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이 추가 커버" 이 말에 난동…역풍 강타한 '무지개색 6월' [글로벌 리포트]

박소영 입력 2023. 6. 11. 05:02 수정 2023. 6. 1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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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넣기 쉬운 구조, 가랑이 추가 커버’
미국 전역에 1900여 개 매장이 있는 대형마트 타깃은 성소수자(LGBTQ+)의 인권의 달(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인 6월을 앞두고 이런 문구로 여성 수영복을 홍보하다 집중포화를 맞았다. 남성 성기가 있는 트랜스젠더 여성도 입을 수 있도록 가랑이 부분을 잘 가리게 만들었다는 의미로 보여지면서, 일부 소비자는 매장에 찾아가 관련 상품을 집어던지는 등 난동을 부렸다.

미국 대형마트 타깃이 성소수자(LGBTQ) 인권의 달(6월)인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자긍심의 달)’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달 초 출시한 여성 원피스 수영복에는 ‘집어넣기 쉬운 구조, 가랑이 추가 커버’란 문구가 적힌 태그가 달려있다. 남성 성기가 있는 트랜스젠더 여성도 입을 수 있도록 가랑이 부분이 잘 가려질 수 있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사진 트위터 캡처

여론이 악화하면서 타깃의 시가총액은 2주 만에 743억 달러(약 98조원)에서 604억 달러(약 80조원)로 줄었다. 결국 타깃은 지난달 말 “10년 전부터 프라이드 먼스 상품을 내놨는데, 올해는 직원들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만한 위협을 겪었다”며 “불안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논란이 된 주요 상품을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지난 5일 타깃을 향해 “철수한 상품을 재입고하라”고 촉구했지만 타깃은 묵묵부답이다.

과거 같으면 무지개색 물결이 일었던 프라이드 먼스 분위기가 올해는 사뭇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다양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질 상품이나 무지개 로고가 거센 불매운동을 맞닥뜨리면서 관련 마케팅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미국 거대 맥주회사 앤하이저부시(ABI)는 지난 4월 초 트랜스젠더 여성 소셜미디어(SNS) 스타 딜런 멀바니에게 자사 맥주 ‘버드라이트’를 협찬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양조장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위협으로 회사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4월 말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하면서 멀바니 협찬을 주도한 고위 직원 2명은 휴직 처리됐다. 미 백화점 콜스는 지난달 말 무지개 로고가 들어간 아동복을 내놓은 후 불매운동의 새로운 표적이 되기도 했다.


보수파 불매운동에 사라진 무지개색


지난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새티코이 초등학교 밖에서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을 내버려둬라'는 티셔츠를 입고 프라이드 먼스 행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 앞에서 프라이드 먼스를 지지하는 사람이 무지개색 깃발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같은 찬바람에는 최근 들어 성소수자 차별금지가 정치적 이슈의 대상이 된 측면이 크다. 올 초부터 공화당이 장악한 20여 개 주에선 성전환 치료 금지, 성정체성에 따른 화장실 사용 금지, 학교 내 성정체성 토론 금지, 성전환 선수들 대회 출전 제한 등 반(反)트랜스젠더 관련 법안이 쏟아졌다. 어림잡아 500여 개에 달한다.

여기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진보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좌파 의제’라는 인식이 작용했다. 이렇다 보니 성소수자를 위하는 기업들의 경영 방식 또한 ‘워크(woke·깨어 있는) 자본주의’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워크는 각종 차별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용어지만, 일각에선 과도하게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주위’에 빠진 사람을 비하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

아디다스가 지난달 17일 내놓은 '프라이드 2023' 컬렉션 여성 수영복 모습. 가슴털이 있고, 가랑이 사이가 볼록 나온 남성으로 보이는 모델이 홍보해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사진 아디다스 홈페이지 캡처

나아가 타깃과 아디다스 등에서 여성 수영복에 남성으로 보이는 모델을 기용하고 광고한 것에 대해 정치적 성향과 별개로 여성들의 불만이 컸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 대상의 제품은 온건파 학부모까지 불매운동에 동조하게 했다. 지난 2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새티코이 초등학교에서 프라이드 먼스 행사가 열리자, 일부 엄마들은 ‘우리 아이들을 내버려 둬라’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시위를 벌였다.

정치인들도 이러한 불만에 올라 탔다. 공화당 하원의원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소외시키고, 1% 미만인 트랜스젠더를 위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공화당원들이 온건한 여성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점점 더 트랜스젠더 이슈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소수자 구매력에 ‘레인보우 워싱’ 논란도

미국 뉴욕 경찰관들이 지난 1970년 8월 뉴욕 타임스퀘어 인근에서 성소수자 지지 관련 행진에 참가한 남성들을 제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에선 반세기 전부터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프라이드 먼스를 기념하고 있다. 지난 1969년 6월 미 뉴욕의 스톤월 주점에서 성소수자들이 경찰 단속에 맞서 항쟁을 벌인 것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이듬해 6월 뉴욕·샌프란시스코·시카고 등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축제가 열린 후 유럽·남미·아시아 등으로 전파됐다.

지난 1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따르면 올해 주요 37개국 16~74세 2만 25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성소수자라고 밝힌 사람은 약 10%였다. 지난해 전 세계 성소수자 소비력은 연간 3조9000억 달러(약 5200조원), 미국에서는 연간 1조4000억 달러(약 1900조원)로 추정된다고 포브스가 전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또 지난 2021년 핀란드 알토대 경영대학원과 바사대는 2003~2016년 미국 상장기업 657곳을 조사했는데, 성소수자에 친화적인 기업이 수익성과 주식 가치를 높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기업들이 앞다퉈 무지개색 로고를 남발하고 이미지 세탁을 하면서 ‘레인보우 워싱’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는 공공 영역에서도 성소수자 행사의 입지가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1일 네바다주(州) 넬리스 공군기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드래그 쇼(여장남자 공연)가 취소됐다. 지난 2021년부터 프라이드 먼스 기간에 열려왔지만 올해는 개최 하루를 앞두고 돌연 무산됐다. 플로리다주에서도 최소 2개의 프라이드 먼스 행사가 엎어졌다. 이외에 텍사스·몬태나·아칸소주 등 보수 성향인 공화당이 장악한 주에선 프라이드 먼스 행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알려졌다. 미 해군은 지난 1일 SNS 공식계정에 무지개색 배너가 담긴 사진을 올렸다가 다음 날 별다른 설명 없이 해군 항공모함 사진으로 교체했다.

지난 1일 프라이드 먼스 첫날 미국 해군이 소셜미디어(SNS)에 공식 배너로 무지개색이 담긴 사진(왼쪽)을 올렸지만 하루 만에 항공모함 사진으로 교체했다. 사진 트위터 캡처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 인사들과 성소수자 단체들은 이 같은 ‘역풍’에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미 전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이 일어나고 있다”며 “미국을 깨워달라(Wake up America)”고 당부했다. 성소수자 자식을 둔 부모들은 “(반대론자들에 의해)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보수와 진보가 맞서는 ‘문화 전쟁’의 최전선이 된 성소수자 마케팅은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분위기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아메리쿠스 리드 마케팅 교수는 “앞으로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하는 상품과 캠페인 등의 규모는 더 작아지고 진보적인 지역으로 제한되며 훨씬 더 광범위한 범위에서 대중의 테스트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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