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드링크로 와인을 주는 호스텔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계획대로라면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코로나19 이후 아직 육로 국경을 개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국제 열차도 아직은 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저는 비행기를 타고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 향했습니다.
트빌리시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시내로 향하던 버스가 갑자기 길을 틀었습니다. 지도 앱에 나온 경로와 다릅니다. 어차피 근처까지는 왔으니, 내려서 숙소까지 걸어 가기로 합니다. 15분 정도를 걸어 숙소 근처에 도착합니다. 근처에 오니, 버스가 방향을 튼 이유를 알았습니다.
▲ 트빌리시의 루스타벨리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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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특산품은 누가 뭐래도 와인이지요. 와인의 품질도 유명하지만, 그 역사도 깁니다. 이미 8천년 전부터 와인을 생산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죠. 사실 조지아는 아프리카 밖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의 거주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역사가 깊은 땅이기도 합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조지아는 그 깊은 역사만큼 다양한 문화권과 교류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리스와 적극적으로 교류했죠. 그리스 신화에도 '콜키스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황금 양모를 찾아 떠나는 아르고 호 모험의 목적지가 바로 이 콜키스 왕국이었죠.
▲ 성삼위일체 대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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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조지아는 군사적인 영토 확장과 함께 예술, 철학, 과학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뤘습니다. 봉건 영주의 힘이 억압되고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가 형성되었습니다. 덕분에 이 시기를 '조지아의 르네상스'나 '조지아의 레콘키스타'로 부르기도 하죠. 당시 조지아는 명실상부한 코카서스의 중심 국가였습니다.
조지아의 황금기는 티무르 제국의 침입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됩니다. 같은 기독교 세력이었던 비잔틴 제국의 멸망은 조지아에도 위기였습니다. 이란과 오스만이 조지아의 영토를 잠식해 나갔습니다.
▲ 메테키 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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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은 붕괴합니다. 조지아에서는 민족주의 세력이 결합하기 시작했죠. 이들은 1918년 5월 26일, 조지아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합니다.
▲ 5월 26일을 기념하는 깃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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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년 전, 조지아 민주공화국이 세워지던 1918년 5월 26일의 전야도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트빌리시의 중심가는 들떠 있었을 것이고, 같은 마음으로 국기를 거는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과 국기의 모습은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독립된 조지아의 역사는 길지 못했습니다. 북적이는 독립의 전야에는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조약 이후 9개월 만에 소비에트 러시아는 조지아를 침입합니다. 조지아는 곧 소련에 합병되죠.
▲ 트빌리시 건설 1500주년에 맞춰 1958년 건설된 어머니 조지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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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트빌리시의 시민들에게 2023년 오늘은 너무도 먼 이야기였을지도 모릅니다. 독립도 자유도 한때의 꿈으로만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시대였으니까요.
그러나 오늘도 트빌리시의 거리에는 조지아의 국기가 내걸리고 있습니다. 1921년 조지아를 침공하던 소비에트 적군에게도, 긴 시간을 지난 오늘의 독립기념일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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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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