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공직자와 재산

2023. 6. 1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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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공직자와 후보자의 재산등록
및 공개 제도로 자질 능력보다
재산형성과정이 더 중요해져

등록 대상 재산 범위의 나열식
규정으로 가상자산은 빠져
최근 법 개정으로 가상자산도
포함됐지만 예외 존재로 논란

종류 특정하지 말고 재산적
가치 있는 모든 걸 빠짐없이
등록하도록 개선할 필요 있어
이게 법 취지와 목적에 맞아

공직자들은 언제든 과거 자신의 재산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공직자 재산등록제도 덕분이다. 일정 직급 이상의 공직자는 자신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등록해야 하고, 고위직 공직자의 재산등록 내역은 모두 공개된다. 재산의 규모나 변동액, 수입과 지출액, 변동 사유까지 등록·공개의 대상이 된다. 최상위권에 있거나 최하위권에 있는 공직자는 실명과 함께 그 재산의 규모까지 연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공직에 있으면서 단번에 재산을 불릴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 각 기관의 재산 최하위 공직자는 해마다 언론 보도에 자신의 이름과 재산이 언급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재산이 적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겠으나 막상 이곳저곳에서 전화를 받다 보면 공직자가 구설에 오르는 일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다. 재산 최상위 보유자들로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나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1993년 공직자윤리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재산등록 및 공개가 제도화됐다. 같은 해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고, 곧이어 부동산실명제가 이를 뒷받침함으로써 공직자 재산등록 및 공개제도는 실효적으로 강화됐다.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국민 눈높이에 비춰 너무 많은 재산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공직 후보자들이 총리나 장관, 대법관 등 고위직에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언론에서도 거액의 재산을 가진 고위 공직자의 낙마 소식이 줄을 이었다. 이런 양상은 2000년 들어 인사청문회 제도가 전면 도입되면서 더욱 심화했다. 공직 후보자는 정책에 관한 비전이나 자질, 능력보다 오히려 재산형성과정을 점검하고 소명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됐고, 야당에도 재산 내역이나 그 형성 과정을 추적하고 공격하는 것이 훨씬 손쉬운 공격 방법이 됐다.

제도가 시행되면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생겨났다. 배우자 몰래 재산을 숨겨두고 있다가 들통나 혼이 났다거나, 반대로 배우자가 숨겨둔 재산을 찾은 일, 가족이 자신의 재산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징계를 받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공개 대상 직위에 오를 즈음하여 기존 재산 중 문제가 될 만한 자산을 정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2009년 이전에는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모두 등록하도록 한 결과 시댁이나 처가의 재산 내역을 알아보다가 재산을 노린다는 오해를 받았다는 공직자의 이야기도 흔히 들렸다.

그런데 우리 공직자윤리법은 등록 대상 재산의 범위를 나열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부동산, 동산, 1000만원 이상의 현금, 증권, 채권·채무, 500만원 이상의 보석, 골동품 등이 그것이다. 그 결과 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재산, 대표적으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등록에 관해 논란이 있었다. 등록 재산에서 제외한 공직자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많은 공직자는 가상자산을 비롯한 신종 자산들을 등록해 왔다. 지식재산권, 채권, 동산 등 다양한 유형으로 등록했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재산 내역을 투명하게 등록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공직자윤리법 개정으로 일정 범위의 가상자산에 대한 등록이 제도화됐다고 하나 역시 예외가 존재하는 등 논란이 남는 모습이다.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적 가치 있는 권리와 의무를 빠짐없이 등록하도록 하면 되지 굳이 등록 대상 재산 종류를 특정해 나열할 필요가 있을까? ‘재산’은 사전적으로 재화와 자산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금전적 가치를 지니는 권리와 의무의 총체를 말한다. 등록 대상 재산으로 열거되지 않은 종류의 자산을 취득하면 제외했다가 해당 자산을 처분하면 다시 등록하는 방법으로 그 재산 변동 내역의 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재산등록제도는 의도하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일정 금액 이상의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는 모든 재산을 등록하도록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공직자가 재산등록과 공개제도를 통해 스스로를 견제와 감시하에 두고 있는 것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재산 형성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국민으로서도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 길을 걷는 공직자들을 지지하고 격려해줘야 한다. 단순히 흥미 삼아 재산의 많고 적음을 이야기하거나 공직 후보자의 재산 형성 과정에 집착하다 그의 직무 적합성이나 자질에 대한 검증을 놓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재산등록 및 공개의 목적과 취지를 다시 한번 새길 필요가 있다.

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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