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중 관계에 찬물 끼얹은 중국대사의 부적절한 언행

2023. 6. 1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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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오후 중국대사 관저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찬 회동을 하기에 앞서 의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싱 대사의 이날 발언은 내정간섭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재명 대표 만나 내정간섭성 발언 쏟아내


유튜브 생중계해 준 민주당 행태도 도마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만찬 회동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이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는데,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패권 경쟁 와중에 한·미 동맹을 강화해 온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전략을 견제하는 수준을 넘어 내정간섭으로 비칠 수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싱 대사의 발언은 사실관계에도 어긋나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한·중 외교관계 악화에 대해 “솔직히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며 책임을 한국 측에 떠넘겼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에도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을 두둔한 중국의 책임은 잊은 발언이다.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에 대해서도 “일각에서 ‘탈(脫)중국화’ 추진을 시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6년 주한미군의 사드(THAAD) 체계 배치를 이유로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을 발동한 중국의 보복 때문에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대거 이탈할 수밖에 없던 사실을 싱 대사는 잊고 있는 듯하다. 싱 대사의 부적절한 언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1월 부임한 싱 대사는 그해 5월 언론 인터뷰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을 공식 지지해 달라며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 김치와 한복의 기원 논란에서도 억지 주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대표와 싱 대사의 회동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도에 대한 공동 대응책을 모색하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싱 대사는 준비한 의견문을 15분가량 낭독하며 한국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데 이용했다. 민주당은 이를 유튜브로 생중계해 줬으니 중국의 내정간섭에 이용당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지난 9일 싱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고, 중국 외교부도 어제 정재호 주중대사를 불러 맞불을 놨다. 게다가 박진 외교장관, 국가안보실의 조태용 실장, 김태효 1차장까지 나서서 싱 대사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싱 대사의 발언은 누가 봐도 부적절했지만, 외교라인이 총출동해 오히려 싱 대사의 존재감을 키워준 모양새가 되기도 했다. 시진핑 체제에서 거칠어진 중국식 ‘전랑(戰狼) 외교’에 더욱 치밀한 대응 매뉴얼 개발이 필요해 보인다.

싱 대사의 돌출 언행은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윤 정부가 한·미 동맹 강화, 한·일 관계 정상화에 이어 경색된 한·중 관계를 한·중·일 정상회의 등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풀어가려던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은 때문이다. 외교의 세계에서 주재국 대사는 자국 정부에 대한 충성심 과시보다는 주재국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강화하는 게 최고의 책무다. 불필요한 감정 충돌을 예방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 이롭다는 사실을 싱 대사가 성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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