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가 그린 대한민국 건국 청사진은 ‘전도 입국’

장창일 2023. 6.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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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최근 한경직(1902~2000) 목사가 복음에 뿌리를 둔 민주주의 건국 이념인 '전도 입국'을 구상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됐다.

'해방정국기 한경직의 건국신학 연구'를 주제로 한 김일석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의 골자가 바로 한경직 목사의 전도 입국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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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석 목사, 박사 논문서 밝혀
“한 목사, 전도 통해 기독교인 늘면
기독교에 기반한 민주주의 국가를
빠르게 세울 수 있다고 확신”
한경직 목사의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유학시절 모습. 한 목사가 품은 ‘전도 입국’ 청사진은 숭실대에 이어 유학시절 배운 전도훈련과 가시적 교회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국민일보DB


1945년 8월 15일. 35년 동안의 일제강점기는 태평양전쟁에서 일제가 무조건 항복하면서 갑작스럽게 끝났다. 준비 없이 맞은 해방은 미 군정으로 이어졌지만 각 분야 지도자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자발적 노력에 나섰다. 그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다.

최근 한경직(1902~2000) 목사가 복음에 뿌리를 둔 민주주의 건국 이념인 ‘전도 입국’을 구상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됐다. ‘해방정국기 한경직의 건국신학 연구’를 주제로 한 김일석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의 골자가 바로 한경직 목사의 전도 입국론이다. 김 목사는 이 논문으로 지난 2월 장로회신학대에서 역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도 입국론은 김 목사 논문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전도를 통해 기독교인이 늘면 기독교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국가를 빠르게 세울 수 있다는 한 목사의 확신이 담겨 있다. 정교분리 원칙을 앞세웠던 한 목사는 당시 전도를 최고의 정치운동으로 봤다.

김 목사는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새로운 국가를 설계했던 당시 지도자들이 기독교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했던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방정국의 대표적인 우익 영수였던 김구와 이승만, 김규식도 1945년 11월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임정 요인 환영대회에서 한목소리로 기독교적 건국론을 펼쳤다”면서 “당시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건국론은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48년 제헌국회 때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한 뒤 목사였던 이윤영 의원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한 목사의 전도 입국론은 가장 구체적인 방안을 담고 있었다. 해방 직후 한 목사는 수차례 기독교적 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지기를 바라는 열망을 설교로 선포했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를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붉은 용’과 동일시하면서 정치·신학 체계에서 공산주의를 완전히 배제했다.

김 목사는 논문에서 “전도 입국론을 주장한 한경직은 건국론을 교회론·선교론으로 전환했고 대의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장로교회를 많이 세우면 민주주의 정신이 백성들 사이에 빠르게 스며들 것으로 봤다”면서 “이는 한 목사가 자란 서북 지역의 ‘실력양성론’과 숭실대·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서의 전도 훈련·가시적 교회론의 영향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목사의 전도 입국론은 이승만정부의 3·15부정선거와 이에 따른 4·19혁명으로 힘을 잃었다는 게 김 목사의 진단이다.

그는 “한 목사의 제안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론이 나왔고 교회성장을 위한 신학적 기틀이 마련됐으며 실제 1960년대 이후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면서 “민주주의를 이상적 정치 체제로 본 반면 공산주의와의 단절,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결과적으로 분단 신학의 단초를 제공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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