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반려견의 차 멀미 극복 프로젝트 [개와 다르지 않아]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반강제로 개를 키우게 된 우울증 환자가 개로 인해 웃고 울며 개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기자말>
[이선민 기자]
▲ 차 타기 연습 중인 5개월 복주 |
ⓒ 이선민 |
복주를 키우면서 개도 차 멀미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전에도 개를 많이 키워봤지만 차 멀미하는 개는 본 적 없다. 그런데 복주는 차 멀미를 정말 심하게 했다. 멀리서 차를 보기만 해도 꿀럭꿀럭 멀미를 하는 것 같았다.
개를 데리고 차 타는 연습해보기
입양 초기 복주의 분리불안은 최고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복주 혼자 집에 둘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복주를 차에 태우고 다닐 수밖에. 하지만 문제는 복주가 차만 타면 침을 흘리고 거품을 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떡해? 방법을 찾아야지. 먼저 나는 당시 다니던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께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복주 월령(5개월 무렵)에 개들이 멀미하는 건 흔한 일이라며 내게 멀미약을 처방해 주셨다.
하지만 복주는 멀미약이 통하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가 멀미약이 잘 안 듣는다고 말하자 선생님께서는 '그러면 어쩔 수 없다, 사람들도 차 멀미가 영 안 고쳐지는 사람이 있듯 개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더 이상 복주에게 처치해 줄 의료 서비스는 없다는 얘기였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앞으로 이 친구와 한두 달 살다가 말 거라면 참아보겠는데 그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병원을 바꿨다. 새로운 선생님께선 복주가 멀미를 물리적인 요인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로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 차타는 연습 중인 6개월 복주 |
ⓒ 이선민 |
처음에는 그냥 차에만 타고 그다음엔 시동 걸고 내리고 그다음엔 주차장 한 바퀴 그다음엔 동네 한 바퀴 이런 식으로 매일 같이 연습 시간을 조금씩 늘려갔다. 무엇보다 복주를 차에 태우고 무조건 좋은 데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당시 복주는 동네 공원에 있는 반려견 놀이터를 엄청 좋아했다. 그래서 복주를 차에 태우고 반려견 운동장에 갔다.
어느새 복주의 증세는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안전 문제를 고려해 복주 카시트를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복주의 '둔감화 훈련'을 병행했다. '둔감화 훈련'이라고 하니 대단한 걸 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 차를 잘 타는 해탈 |
ⓒ 이선민 |
복주를 보면서 동시에 나를 돌이켜본다
당시엔 몰랐는데 복주의 불안증을 고치는데 내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복주에게 적용한 치료방식은 내가 불안증을 심하게 겪을 때 전부 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당시 내게 믿을 만한 사람이 나를 안심시켜 주는 것이 절실했다. '괜찮다. 마음 놓아라. 너는 안전하다. 네겐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들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내게 해 주는 것.
내 경우엔 그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셨고 지금은 없어진 방배동의 한 상담센터 선생님이셨다. 병증이 깊을 때 늘 이분들은 늘 나를 진정시켜 줬다.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고, 너는 반드시 좋아질 거라고. 그러니 안심하라고.
두 번째 방법은 정면돌파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나 역시 차를 타지 못하는 복주처럼 한동안 지하철을 못 탔다. 어두운 데서 붕괴 사고를 당해서였는지 한동안 지하로 내려가는 게 무서웠다. 또 열차가 들어올 때 부는 강한 바람도 소름 끼쳐서 싫었다. 그래서 가까운 길도 둘아가기 일쑤였다. 아니 오죽하면 직장을 구할 때도 다른 어떤 것보다 무조건 집 앞에 다니는 버스가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만 골라야 했을까.
▲ 나들이 간 복주 |
ⓒ 이선민 |
복주는 이미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불안지수가 극도로 높았다. 나는 복주의 그 불안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5개월간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었고 그 가운데서 복주는 또다시 내게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다. 지금의 복주는 불안 증세가 많이 좋아졌다. 복주는 더 이상 이전 같은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 굉장히 안정적이다. 문제는 나다. 나는 아직 불안증과 싸우고 있다. 좋아졌다 싶으면 다시 나빠지고 있다. 때로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빠져나가는 것처럼 힘들다.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그날 그 붕괴 사고 현장에 영혼을 묶어두고 육신만 빠져나온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요즘 나는 마음이 힘들 때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래(탕웨이) 대사를 자주 떠올린다.
남편이 죽었는데 어떻게 계속 일을 하느냐고 해준(박해일)이 묻자 서래는 이렇게 대답한다.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고. 과거를 닫고 현재를 살려고 했던 영화 속 서래를 생각한다. 나는 노인 대신 개들을 돌본다고나 할까. 그러면 마음이 조금 낫다. 살면서 본 그 많은 죽음들을 조금은 덤덤하게 흘려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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