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이 평생 매달린 생트 빅투아르산에 가봤습니다
[백종인 기자]
▲ 로똥드 분수 엑상프로방스의 랜드마크라 하는 로똥드 분수에서부터 미라보 거리가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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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엑스 날씨는 내가 살고 있는 엘에이 날씨와 흡사했다. 엑스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엑스의 랜드마크라 하는 로똥드 분수를 비롯한 수많은 분수도, 중세 시대에 지어진 성당도 아니었다.
▲ 엑상프로방스의 밤 거리 엑스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미라보 거리와 구시가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야외 카페와 음식점에서 낮부터 밤까지 먹고 마시며 끝이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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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상프로방스의 장터 장터에 나온 과일, 야채, 꽃 등의 지역 농산물들은 싱싱하고 값도 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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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의 고개(Terrain des Peintres) 화가의 고개에서 보이는 생트 빅투아르산. 세잔은 멀리 우뚝 솟은 생트 빅투아르산을 그리기 위해 매일 고개를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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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에서 태어나 엑스에서 죽은 세잔은 어린 시절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 함께 보냈던 생트 빅투아르산을 주제로 유화 36점, 수채화 45점을 그렸고,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생트 빅투아르산을 그리기 위해 화가의 고개를 올랐다.
▲ 생트 빅투아르산 정상 생트 빅투아르산 정상에 앉으니, 옆으로 길게 뻗은 절벽 아래로 넓은 평원과 마을들 그리고 비몽댐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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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트 빅투아르산 정상의 십자가 정상에는 화가의 고개에서 어렴쿳이 보였던 프로방스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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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곳곳에서 보이는 비몽댐이 점점 작아졌다. 정상을 앞두고 수도원이 나타났고 정상에는 프로방스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화가의 고개에서 보았던 십자가였다. 정상에 앉으니, 옆으로 길게 뻗은 절벽 아래로 넓은 평원과 마을들 그리고 비몽댐이 보였다.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의 다소 거칠고도 두려우면서도 친구 같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막상 엑스에는 세잔의 그림이 많지 않다. 매진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아틀리에에는 세잔의 그림이 없고 구시가에 있는 그라네 박물관에도 몇 점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생트 빅투아르산을 직접 간 것으로 세잔의 흔적 찾기는 충분했다.
▲ 아를 정신병원의 정원 위의 사진은 아를 정신병원 정원의 현재 모습이고 아래는 고흐가 그림 정원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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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올리브 과수원 고흐가 입원했던 생레미 요양원 시절 자연 속으로 나와 알필 산맥을 바라보며 그렸던 올리브 나무가 울창한 평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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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테라스 고흐의 그림 <카페테라스>가 있넌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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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은 고흐의 흔적은 고흐가 입원했던 생레미 요양원 시절 자연 속으로 나와 알필 산맥을 바라보며 그렸던 올리브 나무가 울창한 평원과 아를의 콜로세움과 <카페테라스> 자리, 그리고 고흐가 입원했던 아를 정신병원의 정원 정도였다.
생레미 정신병원도 고흐가 살았던 노란 방도 고흐가 그렸던 장소와 비교하는 고흐의 디지털 작품도 볼 수 없었다. 목적을 잃어버린 뭔가 빠진 듯한 관광이었다. 그런대로 자연과 자연의 빛을 사랑했던 고흐의 정신 세계는 느꼈다고 할까?
▲ 뤼브롱(Luberon) 산맥 기슭의 마을들 시계방향으로 고르드, 퐁텐드보클뤼지, 루르마랭, 뤼시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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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착한 마을은 장이 서고 있는 루르마랭(Lourmarin)이었는데, 장터로 가려진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조용한 전원 그 자체였다. 두 번째 마을은 황토 마을로 알려진 뤼시용(Roussillon). 언덕과 산은 물론 건물 대부분이 돌과 황토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간 곳이 가장 유명한 고르드(Gordes)였는데, 고르드는 마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이었다. 돌로 쌓아 올린 절벽 위에 마을이 있었고 그 꼭대기에 고르드 성이 있는 것이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본 그림을 연상시켰다.
세 개 마을 방문으로 슬슬 피로가 느껴질 무렵 절벽과 에메랄드빛 녹색 강으로 유명한 퐁텐드보클뤼지(Fontaine-de-Vaucluse)로 갔다. 우리는 콜론 광장을 지나 시작되는 산책길 카페에 앉아 넋을 잃고 녹색 강물을 바라보았다. 겉만 훑은 것 같은 아쉬움이 많은 방문이었다. 여유가 있다면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각 마을의 정취에 흠뻑 취하고 싶었다.
▲ 캠프데밀즈 넷플릭스 드라마 트랜스아틀란틱에 나온 수용소가 엑스 외곽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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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는 1940년 6월까지 나치에 반대하는 3,500여 명의 세계적인 문필가, 과학자, 예술가 등을 구금했고, 이후 1942년까지 아우슈비츠로 가는 임시 정거장이 되었다. 이들은 공장 바닥에서 잠을 자고 3,000여 명의 인원이 단 4개의 화장실을 사용했다.
▲ 캠프데밀즈 수용소에 남겨진 벽화 캠프데밀즈에 억류된 예숙가들은 절망속에서 공포를 잊고자 벽에 그림을 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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