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희는 이동관-정순신 같은 부모 만나지 못했어요"

서부원 2023. 6. 1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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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연이은 학교폭력 사태로 드러난 '최고 명문' 민사고와 하나고의 민낯

[서부원 기자]

 2017년 11월 12일, 이동관 전 홍보수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바레인 출국에 앞선 입장 발표 후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해 "잘못된 것이 있다면 메스로 환부를 도려내면 되는 것이지, 손발을 자르겠다고 도끼를 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 남소연
 
차기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특보)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온 사회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이 특보의 거짓 해명이 속속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는 모양새다. 사안 발생 당시 학교 측과 입을 맞춘 정황이 드러나고, 열리지도 않은 선도위원회의 결정으로 아들이 전학을 갔다고 둘러대며 화를 자초했다.

불과 몇 개월 전 국가수사본부장으로 내정됐다 자진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안이 아직 국민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는데,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폭력의 정도로 보면,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그것보다 심각성이 훨씬 더하다. 숫제 현 정부 들어 자녀의 학교폭력 사안은 고위공직자 임명에 결격 사유가 아니라는 투다.

이 특보의 해명을 듣노라니, 현직 교사로서 무기력한 학교 교육에 대해 자괴감을 떨칠 수가 없다. 이래서는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과거 학교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꾸려졌고, 지금은 교육청의 학교폭력심의위원회로 이관되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는데도 '무풍지대'에서 살아온 듯하다.

대개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담임교사와 학생부장, 상담교사, 보건교사 등이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학교가 비상 체제로 돌입되는 게 보통이다. 피해자의 돌발 행동을 우려하여 학교장이 직접 관장하는 위기관리위원회가 즉시 가동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재 이 특보 아들이 보인 폭력 정도라면, 곧장 교육청의 학교폭력심의위원회로 보고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당시 학교폭력이 벌어진 하나고등학교는 법과 정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던 듯하다. 피해 학생의 도움 요청을 받은 교사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도 별일 아니라는 듯 덮어버렸고, 구제 신청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려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정순신 변호사의 경우처럼, 이 특보의 '힘'을 빼놓고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 특보의 해명은 이 땅의 권력자들이 학교 교육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여긴 채, 교육의 본령을 얼마나 훼손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사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피해 학생의 신고를 묵살하라고 종용했다면, 불법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파렴치한 반교육적 행위다. 학교폭력을 목격한 다른 아이들에게 끼칠 교육적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올곧은 시민을 길러내야 할 학교마저 권력자들의 입김에 휘둘려 되레 약자들을 짓밟은 곳으로 전락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심각한 학교폭력 사안인데도 일개 담임교사가 종결 처리했다는 건, 슬프게도 이사장, 교장, 교감, 교사로 이어지는 서슬 퍼런 사립학교의 위계가 엄존함을 증명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사장은 사립학교의 '왕'이다.

"이번 생은 망했어요", 아이들의 다짐 바꿀 자신이 없다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
ⓒ 권우성
  
이번 일로 학교는 물론, 교육청도, 국가인권위원회도, 심지어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검찰조차도 권력 앞에 납작 엎드리는 한통속임으로 아이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아이들 입에서 '그 나물에 그 밥'이라거나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무시로 튀어나오는 현실이다. 돈이든 권력이든 힘이 있으면 범죄자도 용서받는 세상이라고 선선히 말한다.

"누군가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더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 같아요."

이번 일로 과거 국정 농단 사태 당시 정유라의 망언까지 아이들 사이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부모를 잘 만난' 정순신 변호사와 이 특보의 아들이 심각한 학교폭력을 저질러놓고도 멀쩡하게 명문대에 합격하지 않았느냐는 거다. 한 아이의 말마따나, 내신 등급과 수능 성적은 물론, 이젠 학교폭력의 가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조차 부모의 '힘'인 세상이 됐다.

일찍 '철이 든' 아이들과 대화하는 건, 교사로서 괴로운 일이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이 돼버린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남들 위에 군림해야 한다고 말하는 아이들. 솔직히 완고한 그들의 '다짐'을 감히 잘못됐다고 바꿀 자신이 없다. '동물의 왕국'에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그들에게 '공자님 말씀'으로 들릴 뿐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먹이사슬의 윗자리에 올라서려는 노력조차 포기한 아이들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이생망'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이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줄 여력도 안 되는 데다, 온존한 학벌 구조에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없다면서 일찌감치 체념해 버렸다.

교사랍시고, 누구보다 현실을 절감하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하면 된다"는 말은 조언은커녕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흰소리다. 우리 사회는 '해도 안 되는 것' 투성이임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면, 요즘 아이들은 조롱하듯 이렇게 반응한다.

"저희는 정순신과 이동관 같은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들끓는 여론에 정순신 변호사가 그랬던 것처럼 이 특보의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은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이 어떻게 마무리되든지 상관없이 교육청은 또한 그때 그랬던 것처럼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강조하는 공문을 학교로 내려보낼 것이다. 그런다고 학교폭력이 줄어들거나 정의롭게 해결될 리 없다는 걸 교육청도 모르진 않는다.

요컨대 학교폭력 사안은 학교 교육이나 법적 처벌만으로 발본색원할 수 없는 문제다. 강자 앞에 굴종하고 약자 앞에 군림하려는, 우리 사회의 비루한 가치관을 떨쳐내지 못하는 한 백약이 무효다. '법은 강자를 위한 도구'라는 비판에 귀 기울이며, 강자의 범죄에 더욱 서릿발 같은 일벌백계가 있어야만 근본적인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

올해 학교폭력 사안이 연이어 터지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 자사고를 자처해 오던 민족사관고등학교와 하나고등학교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의치대와 명문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는 명문고의 이름 뒤로, 권력에 굴종해 피해 학생의 호소를 내팽개친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공부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우리 공교육의 끝판왕이었던 셈이다.

이 특보의 낙마로 끝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만으로 무력화한 학교 교육과 피해 학생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순 없다. 어쩌면 학교폭력은 이번 사안의 본질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래세대 아이들이 위험하다. 이번 사안을 접한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뱉은 한 아이의 푸념 섞인 질문에 이 특보는 답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은 구제 불능인 것 같아요. 똑같은 일들이 매번 반복되잖아요. 왜 권력자들은 지난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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