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감사’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이유 [신율의 정치 읽기]

2023. 6.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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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감사원 행정 감사 거부 논란 확산
감사 여부뿐 아니라 범위 특정해도 안 돼
‘민주주의 지키는 첨병’ 본연 임무 중요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교수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정치사상 학자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 멸망을 예언한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하다.

후쿠야마 교수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용어를 부활시킨 인물 중 한 명이다. 사회자본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다. 토크빌은 19세기에 이미 사회자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후 한동안 이 용어는 사회과학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후쿠야마와 퍼트넘 등의 학자에 의해 해당 용어는 다시 양지로 나오게 됐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들이 멸망한 이후 ‘사회자본’이라는 용어가 매우 중요하게 쓰였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멸망하자 서구 사회과학자들은 이들 국가에 시장 경제가 뿌리내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른바 시민사회 맹아의 존재 여부와 시민사회 안착 가능성이었다. 시민사회 맹아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자본 존재 유무다. 이렇게 ‘사회자본’이라는 용어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사회자본이라는 개념은 일정하지 않다. 학자마다 개념 정의를 상이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은 ‘신뢰’다. 신뢰는 사회자본의 핵심 요소다. 또한 사회자본은 시민사회 형성을 가능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시민사회가 형성 가능한 국가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신뢰’와 관련해 빨간불이 켜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아빠 찬스’ 의혹은 이제 ‘형님 찬스’ 의혹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고위직들이 관련된 ‘자녀 채용 의혹’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한마디로, ‘아빠’가 고위직으로 있는 직장에 자녀들이 경력직으로 채용된 사안이다. 여기까지는 팩트다. 아직 모르는 것은, 이런 ‘눈물겨운 가족애’ ‘패밀리 비즈니스’ 사례가 얼마나 더 있는지, 그리고 아빠 직장에 채용된 자녀들이 정말로 ‘공정하지 못한 과정’을 통해 취업했는지다.

이런 내용이 명백히 밝혀지기도 전에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행정 감사’를 비롯한 감사를 거부한 일이다. 선관위는 오히려 행정 감사를 받아들여 그동안 제기됐던 각종 의혹을 털어버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는 첫 번째 이유로, 헌법 제97조를 들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97조는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 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는 규정이다. 선관위 주장은, 선관위는 행정기관이 아닌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행정기관’의 사전적 정의는 ‘광의로는 국가나 공공단체의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기관을 총칭’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런 개념을 따르면, 선관위도 행정기관일 수 있다. 선관위를 행정기관으로 볼 수 있다면, 선관위의 감사원 감사 거부는 선을 넘은 주장이다.

선관위가 감사를 거부하는 두 번째 이유는, 국가공무원법 제17조 2항이다. 해당 조항에 ‘선관위 소속 공무원의 인사 사무에 대한 감사는 중앙선관위원장 명을 받아 사무총장이 실시한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선관위 자체 감사에 의해 적발된 ‘의혹 관련 인물’에는 최근 면직된 사무총장도 포함됐다. 면직 때문에 사무총장이 감사의 주체가 될 수 없지만, 하마터면 그렇게 될 뻔했다. 새롭게 임명될 사무총장이 누군지 몰라도 그가 100% 결백한 인물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현재 같은 상황에서 선관위가 자체 감사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번 감사원의 자체 감사 역시 문제라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 5월 31일 선관위가 내놓은 고위직 4명 자체 감사 결과 보도자료에는, “감사 대상자와 연고가 없는 실무단을 편성해 감사를 했다”는 문장이 나온다. 나중에 보니 감사위원 중 한 사람과 감사 대상인 인물이 현재 같은 지역 선관위에 근무 중이었다. 과거에도 두 사람은 중앙선관위에서 1년 넘게 사무관과 서기관으로 같은 부서에 근무했다. 해당 감사위원은 또 다른 감사 대상과도 반년간 같이 일했다.

분명한 것은 감사위원과 감사 대상 사이에 ‘연고’가 있다는 점이다. 선관위는 “중간에 감사 대상으로 2명이 추가돼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렇다고 ‘거짓’이 ‘진실’로 탈바꿈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신뢰를 잃게 만든 의혹을 감사하면서 또 다른 신뢰 상실 요인을 만든 셈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감사원 감사가 필수적이다. 감사원은 “국가공무원법 제17조는 행정부에 의한 자체적인 인사 감사의 대상에서 선관위가 제외된다는 의미다. 선관위 인사 사무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배제하는 규정이 결코 아니다”라면서 감사원법 제24조를 들고나왔다. 감사원법 제24조 3항에는 ‘국회·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소속한 공무원은 제외한다’고 규정돼 있다. 선관위 공무원을 제외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 해석 문제를 차치하고, 선관위가 감사원의 전반적인 행정 감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무엇보다 법을 어긴 의혹을 받는 고위직이 있는 기관이 법규를 들먹이는 것은, 듣는 이를 무척 당혹스럽게 만든다. 두 번째, 지금 선관위가 우리 사회의 ‘신뢰’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 상실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를 관리해야 하는 기관이 신뢰를 상실하면, 선거가 제대로 치러지기 힘들다. 한마디로 신뢰 상실은 권위 상실로 이어지고, 당연히 선거 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다. 셋째, 선관위는 국민권익위 조사는 받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민권익위 조사는 강제성이 없다. 선관위가 준 자료만 갖고 조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넷째, 선관위 스스로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니, 수사 결과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하지만, 경찰은 수사 의뢰를 받은 고위직에 한정해 수사할 것이다. 수사 범위 확대는 ‘별건 수사’ 논란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감사원처럼 ‘전반적인 조사’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다섯째, 현재 선관위는 국회 국정조사는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지만, 문제는 선거가 점점 다가오는 시점에서 의원들이 선관위를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도 의문으로 남는다.

종합적으로 볼 때, 감사원이 선관위를 전반적이고 종합적으로 감사하고, 문제가 있다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 의뢰를 하는 방식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 여부를 결정해서도 안 되고, 감사 범위를 특정해서도 안 된다.

선관위는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첨병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생각해야 할 때다. 독립성은,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만 그 본연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3호 (2023.06.14~2023.06.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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