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서울 광화문에서 아이를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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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임은희 기자]
▲ 경복궁 전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야외정원에서 바라본 경복궁의 모습이다. 청와대와 북악산도 보인다. |
ⓒ 임은희 |
서울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빈곤과 풍요로 양육한다는 말과 같다. 대중교통으로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차 없이는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것이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다. 편의시설은 많지만 어린이에 대한 배려가 크지는 않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가 육아에 호의적이라고 느낀 적이 드물다.
▲ 유명 디저트 카페의 노키즈존 안내문 대부분의 노키즈존 카페는 안내문을 붙이지 않지만 해당 카페는 부모들이 헛걸음 하는 일이 없도록 안내문을 부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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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광화문 인근 지역에는 관광객도 많지만 서울에 거주하며 일하는 외국인도 많다. 사무직, 일용직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쉽게 외국인 노동자를 볼 수 있다. 중국인이나 동남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는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나 동네 분위기를 망친다는 등의 차별과 혐오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서울은 국제 도시지만 인종 다양성을 존중하는 도시는 아니다.
▲ 2023년 5월 1일 집회 아이들과 딱풀 사러 동네 문구점 가는 길에 만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노동절 집회 모습이다. 주최 측 추산 4만여 명, 경찰 추산 2만 명이 운집한 대규모 집회였다. 광화문 인근 집회는 신고 인원이 미리 알려져 있고 기동대도 많은 편이기 때문에 폭력소요가 거의 없어서 민주주의에 관한 계기수업을 하기 좋은 현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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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이나 시청 앞은 거의 매일 집회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역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지만 의도적으로 집회 지역을 피해 다니고 관련 기사와 거리를 두면, 아이들은 현대 한국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곳이 서울이다. 직접 집회에 참여하는 중고등학생들도 있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교과서와 문제집만 보며 사는 학생들도 있다.
도심만 거닐어도 상권분석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상권이 발달된 곳이라 어린 학생들도 금융 지식을 쉽게 쌓을 수 있다. 예적금에 신경을 쓰는 중산층의 경우 경제 활동을 일찍 시작하는 학생들도 많다. 반대로 빈곤층 학생들은 제대로 된 금융 교육을 받지 못해서 가난을 대물림하기도 쉽다.
비슷한 소득 수준, 학력의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아파트 단지의 학교를 선호한다. '초품아(초등학교를 품고 있는 아파트라는 뜻의 신조어)'가 있는 아파트는 더 비싸다.
한국경제연구원(KERI)의 '가구 특성별 중산층 비율 및 가구 계층 이동성 분석과 시사점'에 따르면, 과거보다 정체가구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어서 계층이동성이 점차적으로 감소하고 있단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비슷한 것만 보고, 듣고, 가르치며 아이들을 키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기준으로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채 살아간다. 삶의 양극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치밀하다.
광화문에서 대중교통으로 20분 안에 갈 수 있는 크고 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50개 가까이 된다. 서울에 살면서 공연이나 전시를 보기 위해 특별히 애를 썼던 기억은 없다.
▲ 서울시립미술관의 키키 스미스 '자유낙하'전시 풍경 2022년 12월 15일부터 2023년 3월 12일까지 열렸다. 서울에 살면 세계적인 작가들의 유명 작품을 관람할 기회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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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자랑하는 다양한 체험 행사는 직접 경험이 부족한 도시의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간접 체험 행사인 경우가 많다. 곡식 재배처럼 어떤 지역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접하기 어려우니 체험으로 경험을 채운다. 사비를 들여 노력하지 않으면 다양한 체험은 쉽지 않다. 정보접근성이 떨어지는 가정은 무료체험을 놓치고 경제력이 낮은 가정은 유료체험을 못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긴 시간을 머무는 장소다. 학교 환경은 학생들 정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운동장이 사라지거나 주차장으로 탈바꿈한 학교들이 제법 있다. 뛰어노는 학생들을 구경하기 어려워진 학교는 자연스럽게 삭막해진다.
2022년 11월, 산림청이 선정한 '학교숲이 아름다운 6개교'에 서울 학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런 부분을 잘 보여준다. 다른 지역보다 높은 주거비용과 물가를 감당하며 서울에 거주하는 가정의 학생들은 인근 공원이나 산으로 녹지를 찾아가야 한다. 녹지가 잘 조성된 고급 맨션이나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녹지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낮을 수밖에 없다.
나무를 보지 않으면 계절의 변화조차 인지하기 어려운 빌딩숲에서 아이들의 오감은 둔해진다. 6월 5일은 환경의 날이었다. 서울시 교육청은 6월을 생태전환교육의 달로 지정하고 교육과정 연계 생태전환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주말마다 숲으로 캠핑을 떠나거나 고궁을 방문하고 식물원을 찾는 가정들도 많다. 잃어가는 감각의 영역을 살려주기 위한 어른들의 몸부림이다.
정치, 사회, 문화, 교육의 중심지라서 어떤 면에서는 도시에 사는 것 자체가 이득인 부분도 있다. 간접 체험 활동과 우수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도시의 교육 인프라는 놀라운 수준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으로 모두 동일하다. 인프라가 아무리 풍부해도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제한되어 있다. 어떤 활동을 선택하더라도 아이에게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귀한 경험으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유행하는 지식의 습득에만 치중하게 된다.
다른 지역의 소도시나 마을을 거론하며 '그런 곳에서는 아이를 키우기 어렵지'라는 말을 쉽게 한다. 서울 외 지역을 여행할 때도 거주하고 있는 지역민에 대한 존중이나 지역 풍습에 대한 것보다는 학습 효과가 좋은 역사ㆍ생태 유적과 소셜미디어 유명 맛집에 집중하기도 한다.
돈을 받고 서비스를 주는 지역상권의 노동자로만 지역민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체험과 교육이 사람과 터전에 대한 존중보다 앞서니 지역을 훼손하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일도 발생한다. 서울이 아닌 지역을 특색 없이 '지방'으로 뭉뚱그려 부르는 대신 밀양, 군산, 삼척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르면 좋겠다. 존중이 상식이면 얼마나 좋을까.
▲ 2023년 6월 4일의 활기찬 명동 코로나19 여파로 소멸 위기까지 갔던 명동 상권의 부활이 진행 중이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에 매료된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서울의 명소 중 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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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군지에서 공부에 파묻혀 지내는 학생들도 많지만 그들이 서울 학생의 전부는 아니다. 입시교육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모든 게 입시 위주로 보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다른 부분이 보이기 마련이다.
전체 학생의 75.5%가 사교육을 받는 세상이니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 중에서 잘하는 아이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잘하는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교육에 허덕이면서 상위권에 속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시간대비 학습 효용성이 좋지 못하다.
대치동 교육으로 전 세계 상위권 대학을 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모습은 다양한 지역사회를 존중하지 않는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1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6세라는데 고작 20살 무렵의 대학 입시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해머링 맨' 광화문을 상징하는 공공미술 작품 중 하나로 2002년 흥국생명빌딩 앞에 설치되었다. 총11개의 작품이 세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중 서울의 해머링 맨이 가장 크다. 하루에 10시간씩 망치질을 하며 주 50시간 작동한다. 해머링 맨 시리즈의 원형 작품 제목은 '노동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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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들이 존재한다. 조리원, 명품 기저귀, 숲체험, 과학교실, 놀이수학, 특정 학원의 커리큘럼, 악기, 스포츠 등 유행에 따라 매뉴얼처럼 정해진 양육 소비라는 것이 존재한다.
마지막까지 남을 이들은 아이와 부모인데 '필수'라는 이름으로 둘러싼 물질적인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한 천편일률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아이들과 손을 잡고 기동대 차량이 늘어선 세종대로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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