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우리가 벗어나야 할 공중증

2023. 6. 1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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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입니다." 지난 8일 주한 중국대사가 어떤 회동에서 한 이 발언은 최근 우리 외교정책에 대한 중국의 불만을 그대로 담고 있다.

6·25전쟁 참전을 항미원조(抗美援朝)로 규정하고 북한 도발을 정당한 안보 우려로 감싸는 중국 행태에 대해 우리가 직접적 비난을 삼간 이유도 모두 상호존중의 한·중 관계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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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입니다.” 지난 8일 주한 중국대사가 어떤 회동에서 한 이 발언은 최근 우리 외교정책에 대한 중국의 불만을 그대로 담고 있다. 국제관계의 현상을 보는 시각은 국가별로 서로 다를 수 있고, 중국이 자신의 우려와 입장을 표명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메시지가 적절한 방식과 수위로 전달되는가이다. 외교는 절제와 배려의 미학인데 이 발언에선 유감스럽게도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은 자신의 핵심 우려가 확실히 존중받기를 원하지만 그들이 과연 우리를 존중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그들의 거친 메시지 전달과 금도를 넘는 발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우리 대통령의 대만 관련 언급과 관련해 “말참견 말라”고 반박했고, 지난해 8월엔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5개 사항(五個應當)’을 제시했다. 우리와 중국은 추구하는 이념과 정치체제에 많은 차이가 있으며, 역사적 정체성도 다르다. 지난 30여년의 한·중 관계 역시 서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공통의 이익을 확대하자는 정신으로 발전돼 온 것이다. 6·25전쟁 참전을 항미원조(抗美援朝)로 규정하고 북한 도발을 정당한 안보 우려로 감싸는 중국 행태에 대해 우리가 직접적 비난을 삼간 이유도 모두 상호존중의 한·중 관계를 위한 것이었다.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희망과 이익만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는 사고방식과 행태는 외교적 가스라이팅이나 마찬가지다.

국제관계에서는 힘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진정한 신뢰와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국가관계라면 이런 인식을 직설적이고 공개적으로, 그것도 거친 어휘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문제가 된 중국의 발언들은 우리를 정확히 겨냥해 거리낌 없이 나온 것들이다. 이에 대해 우리의 문제 제기와 항의가 있었음에도 같은 행태가 반복된다는 것은 결국 중국의 뇌리에 한국에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아마 우리가 한·중 관계에서 일종의 ‘공중증(恐中症)’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 안주하면서 가능한 한 낯 붉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우리 사회의 심리가 더 합리적이며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일부의 착시를 중국은 그대로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공중증은 너무 나간 평가이고 현재 중국의 행태보다는 한·중 관계 악화의 신호를 더 심각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고픈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외적 자율성의 기준에서 특정 국가만 예외가 돼야 한다면 그것은 편향성이라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만약 위의 발언이나 행태가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의 것이었을 경우 우리가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돌아본다면 공중증이 현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중국과의 갈등을 방치하거나 일부러 악화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한·중 관계는 우리의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전략적 융통성을 위해서도 현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상호존중의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경제적 이익만으로 유지되는 협력은 언제든 깨어질 수 있고, 친구가 아닌 인질의 위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건전한 한·중 관계의 발전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하되 입장이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예상되는 불이익과 관계없이 당당히 이를 밝히는 자세, 이것이 ‘마땅히 해야 할 사항’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중국의 외교 행태도 바뀌고 진정한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가능하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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