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아니라도 직업병은 병… 건강문제 항상 직업 연관성 있어"

신은진 기자 2023. 6. 1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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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직업병 명의' 한양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인아 교수
 

아주 특별한 경우 외엔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현대인의 삶에서 일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정작 노동자 사이에선 '일 시작 후 몸도 정신도 이상해졌다', '이렇게 일하다간 죽겠다'는 말이 농담 아닌 농담처럼 나온다. 실제로 최근 급식노동자 다수가 직업 때문에 폐암이 발병했음을 인정받았고, LG 생활건강 '네이처컬렉션'에서 3인 2교대 근무를 해온 20대 화장품 판매원이 사망 후 산재(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모든 노동자는 일을 시작한 후 크고 작은 병을 얻는다. 하지만 어떤 것이 직업병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국내 첫 직업병 안심센터인 한양대병원 직업병 안심센터 부소장을 맡은 한양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인아 교수를 만나 직업병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한양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인아 교수​ /신지호 기자
-직업병은 정확히 어떤 병을 말하는 건가? 산재로 인정받는 질환과 다른가?
직업병은 업무와 관련해서 발생하거나 업무 때문에 악화한, 또는 업무가 원인이 되는 모든 질환을 말한다. 직업병을 학술적으로 정확히 설명하자면, 업무와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 질환을 '직업병'이라고 하고, 작업에서의 위험요인과 개인적 위험 요인이 상호 작용을 해 발생하는 질환은 '작업 관련성 질환'이다. 일반인이 직업병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보통 작업 관련성 질환인 경우가 많다. 단, 특정한 질병을 직업병이라고 하진 않는다. 직업병은 내과도 외과도 있을 수 있다. 직업병엔 모든 과의 환자가 존재한다.
직업병은 산재와 다르다. 산재는 산업재해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받는 질환을 통칭하는 법률적 용어다.

-노동자에서 발생하는 모든 질환은 직업병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
그렇다. 모든 질환이 직업병일 수 있다. 다만, 그 질환에 관련된 원인 중에 직업적인 요인이 있을 때 직업병이다. 직업상 노출되는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 심리적 요인이 질환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직업병이라 본다.

그러다보니 직업병 환자는 보통 이미 다른 진료과 환자인 경우가 많다. 환자가 산재 판정을 원했을 때 직업병 판정을 위해 직업환경의학과에 진료를 받으러 온다.

-산재와 관계가 밀접하다. 직업병은 중증도가 다 높은가?
그렇진 않다. 우리나라 노동시장 양극화된 영향이 있긴 한데, 외래 진료를 받는 직업병 환자 대부분은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경증 질환이다. 반면 정신질환은 이미 직업병 환자는 자살했거나 과로사를 해 유족이 온다. 직업병 진단을 위해 병원을 찾는 이들의 1/3은 유족이다. 과로사 등은 치명률이 높기 때문이다. 직업병은 원인이 다양해 중증도도 다양하다.

물론 경증 질환이라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당사자는 직업병 때문에 굉장히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게 맞다. 특히나 직업병이 생기면 병 때문에 일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병원을 찾은 것이기 때문에 중증도가 낮다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직업병 발병률이 특히 높은 직업이 있나?
질환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근로자들은 일할 수 있는 상태기 때문에 건강하지만, 특정 직업군에서는 특정 종류의 질병이 많다. 예를 들어, 조리 종사자는 폐암 발생률이 높고, 소방관은 혈액암이 매우 흔하게 발생한다. 특수 세척액을 사용하는 금속 가공업체 종사자는 독성 간염 발병률이 훨씬 높다. 특정 직업군에서 어떤 병이 많다는 게 통계적으로 있긴하나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직업병이라고 해서 모두 산재 인정을 받는 건 아니다. 직업병은 직업에 따라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나고, 근로 시간이나 환경 등에 따라 중증도 차이도 크다. /신지호 기자
-진료과목마다 차이는 있을듯하다. 내과에서 흔한 직업병은?
가장 흔한 내과적 직업병은 간염이다. 화학물질에 노출되면 직업성 소화기 질환으로 독성간염이 흔하게 발생한다. 그다음이 호흡기 질환이다. 폐암이나 천식, COPD, 특발성 폐섬유화증이 직업성 호흡기 질환으로 발생한다. 분진이 많이 나는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에서 흔하게 생길 수 있는 질병이라 대표적인 내과 직업병에 속한다. 호흡기 내과 진료에서 환자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꼭 물어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과에선 어떤가?
외과적 직업병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데, 그 중에선 정형외과 비중이 큰 편이다. 요추 추간판 탈출증, 경추 추간판 탈출증, 어깨나 무릎의 인대 손상, 반월상 연골 이상 등이 주요 외과적 직업병이다.

-직업병으로 인한 정신과 질환은 무엇이 많나?
국가마다 차이는 있다. 유럽 등은 번아웃이 가장 큰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문제가 가장 많다. 우리나라는 직장 내 괴롭힘 또는 감정 노동, 각종 송사 감사 등으로 인한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 적응 장애나 우울증 등이 많다. 직업병으로 인한 정신과 질환은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단순히 나쁘고, 마음이 상하는 것과는 다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아니라 적응장애나 우울증이 많나?
그렇다. 일반인들은 직장에서 생긴 정신적 문제를 대부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생각하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은 원인 사건이 매우 충격적인 수준이어야 한다. 누가 죽는 걸 보거나 자신이 죽을 뻔하거나 하는 정도의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어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내린다.

직장에서 겪는 스트레스성 사건은 대부분 업무 전환, 부서 강제 전환 배치와 그로 인한 다른 직원과의 갈등, 회사의 명예퇴직 강요, 업무 강요 등의 문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진단을 내릴 만큼은 아니지만, 이는 개인의 인생에 매우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이며, 본인의 평정심이나 정서의 기본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건들이다.

일반적으론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사건이 해결되면 괜찮아져 정서가 안정된다. 괴롭히던 상사가 퇴사하면 내 마음이 편해져야 한다. 그러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때 적응장애로 진단한다.

우리나라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감사, 인사위원회 등의 절차를 경험하고, 서로 고소·고발하는 과정에서 몇 년이 걸린다. 그러다보니 본인의 정신질환이 직업병이며, 산재라는 걸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길어져서 우울증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

-직업병과 일반 질환은 임상적으로 차이가 있나?
병리적으로는 없다. 폐암의 경우를 보면, 흡연이 원인인 폐암과 급식노동자의 폐암이 임상적으로 다르지 않다. 조직학적으로 이것이 직업성 폐암이다, 아니다고 구분할 수 없다. 임상 경과가 확실히 나쁘다거나 예후가 달라지지도 않는다. 직업병이라고 해서 치료법도 달라지지 않는다. 직업성 호흡기 질환은 호흡기내과, 간염은 소화기 내과, 급성 중독은 응급의학과 등에서 치료하는 식이다.

그래서 직업병이 의심돼 진료를 받을 때는 꼭 확진을 받아와야 한다. 예를 들어, 원발성 폐암인지 전이성 폐암인지에 따라 업무 관련성 소견서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장암이 있는 전이성 폐암환자라면 폐암 관련 업무 관련성을 따질 게 아니라 대장암 관련 업무 관련성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폐암에 영향을 주는 발암 요인과 대장암에 영향을 주는 발암 요인이 완전히 다르다.

-임상적 차이가 없다면, 나의 병이 직업병이라는 걸 어떻게 의심해야 하나?
사실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병을 직업병으로 의심하고, 직업병임을 인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요즘엔 직업병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며 직업병을 의심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환자가 산재를 신청해야겠다고 생각을 할 때 직업병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는다.

직업병은 환자가 의심이 어렵기에 의심될 땐 직업환경의학과가 있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길 권한다. 일반적인 1차 의료기관에선 진단이 어렵다.

-진료를 볼 때 의사에게 직업을 얘기해야 하는 건가?
당연하다. 하는 일을 얘기하면 진료를 할 때 큰 도움이 된다. 환자가 직업을 얘기해주지 않으면, 의사도 직업병임을 의심하긴 쉽지 않다.

특히 호흡기 질환과 간과 관련한 내과질환, 피부질환 진료를 볼 때는 꼭 직업을 얘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성 간염이나 기타 간질환이 없는데 간 수치가 올라갔다면 직업병을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장에서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보호장비를 착용하는 일을 한다고 얘기해야 한다. 사업장을 다녀보면,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긴 한데 적절하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다. 또한 예상하지 못한, 나의 작업과는 상관없는 데서 위험요인에 노출될 수 있기에 하는 일을 꼭 얘기해줘야 한다.

사진= 직업병은 일반 질환과 임상적 차이가 없으므로 직업병이 의심될 땐 의사에게 자신의 일을 꼭 설명해야 한다. /신지호 기자
-직업병이 의심돼 진료를 받으러 갈 때 환자가 준비할 게 있을까?
정확한 진단을 받아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건강보험 가입 이력이나 자격이력서를 함께 가져오면 더욱 좋다. 일용직이라면 고용 보험 가입 이력을 가져가면 된다. 기록이 있으면 직업력을 더욱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모를 땐 직업병 안심센터 콜센터를 이용해 정확한 서류를 안내받아도 된다. 서류 등을 잘 갖춘다면 직업병 진단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직업병을 예방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예방 불가능한 건 직업병이라고 하지 않는다. 직업병은 규제 등을 통해 작업 환경을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규제를 통해 조리실 후드 설치 위치만 바꿔줘도 조리시설 종사자의 폐암을 예방할 수 있다. 특수 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은 목장갑이 아닌 화학물질을 방지 장갑만 제대로 껴도 피부 질환이 생기지 않는다. 또한 회사가 조직을 좀 더 민주적인 구조로 바꾸고, 문제가 생기면 적절하게 대응하면 적응 장애나 우울증 예방이 가능하다.

예방조치를 해도 직업병이 안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직업병 규모는 줄어들고, 또다른 종류의 직업병이 생기는 건 막을 수 있다. 직업병은 치료가 곧 예방이다.

또한 사업장의 예방 노력이 직업병 예방에 가장 효과가 좋겠으나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불편하더라도 보호장비를 꼭 착용하고, 일을 하고 나서 몸에 이상이 생기면 꼭 사업장에 얘기하고 한다.

-직업병을 의심하는, 직업병 판정을 받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활동적인 시기의 절반은 직장에서 보낸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직장에서 경험한 자원이 나의 평생 자원이 되기도 한다. 직업병으로 진단을 받았든 안 받았든 내가 지금 앓는 건강문제가 직업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근로자 모두가 최상의 건강상태를 갖고 있진 않다. 내 건강이 조금도 좋아지길 바라고, 일할 때 어떻게 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된다면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길 권한다.

여러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는 경쟁이 심한 사회다보니 사람들이 너무 완벽해지려고 애쓴다. 그러다보면 아무리 잘 나가던 사람도 위기를 겪을 수 있는데, 위기가 내가 약해서임이 아니며,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직장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다. 고민 등을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얘기를 하면 상대에게 스트레스가 공유될까봐 말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를 하면 상대도 본인의 이야기 할 수 있고, 공감을 통해 서로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 쌓아놓지 말고 자꾸 이야기하길 바란다.

사진=김인아 교수/신지호 기자
김인아 교수는
한양대학교에서 의학 학사,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직업환경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이사 및 편집위원,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 기획이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한국역학회 회원, ICOH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노동자의 정신건강, 직업성 질환, 산재보상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연구 및 활동을 인정받아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우수논문상(2006),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2013), 고용노동부 장관 표창(2015),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2018)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병원 직업병 안심센터 부소장으로 활동하며, 직업병 예방을 위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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