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파편 나왔다고 "내 바다"...中 '남중국해 말뚝박기' 수법
“이 중대한 발견은 중국 선조들이 남중국해를 개발·이용하고 왕래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실증한다.”
지난달 20일 남중국해 심해에 가라앉아 있는 고대 상선 2척에서 다량의 유물이 발굴된 것을 두고 중국 국가문물국이 내린 평가다. 한국의 문화재청에 해당하는 이 기관은 지난해 10월 남중국해 북서쪽 대륙붕 약 1500m 심해에 가라앉은 침몰선을 발견했다. 7개월이 지난 이날 발굴단은 ‘선하이용스(深海勇士)’란 이름의 유인 잠수정을 타고 배로 접근해 도자기 등 유물 10만여 점과 대량의 원목 자재를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일본 히로시마에 모인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중국을 겨냥해 “동·남중국해에서 무력이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공동성명을 내놨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수중 고고학’ 탐사에 열중하고 있다. 섬과 암초 주변에서 발굴한 해저 유물을 이 일대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역사적 근거로 삼기 위해서다.
1990년대 초 이 지역에서 수중 고고학 탐사를 시작한 중국은 지난 2007년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중국명 시사군도)에서 침몰선 화광자오(華光礁) 1호를 인양하며 본격적으로 유물발굴에 나섰다. 남송시대 동남아시아를 오가던 거로 추정되는 이 배에선 도자기 1만여점이 발견됐다. 이후 중국은 2009년 해저문화유산센터(CUCH)를 세우고 수중 고고학 집중 육성에 나선다. 베트남·필리핀 등 인근 국가와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격화된 시점이다. 미국 외교전문 매체 디플로맷은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지역인 파라셀 군도와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 사이에 약 200여 개의 해저 유적지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지속적으로 유물 발굴을 해왔다”고 전했다.
2014년엔 첫 수중 고고학 전문 선박인 카오구(考古) 1호를 취역했고, 발굴한 도자기·동전 등의 유물을 전시할 해양 박물관도 대거 지었다. 지난해 8월에도 파라셀 군도에 침몰한 3척의 고대 상선에서 60여점의 도자기·동전 등을 발굴했다. 지난 2월엔 2억5000만 위안(약 464억원)을 들여 하이난(海南)성 충하이(瓊海)시에 수중 고고학 센터를 개관했다. 이곳엔 수중 고고학 연구와 난파선 유물 복원 등을 위한 각종 시설이 갖춰져 있다.
중국은 이른바 ‘남해 구단선’(南海 九段線·1953년 마오쩌둥 주석이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자의적으로 획정한 ‘U’자 형태의 해상 경계선)’을 내세우며 남중국해 90%의 해역에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논리는 간단하다. 오래 전부터 중국 선조들이 남중국해를 개발·이용한 역사적 사실이 있으니 현재의 남중국해도 중국의 것이란 주장이다.
리샤오제(勵小捷) 전 국가문물국 국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리 전 국장은 국가문물국 국장이던 지난 2015년 봉황TV와 인터뷰에서 “난파선과 섬에 세워진 건물이나 비문 등 고대 중국의 역사적 유물이 대거 발견된다면 그 모두는 역사적으로 중국이 해당 섬과 항로에 대한 주권을 가졌으며 해당 해역에서 정기적인 경제·무역 활동을 했음을 시사한다”며 “그렇기에 수중 고고학은 국가 이익을 수호하고 국가 주권을 보여주며 역사적 증거를 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굴 작업을 벌인 난파선이 중국 명나라 홍치제(1488~1505)와 정덕제(1506~1521) 시기 해외에서 중국으로 물품을 싣고 나르던 배로 추정된다는 점을 국가문물국이 강조한 것에도 이러한 의도가 깔려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은 남중국해 유물을 해상 실크로드와 연결지어 자신들의 이 일대 주권을 입증하는 방편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침몰선도 영유권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줄 거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베트남·필리핀 선조도 남중국해 활동”
더구나 1982년 중국을 포함한 168개국이 비준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한 나라는 해안선으로부터 12해리까지 영해, 200해리까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가진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구단선은 베트남·필리핀 등 인접 국가의 영해·EEZ를 침해한다. 2016년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이를 근거로 “중국이 구단선에 대한 역사적 권리·영유권 주장을 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PCA 판단을 인정하지 않는다. UNCLOS 체결보다 훨씬 먼저 선포된 구단선에 대해선 유엔해양법이 제한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편다.
중국은 해저 유물을 남중국해에서 무력을 사용할 근거로도 활용 중이다. 디플로맷은 “중국은 수중문화유적 보호관리 조례를 들어 자신들이 관할하는 해역에서 해외 단체가 허가 없이 중국의 유물을 탐사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며 “이를 근거로 분쟁 해역에서 해군 등을 동원해 다른 나라 선박을 쫓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분쟁 섬에는 훠궈식당·슈퍼마켓…민간인 말뚝박기 수법
■ 사할린=고엽도?…中, 러시아 땅에 청나라 명칭 표기
「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주장하진 않지만, 중국은 러시아 영토인 극동 연해주에 대한 관심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자연자원부는 ‘공공 지도 내용 표시 규격(규범)’을 배포하고 중국과 국경을 맞댄 러시아 연해주 8개 지역의 명칭에 옛 중국식 이름을 병기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중국 지도에선 블라디보스토크는 하이선와이(海參崴·해삼위), 하바롭스크는 보리(伯力·백력), 사할린 섬은 쿠예다오(庫頁島·고엽도)라는 지명이 같이 표기돼야 한다.
해당 지역은 과거 청나라 시절 중국의 영토였다. 1860년 2차 아편전쟁에서 진 청나라가 러시아와 베이징조약을 맺은 이후 러시아 땅이 됐다. 중국 정부가 연해주 지방을 되찾아야 할 고토(古土)로 여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아시아타임스는 “일부 중국 칼럼니스트들은 총 170만㎢의 영토를 러시아에 뺏겼기에 이번 지도 표기 변경엔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으려는 중국인의 염원이 담겼다고 주장한다”며 “외교적으로 민감한데도 중국 정부는 이런 글을 전혀 통제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국제사회 제재 속에 중국의 도움이 절실한 러시아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도리어 이번 달부터 중국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이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자국 항구처럼 사용하는 걸 허용했다.
」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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