 비전을 생각하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생겼어요.
▲ 터틀웍스 (사진 : 김지은) |
ⓒ 은평시민신문 |
▲ 터틀웍스 작업에 사용하는 터프팅건 (사진 : 정민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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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프팅이라는 분야가 생소한데요. 터프팅은 어떤 것인가요?
"터프팅은 터프팅건을 이용해 천 위에 실을 심는 직조 기법이에요. 총이라는 과격한 도구와 달리 섬세함과 몰입을 요구하는 작업이라는 것이 반전이랍니다. 총으로 하염없이 빨리 쏘는 것 같지만 사실 천천히 생각하고 공을 들여 쏴야 해요. 작업물 또한 방향도, 모양도, 모든 것이 나의 손길에 따라 그 모습이 매우 다르게 나타나요. 조심스럽게 신경 쓰며 만들어야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양대로 담을 수 있는 거죠.
터프팅건을 이용한 과정이 끝나면 트리밍이라는 실을 다듬는 과정을 거쳐 최종 작업물이 되는데요. 트리밍은 더 신경 써서 다듬을수록, 더 열심히 들여다볼수록 높은 완성도와 유의미한 가치를 보여줘요. 한 번 더 신경 쓰는 만큼 퀄리티가 올라가는 거죠. 결국 막 달려 나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과정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거예요. 과정의 온전한 행위가 가장 중요한 작업이고, 그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 총을 사용해 실을 심는다니 색다른 방식이네요. 지은씨에게 터프팅은 어떤 의미인가요?
"비유하자면 에베레스트처럼 높은 산 같고 저는 그 산을 등정하고 싶어 하는 산악인 같다고 할까요? 실제 산악인들이 산을 정복하기 위해 갖가지 중무장을 하듯 저도 작업을 할 때 아대도 차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총을 경건하게 잡고 진행해요.
그럼에도 의도한 경우랑 다르거나, 하다가 작업 자체가 망가지거나 하면 그 순간 무너지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죠. 마치 등산할 때 깃발 꽂고 정복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다음을 위해 2보 후퇴하고 내려오는 것처럼요. 가끔은 힘들다면서 거리를 두다가도 끊임없이 터프팅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요. 여전히 어렵고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서 정복하고 싶어요."
- 터틀웍스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가 이 길로 오게 된 계기에서 비롯돼 지향하는 바를 담은 이름이에요. 거북이가 느리더라도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는 것처럼, 제 속도와 시간에 맞춰서 달려가는 작업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제 작품도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길로 차분하게 걸어가길 바라고요. 이 공간에 방문하는 사람들 또한 온 시간만큼은 절대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가볍게 놀러와 '내가 담아내고 싶은 것들을 담아내자'는 생각으로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북이, 너무 귀엽지 않나요?"
▲ 터틀웍스 작품 (사진 : 김지은) |
ⓒ 은평시민신문 |
- 평소 큰 오브제보다 작은 오브제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어떤 이유인가요?
"터프팅 하면 러그나 거울처럼 크고 굵직한 아이템을 생각하게 되고 덩달아 높은 금액에 다가가기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그것보다는 편하고 저렴한 가격에 접함과 동시에 일상의 주변에 두기 좋으면서 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만한 오브제들을 만들고 싶어요. 작고 소중한 털 뭉치들이랄까요?
최근에는 버려지는 빈병을 세척해서 화병이나 의미 있는 오브제로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점차 확장해서 더욱더 다양한 업사이클링 소재와 터프팅을 접목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또 작업 이후 버려지는 실과 패브릭들을 활용해서 오브제를 만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저도 그 흐름에 동참해서 좋은 예시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 지난 해 전시에 참여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전시였나요?
"지난해 연말에 터프팅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열었어요. 제 주제는 'Well done, 2022!'였어요. 이번 해에도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한 해의 마무리에 다른 누구보다 자신에게 칭찬과 사랑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칭찬의 의미로 걸스카우트가 생각나는 훈장과 배지, 메달로 표현하고 자신을 보고 기특해하길 바라며 반짝임을 표현한 '스파클스미러'를 함께 두었어요. 나를 잃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템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저희 작업실의 모토와 결을 같이합니다."
- 자신에게 칭찬과 사랑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나만의 템포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데요.
"저에겐 새로운 돌파구를 안겨준 전시였어요. 전시를 준비할 때 프레임에 따라 작업물의 크기에 제약을 받다 보니, 현실적으로 큰 작품을 하기 어려워 좌절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했었는데요. 전시에서 다양한 작품과 작가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아 왜 나는 남들이 하는 방법만 생각했지?' 싶더라고요. 내 욕구에 맞게 그걸 해내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그 형태를 만들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어요.
그렇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가제의 프로젝트를 생각 중이에요. 작은 조각들을 모아서 압도될 만큼 큰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작업실이 작고 아담할지라도, 이 공간에서도 태산처럼 큰 작품을 만들어내서 나의 좌절에게 해방감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 해방감 자체가 나를 찾아가는 여정 중의 하나 아닐까요? 환경과 상황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천천히 나아가는 거북이처럼요."
▲ 터틀웍스 작가 김지은 (사진 : 정민구) |
ⓒ 은평시민신문 |
- 은평구 내 유일한 터프팅 가게인데요. 이곳에 차린 계기가 있나요?
"제가 은평구에 살기 시작하면서 터프팅을 만났어요. 그러다보니 터틀웍스를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에는 항상 은평구, 특히 불광천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산책로를 걸어 다니면서 터틀웍스에 대한 고민과 설렘, 작업에 대한 구상 등을 했거든요. 은평구 구석구석의 터틀웍스의 조각들이 있는 거죠. 그렇다보니 어딘가로 나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여기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 번화가보다는 수요가 적을 것 같아요. 은평구에서 작업하면서 어려움은 없나요?
"사실 초기엔 위치도 안 좋고 작업실도 작다 보니 위축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곳에서 잘 해내는 게 먼저고, 잘 해낸다면 외부에선 더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먼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해서 터틀웍스를 채워가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고 해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점점 동네에 카페와 음식점을 비롯한 다양한 소상공인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더라고요. 터틀웍스도 이 공간에 있으면서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동네를 즐길 수 있도록요."
- 터틀웍스가 어떤 공간이 되면 좋다고 생각하나요?
"터틀웍스에서 내가 담고 싶은 것을 하염없이 담아내는 시간을 가져가셨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이 공간이 저에게 삶의 동기가 되고 나아갈 원동력이 되듯 누군가에게도 자신이 하나쯤 품고 온 용기나 그 무언가를 풀어내고 채워가길 바라요. 여유는 필수!
▲ 터틀웍스 마크 (사진 : 정민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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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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