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늉 같은 여행기…조금 밍밍해도 속이 편안합니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는 숭늉 같은 드라마다. 다소 밍밍해도 구수하고 깊은 맛에 속이 편안해진다. 살인·복수·불륜 등 자극적인 소재가 넘치는 요즘 드라마판에서 더욱 그렇다.
연출을 맡은 이종필 감독은 이달 초 인터뷰에서 “작품이 워낙 소소하다 보니 주위에서 ‘이런 거 해도 돼?’라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다”며 “그저 ‘이렇게 잔잔하고 덤덤한 콘텐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박하경 여행기’는 영화 ‘전국노래자랑’(2013),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을 만든 그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그런 드라마의 진가를 알아본 건 배우 이나영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드라마로 그는 4년 만에 복귀했다. 이나영은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구성 자체도 독특했고, 드라마의 담백하고 신선한 느낌이 이 시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며 ‘박하경 여행기’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주인공 박하경(이나영·사진)은 즉흥적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는 게 낙이다. 일주일에 한 번 “사라져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단 하루의 여행”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일상, 더 나아가 인생관을 나눈다. 여행마다 박하경이 느끼는 감상을 매회 30분 안팎, 8부작에 담아냈다. 기존 드라마 한 회 분량의 절반이다.
이 감독은 “처음 이 작품에 관해 들었을 때 ‘굉장히 느리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다면 느린 듯하지만 리듬감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드라마는 매회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본 듯한 여운을 남긴다.
박하경이 찾아다니는 곳은 대전·해남·부산·제주 등 국내 여행지다. 특정 지역·관광 명소를 부각하는 대신 길을 따라가며 깨닫는 것들에 집중한다.
여행의 시작엔 동행이 없지만, 끝에는 매번 누군가 함께한다. 만남과 관계를 통해 박하경은 꿈·사랑·세대갈등 등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들여다본다. 예술하는 제자(한예리)를 찾아간 군산에서는 ‘재능과 꿈’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화감독 지망생(구교환)과는 ‘요즘에는 왜 사랑 얘기가 없을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한 할아버지(박인환)와 언쟁을 벌인 후엔 부모 세대를 떠올린다.
“‘공감하세요’라는 말도 숙제처럼 느껴진다. 자기 안에 어떤 감정이 생기든, 멍 때리며 부담을 내려놓고 봤으면 좋겠다”는 이나영의 바람처럼 드라마 속 박하경의 여행을 쫓아다니다 보면, 슬그머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박하경은 템플스테이를 왜 당일치기로 왔냐는 질문에 ‘그냥 그러고 싶어서’라 답하고, 평생 출 일이 없었던 춤을 대전 여행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춘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사회의 시선·틀에 얽매여 표현하기 어려웠던 생각을 툭툭 내뱉고, 여행지에서 춤을 추는 등 원하는 것을 그때그때 하는 박하경을 보며 시청자도 자유로움을 함께 느끼게 된다”고 짚었다. 선우정아·한예리·구교환·박인환·길해연·심은경 등 매회 특별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도 또 하나의 재미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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