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번째 여름날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박희종 2023. 6. 12. 09: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족 여행을 마치고

[박희종 기자]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선 베트남 다낭 국제공항, 습기를 가득 먹은 공기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후텁지근한 공기에 습기가 가득하다. 짐을 찾아 나선 다낭 공항은 일흔 번째 여름날을 후끈 달구고 있었다. 언젠가 티베트 여행이 문득 떠 올랐다. 

칭짱열차를 타고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북경까지 40여 시간의 여행은 대단했다.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은 잊지 못할 꿈의 무대였다. 해발 5,000여 미터를 오르내리다 고도는 점점 낮아졌고, 온몸을 숨죽이게 했던 고산증세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신비하다는 생각을 하며 내린 북경 서역, 후텁지근한 공기가 앞을 막아섰다. 따가움에 습기를 가득 먹었고, 거기에 매연까지 섞여 있는 답답한 공기였다. 다낭의 공기는 북경 매연만 없을 뿐, 찌는 듯한 더위는 숨을 멎게 했다.

오래전, 아내에게 아무 생각 없이 내어준 여권으로 베트남 다낭 여행길에 올라야 했다. 일흔 번째 여름을 축하해 주기 위해 아이들과 아내가 공모한 가족여행이다. 세월의 잔혹함에 감사해야 할지,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산에서 딸네가 오고 수원에서 아들이 합세 한 가족 여행이다. 오랜만에 이루어지는 행복한 여행길이다.

다낭의 여름날
 
▲ 다낭의 골든 브릿지 베트남 바나힐 정상에 자리한 ‘골든 브릿지’다.거대한 두 손이 150m 길이의 다리를 떠받치는 모습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 박희종
 
더위를 가득 안고 찾아간 다낭의 미케해변(My Khe beach)은 30여km나 이어지는 세계  6대 해변 중에 하나라 한다. 빵빵한 에어컨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달큼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기다기고 있을 줄 알았다.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힘겹게 돌아가는 대형 선풍기가 온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더위가 힘들다는 오래 전 어머님의 한숨 소리가 언뜻 떠오른다. 이렇게 가족여행은 시작되었고 더위 속에서도 패키지 여행의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숨을 헐떡이며 쌀국수로 허기를 메우고 찾아간 호텔은 천국 아닌 천국이었다.

호텔은 해변가를 차지한 어느 한국 기업의 소유물이다. 아스라이 파도가 보이고 야외에 산뜻한 수영장이 자리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이 있을 수 있을까? 여장을 풀고 찾아간 다낭 밤거리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온갖 시민들이 쏟아져 나온 듯한 다낭 거리, 사람들로 가득한 해변가와 해산물을 즐기는 식당 거리는 눈을 의심하게 했다. 다낭의 진면목을 보는 듯한 장면은 선택관광인 관광 자동차를 타고 봐야 했다. 어느 여행가이드는 일리노이드 공대생들도 풀 수 없다는 패키지여행 가격이라 했다. 비밀에 감춰진 패키지여행 가격을 생각하면 이해되는 여행이다.

다낭의 찌는 듯한 여름은 가혹했다. 끈적이는 피부를 간직 한 채 호텔로 들어섰다. 온종일의 찌꺼기를 씻어낸 몸을 보전하며 보낸 밤은 상쾌했고, 아침을 열어준 식사는 일흔의 여름을 축하해 주기에 충분했다. 

상상할 수 없는 여행

어린 아이들이 40년 지나 엄마와 아버지를 돌보는 여행이다. 여행의 주제인 볼거리와 먹거리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부모를 아이들이 어깨를 감싸며 가쁜 언덕을 오르고 있다. 온전한 정신으론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아빠의 손을 잡고 다니던 어린아이였다.

잠시도 떨어져 살 수 없었던 아이들이 멀리 살며 가끔은 전화를 한다. 오늘도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있느냐고. 서로에게 불편함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아이들의 부축을 받으며 오르는 언덕이다. 일흔 번째의 여름은 생생하던 몸을 그냥 두지 않았다. 다양한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수십 개 나라 배낭여행을 거뜬하게 지켜냈다. 하지만 세월은 심술을 부렸다. 

아이들이 호텔에 걸어준 글귀, 일흔부터가 새 인생이란다. 아이들이 축하 노래를 부르며 일흔의 여름을 축하했다. 일흔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온전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리임은 벌써 아는 나이가 된 지 오래다.

한참을 올라야 하는 산에 케이블카를 타고 그들의 삶의 일부분인 바구니 배를 타야 했다. 강바닥이 얕아 배가 쩔쩔매는 어려움 속에 호이얀의 밤 풍경을 만났다. 사람들이 이렇게도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물건을 팔고 배를 타야 하며 음식을 먹어야 했다. 인파 속에 바라보는 호이안의 밤거리는 신비하기만 했다. 더위 속에서도 이곳저곳을 살피는 발걸음이 바쁘기만 하다. 
 
▲ 베트남 호이안의 밤풍경 베트남 호이안에서 만난 밤풍경이다. 갖가지 사연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신비하면서도 신선했다.
ⓒ 박희종
 
어렵게 인파를 뚫고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은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현지식으로 마련된 저녁식사 분위기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지만 더위와의 싸움에 지쳐가고 있다.

헐떡거리며 돌아가는 에어컨에 숨이 차 오른다. 야시장 구경엔 역시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를 감시하고 있다. 혹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나?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이 일흔 번째 맞이한 부모를 돌보고 있다. 더위 속에 긴 여행을 뒤로하고 돌아온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해야 했다. 

편하지만 허전한 가족 여행

온 식구가 조용한 식당에 둘러앉았다. 갖가지 음식을 주문해 식사를 하는 시간, 어느덧 돌봐야 하는 대상이 순식간에 바뀐 듯하다. 주문을 해주고 먹는 방식을 알려주는 아이들이다.

외국 여행에서 언제나 걱정거리였던 언어의 소통이었지만 이번 여행은 전혀 걱정이 없다. 출국과 입국 수속이 걱정 없고 식사 주문이 자유롭다. 모든 일정을 아이들이 계획하고 시행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걱정이고 주문이 어려웠고 잠자리가 불편했다. 하지만 전혀 걱정거리가 없는 여행이 이렇게 허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입국하는 날,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조금은 출출하던 시간에 아이들과 찾아간 곳은 공항라운지였다. 아이들의 배려로 샤워를 할 수 있고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햄버거 하나로 때우고 넘어갈 저녁이 감당할 수 없는 호사로 변했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모두가 고요히 잠든 밤이지만 많은 생각이 오고 가는 밤이다. 밤새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비행기는 어느덧 인천이다. 다시 현실 속으로 들어온 삶이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한없이 고마운 여행이었지만,  남은 숙제도 많이 있음을 알게 한 일흔 번째 여름날의 여행이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아내와 아이들이 마련해준 칠순을 기념하는 여행 이야기다. 덧없는 세월은 아이들의 돌봄을 받아야했고, 남아 있는 삶에 많은 숙제가 있음을 알게 해 준 여행이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