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에 오디, 앵두... 기다리던 여름이다

최윤애 2023. 6. 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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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산딸기와 오디에 이어 귀한 앵두까지 얻게 되다니! 노부부가 손짓하는 곳으로 가자 자그마한 앵두나무 두 그루가 보였다.

한 번 먹을 만큼의 오디와 앵두를 수확해 아지트로 돌아가는 길, 햇살은 뜨거웠지만 살랑살랑 춤추는 배추흰나비처럼 딸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산촌의 지하수로 손과 오디와 앵두를 씻는 아이들의 내면에 달콤한 기억들이 알알이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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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애 기자]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하던 날 아침,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국에선 제철 과일이란 개념 없이 사시사철 모든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영국의 과일 수급 상황에 귀가 솔깃했으나 그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수박을 먹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딸들을 위해 지난 겨울과 봄, 큰맘 먹고 수박을 사 보았다. 기대하던 과일이라 잘 먹긴 했지만 밍숭맹숭한 맛과 당도는 어쩔 수 없었다. '제철에 먹어야 제맛'이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과일이나 채소는 제철에 먹어야 맛과 영양, 가격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또 다른 과일은 산딸기와 오디. 딸들이 여름을 기다린 또 하나의 이유였다. 산길을 따라 형성된 산딸기 군락지는 진즉 눈여겨 봐두었다. 일전에 연두색 열매가 맺혀 있는 걸 보았는데 그새 빨갛게 익은 것들이 많아졌다. 가지의 뾰족한 가시를 피해가며 산딸기를 채취했다. 혹시나 주변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뱀을 조심하면서.
 
▲ 산딸기  주변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뱀을 조심하면서 채취한 산딸기
ⓒ 최윤애
중학생이던 넷째 언니가 친구와 산딸기를 따 먹으러 갔다가 독사에 물린 게 벌써 35년 전 일이다. 투포환 선수였던 언니의 팔이 퉁퉁 부었고 언니는 후유증 때문에 운동까지 그만뒀다. 그때 물린 손가락의 부종이 세월이 이만큼 흘렀는데도 완벽히 빠지지 않았다.

의사는 언니 몸에 든 독을 빼내기 위해 수박을 함께 처방했다. 때는 여름이었고 90% 이상의 수분을 함유한 수박은 먹기도 좋고 이뇨작용도 탁월하니 체내에 잔류하고 있는 독을 배출하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수박 많이 먹게 언니가 뱀에 또 물리면 좋겠다."

언니 덕분에 수박을 실컷 먹었을 텐데 과일 킬러인 나에게는 그 정도로 양이 부족했나 보다. 미취학생이던 내가 순진하게, 아니 영악하게 내뱉은 말을 엄마는 아직도 가끔 꺼낸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 우스워 눈물이 났다고 하지만 언니는 어린 동생이 얄미워 눈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산딸기를 잔뜩 먹고 점 찍어둔 뽕나무로 향했다. 주인 허락을 받아 2년 전부터 따먹기 시작한 오디인데 가파른 밭둑에 있어 따기가 쉽지 않다. 손으로 따는 대신 잠자리채를 들고 건드리자 잘 익은 오디가 툭툭 망 안으로 떨어진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무렵 뽕나무 건너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 엄마~ 여기 와서 앵두도 따 가요."

행운의 여신이 곁에 있는 것 같았다. 같은 날 산딸기와 오디에 이어 귀한 앵두까지 얻게 되다니! 노부부가 손짓하는 곳으로 가자 자그마한 앵두나무 두 그루가 보였다. 키는 작지만 보석 같은 빨간 앵두가 가지에 촘촘하게 박힌 나무였다. 다 따가라고 했지만 처음으로 앵두를 수확하는 아이들의 손길이 더뎠다.

한 번 먹을 만큼의 오디와 앵두를 수확해 아지트로 돌아가는 길, 햇살은 뜨거웠지만 살랑살랑 춤추는 배추흰나비처럼 딸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산촌의 지하수로 손과 오디와 앵두를 씻는 아이들의 내면에 달콤한 기억들이 알알이 쌓여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기다리던 여름이다.
 
▲ 슬기로운 채집 생활 같은 날 채취한 산딸기와 오디와 앵두
ⓒ 최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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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주간지 [서산시대] 동시기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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